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피온 지키기 (대하 15:1-19)

  • 잡초 잡초
  • 284
  • 0

첨부 1



요즘 골프 여왕 박세리 선수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 만큼 챔피온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도 교회 성장을 위해서 외국 교회를 보러 다닙니다. 세미나 그러면 미국을 방문해서 미국교회를 둘러보고, 요즘은 또 싱가포로도 유행입니다. 멀리 남미까지 가서 교회성장의 벤츠마킹을 하러 가는 것입니다. 전에는 외국에서 한국으로 찾아왔는데 지금은 한국교회가 외국교회를 배우러 다닙니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참피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난 2005년 인구센서스에서 지난 10년간 종교인구 증가가 237만 3천명이 되었는데 천주교 219만 5천명이 증가하고 불고, 원불교 합쳐서 44만 3천명이 증가한 것에 반해서 우리 개신교는 14만 4천명이 감소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순절 셋째주를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의 5대손인 유다의 아사왕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사 그러면 생각나는 것이 뭐 있는 지 물었더니 ‘앗사노래방’이 생각난다고 하더라구요.

아사왕은 훌륭한 왕입니다. 좋은 신앙인입니다. 신앙적으로도 대단히 성공한 참피온입니다. 유다 왕의 계보가 다윗-솔로몬-르호보암-아비암-아사, 이렇게 오대왕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사는 이런 여러 왕들이 있었는데 다윗 왕처럼 나라를 잘 다르시고 하나님을 잘 섬긴 영적인 참피온입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대로 다윗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왕은 악한 왕은 아니었지만 약한 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잘하다가 마지막에는 우상숭배하고 잘 못됐습니다. 그런데 그 밑의 르호보암은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나라를 둘로 나누었습니다. 그 밑의 아비암은 부패하고 패역하고 우상숭배하고 하나님 없이 산 왕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아사라는 아들이 나오는데 그 아들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왕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영적인, 신앙생활의 참피온이 됐습니다.
참피온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그럽니다.
참피온이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마음가짐이 단단해야 하고, 둘째는 체력이 좋아야 하고 셋째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고 그러는데 아사왕은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사람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마귀, 우상숭배하던 것을 다 때려 부셔서 하나님을 찾게 하고 체력적으로 왕으로서 나라의 성읍을 건축하고 성곽을 건축하고 나라 안정시켰습니다. 기술적으로는 58만 명의 군대로 100만의 구스군대를 쳐부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기술이 좋은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평안 주시고 형통하게 하셔서 나라가 부강해 졌습니다. 부자가 되고 외국의 주변국가가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기를 10년, 나라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가 어려움을 줬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이 보실 때 이스라엘이 없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3절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 여러분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이 없고 율법이 없음이 오래되니까 환난이 오는 것입니다. 5-6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어떻게 고난을 주셨는지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온 땅의 모든 주민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하지 못하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셔서 평안도 없고 서로 싸워서 상처를 줬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먹을 것을 달라고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데, 여유가 있는데,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하나님이 어렵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전보다 얼마나 잘 삽니까. 1964년도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00불이었습니다. 북한은 240불이었습니다. 1995년 일만불 시대가 됐습니다. 지금 2007년도는 이만불 시대입니다. 얼마나 잘삽니까. 한강의 기적! 이루었습니다. 세계 유례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지하자원이 하나도 없는데 나라에서 이만큼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잘 모릅니다. 지금 우리나라 형국이 유다나라와 같다고 봅니다. 엊그제 삼성 이건희 회장이 “5-6년 후면 삼성도, 우리나라도 어려워진다. 일본 앞서고 중국 쫓아오는 샌드위치가 한반도이다. 정신차려라! 정신차려야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유대나라를 향해 선지자 오렛이 경고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입니다. 여러분 7절에 있는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아멘 ‘강하게 하라. 너희 손을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여기 강해야 되는데 손이, 손은 행동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행위가, 하나님의 상급을 받아야 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아사는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을 해서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성서학자들은 이 본문을 가리켜 ‘아사의 종교개혁’이라고 합니다. 세 가지인데요, 3절에 세 가지 없는 것에 대항을 해서 아사는 세 가지를 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들었습니다.
- 참신이 없다고 하니까 여호와의 재단을 재건했다고 했습니다.
- 가르치는 제사장이 없다고 하니까 뜻을 다해서 여호와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 율법이 없다고 하니까 구별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께 행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재단을 재건했다.

