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3-8)

  • 잡초 잡초
  • 356
  • 0

첨부 1



「초등학교 1학년 자연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강아지는 어떻게 짖지요?” “멍멍멍!” “그럼 호랑이는 어떻게 울지요?” “크르렁, 크르렁” “그럼 돼지는 꿀꿀꿀” “예 맞아요, 그럼 제비는 어떻게 울까요?” 그러자 카바레집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사모님! 사모님! 이라고요”」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었다. 그는 평생 동안 3,000번 이상을 “거듭나야 된다”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하루는 어떤 교인 한 사람이 죠지 휫필드에게 정색을 하며 물었다. “목사님 정말 듣기가 거북스럽습니다. 도대체 설교할 말씀이 그렇게도 없습니까? 하도 많이 들어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왜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만 그렇게 자주 하십니까?” 그러자 죠지 휫필드 목사님은 심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인생의 구원을 열망하는 니고데모라는 관원을 향하여 주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는 바리새인이었다. “바리새”란 “분리된” 이라는 뜻으로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유대인의 관원은 율법에 정통한 랍비요, 유대의 최고 중앙의결 기구이며, 최고 재판소의 회원으로 당시 70명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출세한 사람이다. 가질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율법도 잘 지켰다.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남이다. 지금 이 사람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거듭남이었다.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생명을 가지고 사는 동물이나 조류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아리를 보자. 병아리는 두 번 태어남으로 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암탉이 알을 낳는다. 그 다음 암탉이 알을 품어 드디어 병아리로 부화되어 세상에 태어난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그와 같다. 첫 번째는 자연인으로서 어머니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두 번째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헬라어에 의하면 이「거듭난다」는 말은「위로부터 태어난다.」「새롭게 다시 태어난다.」「다시 태어난다.」「근본적으로 다시 난다.」는 의미로서,「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소가 새[끼]를 낳았으면 송아지이다. 개가 새기를 낳았으면 강아지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야 되는 것이다.

불신자는 한 번 태어나서 두 번 죽는다. 모태로부터 한 번 태어나, 세상에서 한 번 죽고, 영적으로 죽어 영원히 지옥에 들어간다. 성경에서는 지옥 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다.(계20:14)

그러나 믿는 성도는 두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다. 모태로부터 한 번 태어나고, 다시 하나님으로 부터 한 번 더 태어난 다음에 세상에서 육신의 죽음, 한 번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

1.왜 거듭나야 하는가?
오늘 성경 말씀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시민이 될 수 없다. 거듭나지 아니한 자연인 상태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남이라는 절대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듭남은 천국과 지옥의 분리선이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되어 우리의 본성을 잃어 버렸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로 전락되어 버렸고, 하나님과 맞서며, 하나님께 도전하는 존재로 타락하여 버리고 말았다.

성경은 이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어두움(엡5:8)이라고 하였고, 허물과 죄로 죽은 자(엡2:1)라고 하였으며,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바를 쫓아 살았고,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자이며(엡2:2-3),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소망이 없는 자요, 하나님도 없는 자였고, 하나님과 멀어진 자요,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엡2:12)라고 말하였다.

마3:18에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와 같이 인간은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부패하였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자가 되어 버렸다.(창6:5)

그래서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램17:9)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씀처럼, 인간은 죄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다.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자가 되었다.

인간의 상황은 비참하여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다. 죄 인줄을 알면서도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인간의 성품이 잘못되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오히려 미워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도리어 사랑하는, 타락한 성품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두 번씩이나 거듭남의 필요성을 엄숙하게 선언하신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관심, 결심, 열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결심하지만 죄를 이길 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죄를 짓는다.

왜 거듭나야 하는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거듭남이 필요한 것이다.

2.무엇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라고 말씀하셨다. 거듭나는 것은 직분을 가진다거나, 학습과 세례를 받는다거나, 정기적인 예배에 출석하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리고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많은 헌금을 바쳤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가졌으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말았다.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물”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칼빈은 “물”을 “성령”으로 해석했다. 그렇게 되면 성령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니 어색해진다. 어떤 사람은 “물”을 “세례”라고 해석한다. 만일 그렇다면 세례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다는 엄청난 교리적 모순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물론 물을 세례로 비유한 말씀이 있기는 하지만,(벧전3:21) 그렇다고 본문의 물을 세례로 해석한다면 많은 신학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세례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세례는 죄 씻음을 받았다는 하나의 증표일 뿐이다.
만일 세례가 구원의 필수 요건이라면 세례요한 전에는 한 사람도 구원 받지 못했다는 결론이 될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죽은 강도 한 사람도 지옥에 있어야 할 것이다. 세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이런 사이드」는 “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였다. 저도 이 해석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물에 비유하였기 때문이다.
물은 깨끗하게 씻어 주는 일을 한다.
엡5:26에「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약1:18……「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벧전1:23에는「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중요한 방편이다.

