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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2-21, 요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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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2: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장엄한 역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 충만 받은 베드로가 설교하는 가운데 구약 요엘서를 인용했습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는 이미 독립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헬라를 거쳐 당시는 세계최대 제국인 로마의 속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국가적인 현실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폭력단체를 조직하여 끊임없이 테러를 감행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로마군인이 출동하여 무차별 유혈진압을 시도하였습니다. 결국 무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한차례 소동을 겪고 나면 오히려 좌절과 실망은 더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른 곳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더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럴 때 세례 요한이 광야에 등장했고, 그 뒤를 이어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태 앞에 사람들 특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은 너무도 실망이 커서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고 발걸음은 천근같이 되어 낙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예수가 메시야인줄 알고 따랐는데 어이없게 십자가에서 죽었노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행2:의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이런 일이 있은 지 50여일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을 기점으로 하여 제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이기적이고 소심하기 짝이 없던 그들이 일약 로마 제국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당국의 협박 앞에서도 조금도 비굴하거나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으며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너희가 판단하라”고 까지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본 당시 사람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저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서로 묻기까지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인용한 말씀이 요엘서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 인용된 요엘서의 말씀을 보면 매우 미래지향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성령을 받게 되면 “너희의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은 각 가정의 자녀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절망적인 여건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또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희망을 잃고 한숨이나 쉬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에게 엄청난 비전을 주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심지어 “노인들도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노인”이라고 하면 미래보다 오히려 과거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연상하게 됩니다. 오늘 이 사회는 노인들을 무시하고 홀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노인 차별, 노인 따돌리기, 노인의 자기 상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의 인생은 더 비참하게 되어집니다. 헨리 나우웬은 노인들에게는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늙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게 되면 노인들이 꿈을 꾸게 된다고 했습니다. 즉 노인들이 차별과 따돌림이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그 마음에 벅찬 꿈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자기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 발견입니다.

  대체로 젊은이들이 미래지향적이라면 나이든 사람들은 과거지향적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툭하면 “옛날에는”, 또는 “우리가 젊었을 때는” 이런 말로 이야기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현실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젊은이들을 질책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런 노인들에게도 역시 미래지향적인 꿈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든다고 하면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75세에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명의 길을 떠났으며, 발붙일 땅도 없었으나 동서남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자신과 자손들에게 주실 땅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나이 100세에 자녀에 대한 약속을 받았고, 또 그 약속의 성취를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주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주시는 새 일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새 일을 계획하시고 진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 서부교회를 위하여 새 일을 이루어나가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말하기를 자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어떤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실 것인가”라는 기대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새 일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2.  오늘 이사야서 본문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기억하는 옛 일입니다. 즉 출애굽 때의 그 놀라운 이적기사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그리고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 군인들이나 그들 가는 길을 가로막는 이방의 적들을 그들 앞에서 엎드러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들은 다 옛 일입니다. 어른들의 입을 통하여 숱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자녀들이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환상이 없습니다. 하물며 노인들에게 무슨 꿈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천지개벽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비록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난 이적과 기사로 역사하신다 해도 나 자신에게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면 산을 옮긴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한갓 옛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여기 있는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머리로 기억만 하실 분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배우고 따지고 알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율법주의자들이 단연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히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슴으로 만나야 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오늘 여기서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새 일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오순절 날 성령을 보내신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나에게 이루실 새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대구 어떤 교회에 교역자가 부임했습니다. 그 교회에는 대구의 유력한 종합 병원의 의사들이 많이 참석하는 교회였습니다. 부임 첫 주일 날 설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목사님, 우리는 교회학교 때부터 예수를 믿어온 사람들입니다. 안 들어본 말이 무엇이며 모르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설교 길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라며 오래 믿었으면 무엇 하며 많이 알면 무엇 하겠습니까? 날마다 새롭게 만나주시고, 날마다 새 일을 이루어주시는 주님을 날마다 체험하지 못하면 옛 일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늘 이사야서 본문에서 하나님은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광야 같다고 해도 거기 주의 은혜가 임하는 새 길을 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새 길을 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여러분의 심령이 메마르기가 광야 같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생수가 흘러넘치게 역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내게 오는 사람은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와 저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이제부터 주님이 이루어주실 새 일을 믿음으로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3.  오늘 요한복음 본문의 기사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자기 머리로 닦아드린 감동적인 일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여인을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아버지인 시몬은 원래 나병환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거기다 나사로까지 죽음에서 살림을 받았습니다. 그랬으니 이 가족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고귀한 향유를 예수께 부어드렸다고 해서 이상하거나 잘못된 일이라고 결코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가정에 베풀어 주신 새 일은 바로 살리는 일이요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신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는데 바로 나사로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 보다 더 중요한 분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주를 위하여 하는 일보다 더 우선적이고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 향유를 부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삶의 내용이 달라졌고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부활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죽 해오던 일입니다.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들이요, 또 과정들입니다. 금년에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또 맞게 되는 교회절기입니다. 이 절기가 지나가면 우리는 또 원점으로 회귀합니다. 우리는 내일부터 열리는 부흥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흥회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고 이렇다하는 부흥사들을 겪지 않은 분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소나기처럼 한차례 지나가면 또 원위치가 됩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다 보니 면역되어 버렸습니다. 아니 냉소주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과거에 안 해본 사람 있느냐?”는 식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로 이런 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옛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숱하게 겪어 온 일이지만 오늘 새롭게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자랑꺼리인 옛 일들이 오히려 여러분을 옭아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못 만나게 하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빌립보서에 나오는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옛 일을 말한다면 자랑꺼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입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여 이제까지 자랑하던 옛 일을 분토같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날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시되 거기에만 얽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여기서 더 엄청난 일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열린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욥과 같이 “이제까지 귀로 듣기만” 하던 데서 벗어나서 주님을 “친히 뵙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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