8-9절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없애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없애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에서 나와서 저희 중에 머물러 사는 자들을 모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었더라”

여기보시면 ‘여호와의 재단을 재건하니까 아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함을 보았다’고 그랬고, ‘하나님이 함께함을 보더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재단’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지었을 때, 출애굽기 40장 34절은 “구름이 회막위에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을 때도 똑같이 성전위에, 재단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셔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게 하셨을 때 사도요한이 예수님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는 일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입니까? 여러분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나를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까?

지난주간에 뉴스를 보는데 그 뉴스. 토픽뉴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뉴스를 보았습니다.
어느 마을에 개들이 없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것이 한두집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집집마다 없어지니까 온 마을이 개를 지키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굵은 쇠줄로 묶어 놓고, 개집도 철창도 해놓고 열쇠로 잠궈 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도 개가 다 없어지니까 마을이 뒤숭숭합니다. 그래서 한분이 참다못해서 5만원을 주고 간판을 써다 붙였습니다. 간판의 내용이 걸작입니다. 『 우리 개를 훔쳐간 날도둑놈아, 자자손손이 도둑놈이 될 지어다 』라고 써서 붙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써서 붙였는데 놀랍게도 이집의 개가 안 없어지더랍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좋은 생각이라고 보고 집집마다 개집앞에 『 우리 개를 훔쳐간 날도둑놈아, 자자손손이 도둑놈이 될 지어다 』라고 써 붙였습니다. 그랬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 한 마리도 안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범죄 심리학자들에게 이 일에 대해서 말을 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더니 그것이 사람의 양심을 건드려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양심이, 하나님의 영광이 살아있으면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앞에 서니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잘난 것 같고, 그렇게 내가 똑똑한 것 같고, 내가 남 보다 더 잘 믿는 것 같았는데 하나님 앞에 서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 양의 반열에 서는 사람들에게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줬다고 하니까 자기는 모른다’고 그러잖아요. 나는 자기가 한 일을 왜 모르겠습니까? 언젠가는 생각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앞에 서니까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하는 것 같고, 내가 잘나서 뭐 된 것같고, 내가 똑똑한 것 같았는데 하나님의 영광앞에 서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한 것보다 죄지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야합니다.

나라가 소란했는데 여호와의 성전이 재건하니까, 하나님의 영광앞에 서니까 싸움이 없어졌습니다. 싸우는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간음하다 걸린 여인이 예수님 앞에 왔을 때 사람들은 돌은 들고 돌을 칠까요?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죄가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니까 다 돌을 내려놓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양심앞에 서니까 설자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회는 돌던지기가 만연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빈부차별, 학력차별, 지역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이렇게 오대차별이 있습니다. 이 앞에서 사람들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앞에서 사람들이 돌은 던지는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갈 때는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원서를 쓰고 면접준비하고 열심히 했는데 입사하고 나면 어느날부턴가 그러한 겸손함이 없어졌습니다. 내가 잘나서 회사가 잘되고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상만큼은 아니지만 세상과도 같은 차별이 우리 교회안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을 만나든지 장로님을 만나든지, 교인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그 교회에 교인이 몇 명입니까?” “그 교회의 일 년 예산이 얼마입니까?” 어김없이 이 질문은 모이면 빠지지 않는 대화의 한내용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느냐?” 그 교회는 그 성도들은 죄인입니까? 겸손합니까? 바리세인들 자기 자랑만 늘어서는 사람, 옛날에 한 코미디언이 ‘영구없다’ 하던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없다’고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돌던지는 것을 멈추고 우리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호와의 재단을 재건하고 그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죄인됨을,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말을 합니까?