사람이 자신을 자신이 낳을 수 없고, 어머니가 낳아주셔야 하듯,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신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감동하셔서 마음과 문을 열게 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며, 회개하게 하셔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신다.

성령은 언제나 혼자 일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일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 인 것이다.

썩은 나무는 아무리 다듬고 가지를 쳐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는 죄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소망이 없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제 2의 출생을 하게 하신다.

「빌리 그래함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목사님이다. 그러나 그는 20대까지만 해도 기독교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천막을 쳐놓고 부흥회를 하는 곳에 참석하게 되었다. 목사님이 설교를 마친 후「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은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으나 빌리 그래함은 무반응이었다. 다음 날도 친구의 반 강제에 의해 또 그 부흥회에 참석하였다. 어제와 똑같이 “결신자는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빌리 그래함은 전혀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친구가 반강제로 빌리 그래함을 끌고 앞으로 나갔다. 그래도 빌리 그래함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하룻밤을 지나고 나서 자신의 마음이 서서히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의 귀에 계속적으로 지옥, 심판, 형벌, 예수, 구원, 십자가, 천국이 반복적으로 쟁쟁 거렸다. 마침내 견디지 못한 빌리 그래함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하늘을 보아도 어제 본 하늘보다 더 맑고 푸르게 보였다. 길가의 야생화를 보아도 이전에 보던 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성령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빌리 그래함을 거듭난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다.

3. 거듭난 사람의 결과
바람을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듯, 성령의 역사를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무 잎이 흔들리거나, 바람 소리가 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와 같이 거듭난 사람은 그의 삶을 보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 이라는 사람은 유명한 신학자요 철학자요 수사학과 웅변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여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러다 보니 사생활이 문란하여졌다. 그러나 그의 나이 30세에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서 거듭난 새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이전의 방황하던 시절에 사귀었던 여인이 어거스틴을 알아보고 반기면서 어거스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 여자를 응시하면서「나는 이전의 어거스틴이 아닙니다. 이전의 어거스틴은 죽었습니다. 나는 새로 다시 태어난 어거스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의 증거이다. 변화는 거듭난 사람의 증거이다.

마음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된다. 이전에는 시시하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중요하게 보이고, 이전에 중요하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시시하게 보인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심스럽게 보였으나,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가깝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고후5:17에「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죄악의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닮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

그는 새 생명의 씨를 가진 사람이다. 높은 차원을 가지고 살게 된다.

영적인 것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천국을 소망하게 되고, 불신자를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 심령은 언제나 평안하고, 생활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황수관 박사가 월요일에는 월등하게 웃고, 화요일에는 화사하게 웃고, 수요일에는 수수하게 웃고, 목요일에는 목숨 걸고 웃고, 금요일에는 금방 웃고, 토요일에는 토실토실하게 웃고 주일에는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웃자! 라고 했으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서 이런 웃음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도행전 2:13에는 거듭난 성도들을 보고 사람들은「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거듭난 사람은 이전의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다.
거듭난 사람의 변화는 상태만의 변화가 아니라, 질적인 변화, 근본적인 변화, 전인적인 변화이다.

거듭난 사람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이다.
①지적인 변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알게 된다. 전에는 죄로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연약한 인생임을 알게 된다.

②감정의 변화.
전에는 그렇게 좋아 보이던 것이 이제는 싫어진다. 전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좋아 보인다. 전에는 미워했던 것이 이제는 더 없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③의지의 변화.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이다. 끊어버릴 것은 끊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

이 변화는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즉각적인 변화이다. 성화는 점진적인 변화이지만, 거듭남은 사울처럼 즉각적이며, 순간적이며, 완성적인 변화이다.

이 거듭남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이며, 불변적이다.
한 번 거듭난 사람은 다시는 멸망하거나 타락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구원받는다.

똑같은 쇳물이지만 그 물이 어떠한 주형에 부어지느냐에 따라 모양도, 쓰임도, 이름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은을 녹인 물이 수저 주형으로 옮겨지면 수저가 되고, 젓가락 주형으로 옮겨지면 젓가락이 된다.

거듭난 사람의 의지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의 주형에 옮겨지면 달라지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①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고전12:3-4) ②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롬8:15) ③의를 행한다.(요일2:29) ④형제를 사랑한다.(요일4:7) ⑤세상을 이긴다.(요일5:4) ⑥지옥 갈 죄를 짓지 않는다.(요일5:18) ⑦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요일5:1)

결론.

교회를 적당히 다니는 것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 아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의사고, 의학박사이며, 내 동생이 간호사이고, 내 형님이 제약회사 사장이라고 해서 내가 의사인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듯,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과 생활을 통해서 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없이 살 수 없다고 확신하는가? 천국이 소중하게 느껴지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감격스럽게 느껴지는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러 분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다.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