이제 우리는 사람의 많은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진정한 죄인들이 모인 그런 교회, 은혜가 있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계하고 용서하면 됩니다. 사모하면 됩니다. 겸손하면 됩니다. 여러분 나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만이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어떤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교회,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앞으로 모여드는 교회가,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니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찾았다

10-15절까지입니다. “아사 왕 제 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무리가 큰 소리로 외치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하나님을 찾으니까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다.’ 아멘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인생의 지혜를 얻겠다고 한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이 노인은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랬더니 이 젊은이가 말하기를
“건강해서 오래 살고 싶고 재물모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고, 멋진 외모로 자기를 뽐내고 싶고 재능으로 남 보다 뛰어나면 좋겠고, 권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면 좋겠고, 명예 얻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노인이 젊은이의 소원을 들으면서 말하기를
“좋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그것은 평안이 없으면 아무것도 누릴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고 아무리 많은 권력과 명예가 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없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찾으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으니까 하나님이 만나주셨고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을 보게 되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를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평강’이라는 말은 ‘샬롬’이라는 말입니다. ‘샬롬’이라는 말은 ‘부족한 것을 채워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사할 때 샬롬! 샬롬! 합니다. 부족한 것이 채워지고 채워져서 넘치라는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지 않는한 우리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에 대항해서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제사장이 없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사사시대에도 제사장이 있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받지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세운 제사장을 노예의 품삯을 주면서 개인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부렸습니다. 아사 당시에도 부자가 되니까 제사장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제사장들에게 나를 위해서 축복기도해달라고, 나 도와 달라고, 내가 은혜받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집에 일꾼을 쓰듯이 돈으로 제사장을 샀습니다. 그랬더니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는커녕 주인의 비유를 맞추는 제사를 드립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발랏왕이 발람선지자를 돈으로 삽니다. 그래서 자기를 축복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락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제사장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제사장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러분들, 조심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길이여야지,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도와준다고 생각을 하면 그때는 타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봉사, 절대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봉사는 평안이 없습니다. 봉사를 해도 힘들고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찬양대원들 해보세요. “하나님 부족한 저를 찬양대로 세워 주시니 감사합니다.”그런 마음으로 일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이 찬양대를 통해서 은혜를 주시려고 하는 것이지, 여러분이 하나님을 돕는다라고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셔야 우리의 부족함이 채워지고 우리의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민족도 살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6․25전쟁때 그렇게 기도했던 그 모습처럼,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울때 모여서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에 기도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하나님이 평강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구별해서 하나님앞에 드렸다.

이것은 율법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16-19절까지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산당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그가 또 그의 아버지가 구별한 물건과 자기가 구별한 물건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더니 이때부터 아사 왕 제 삼십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아멘
‘구별해서 드렸더니 전쟁이 없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구별해서 드리는 것은 언제 쓰느냐? 하나님의 율법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 재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흠이 없는 어린양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드려도 구별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면 ‘그의 아버지가 구별한 것, 자기가 구별한 것을 하나님께 전에 드렸더니’라는 말은 그 동안에는 자기가 가졌었습니다. 좋은 것은 내가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의 전에 바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일주일의 첫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자기 어머니의 태후의 자리를 패했다고까지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별해서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자기 어머니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가 힘이 있을 때는 주일성수하고 하나님 앞에 헌금 생활을 할 때 구별을 해서 드리는 것을 얼마나 철저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예배 한번 빠진 것 때문에 교회에서 칠의를 받습니다. 성찬정지! 이렇게 말입니다. 한국의 초대교회의 당회록들을 보게 되면 그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것에 대해, 구별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철저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교회헌금을 사용하는 각 부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서 귀하게 하나님의 것으로 잘 써야지요,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려도, 여러분 저 어렸을 때 새 돈 아니면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헌 돈은 다려서라도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구별해서 드리는 율법의 지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하인의 자세였단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시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전쟁이 없도록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시절에 한 할머니가 찾아와서 “할머니,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하시는 얘기가 “대통령 각하, 나는 대통령의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나는 대통령에게 내가 만든 과자를 선물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대통령각하, 너무 수고 많이 하시지요. 이것 좀 드세요. 사랑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일생가운데 중 하나가 그때였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별해서 예배를 드리는 이 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별하여 드렸더니 하나님이 전쟁을 없이 우리를 사랑으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달라져야 합니다. 첫 번째 여호와의 재단을 재건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요란한 소리가 나면 안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쫓아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그런 기도의 소리가 끊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평안한교회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하나님 앞에 율법을 준수합시다. 구별된 것에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정말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왜 사랑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할 때에 우리교회는 달라질 수가 있고 한국교회가 변화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박세리 선수가 다시 우승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요? 그렇습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모델이 되고,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 성도들에게 모델이 될 수 있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