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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 (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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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 (창 5:21-24)

이 시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쁘시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일에 경건하게 지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탁을 하는 월요일에도, 직장에서 일하는 화요일에도, 친구를 만나는 수요일에도 혹은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걸음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알고 보면 모든 날이 예수 안에서 다 거룩한 날입입니다.

로렌스라는 수도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접시나 닦고 허드렛일을 하는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접시를 닦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여기에도 계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점점 강하게 그를 붙잡아 마침내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변화되고 정화되어 당시대의 위대하고 경건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보다 앞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에 나오는 에녹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으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죽음조차도 면제시켜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그럼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까요?

1. 자신을 내려놓고 항상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았습니다.

본문 22절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 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동행하며'의 원뜻은 '산책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 동행이라는 용어는 노아에게도 쓰였는데 노아가 어떻게 살았습니까? 죄악이 관영한 가운데에서도 거기 치우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동행하는 삶이란 먼저 내 뜻을 철저히 내려놓는 삶이 전제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동행할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행동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여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격이 각각 다른 사람들 끼리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부 간에도 여행하다가 다투고 얼마 전에는 어떤 연예인 부부가 그토록 사랑을 약속했지만 신혼여행 시 다투고 돌아와서는 서로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도 그러한데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내 뜻을 철저히 내려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몸이 약했을 때 언제나 저의 보조를 맞추며 등산해준 저의 친구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몇 걸음 가다 쉬고 또 몇 걸음 가다 쉬고 그런 저를 사랑으로 인내로 함께 몇 년을 동행해준 친구 목사님은 제게 천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저에게 맞추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에녹은 이 철저히 내려놓는 일을 잘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 생각하며 그 뜻을 따르고 추구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보다 하나님의 기쁘심에만 전념했습니다. 에녹은 이런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무려 300년 동안 유지했습니다. 이 300년이란 말씀 속에는 그가 하나님 앞에 가는 순간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좌우되지 않고 변함없이 순종의 삶을 살았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런 순종하는 자녀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히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설경욱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성시가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이란 시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입니까?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항상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2. 에녹은 메시야의 강림을 대망하며 열심히 신앙하며 살았습니다.

그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22절에 다시 보면 "자녀를 낳았으며" 그랬습니다. 이 말씀 속에 그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흔히 에녹이 자녀를 낳았다고 하면 에녹도 가정을 갖고 살았다는 말씀이구나 하는 정도로 아는데 자세히 묵상해 보면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자녀 낳는 열심은 곧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인의 자손에서 메시야가 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후손에서 여인의 자손이 나타날 것을 믿고 의로운 자녀 낳는 일에 힘썼습니다. 잉태하기 전에도 잉태한 후에도 출생한 후에도 그들은 그 아이가 메시야이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마귀를 이기고 어떻게 하면 죄를 대속할 경건하고 의로운 자녀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최선의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의 열심을 창세기 5장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날마다 메시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대망하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으로 임하셔서 우리 인격에 예수의 형상을 나타내 주시고 우리들을 통하여 많은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어떤 유형으로든지 우리 주님은 오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현재 성령으로 임하셔서 우리의 심령을 예수 형상으로 바꾸어주시든지 아니면 장차 재림으로 임하셔서 온전히 우리 육체까지도 변화시켜 주시든지 우리 주님이 오셔야 기쁨의 사건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으로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예수 형상으로 변화되어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날마다 에녹과 같이 주님의 임재를 대망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형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믿고 회개하고 말씀보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며 성령 충만을 갈망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오늘날도 성령을 대망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는 개인이나 교회나 교단치고 모두 변화와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 대한 갈망이 없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만년 아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격에 예수님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의 인격에 예수님이 나타나시도록 에녹과 같이 열심하시기 바랍니다.

3. 에녹은 경건과 심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유1:14-15에 "아담의 칠 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로 볼 때 에녹은 선지자였습니다. 에녹은 그 시대의 죄악을 강력히 책망하며 장차 올 심판을 강하게 설파했습니다.

에녹은 무드셀라를 낳을 때 장차 올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임할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언제인가? 그 아이가 죽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창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의 무드셀라로 짓고 그 때부터 회개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창을 던지는 자란 옛날 고대 부족끼리 서로 싸울 때면 그 마을에서 창던지는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행해 창을 던져 물리쳤다 합니다. 그래서 창을 던지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면 그 마을은 곧 함락되고 불에 타 없어졌기에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가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무드셀라가 969세로 죽던 해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에녹은 미리 알고 두려운 심정으로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녹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는 심판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지옥의 심판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도 바로 믿지 않으면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지금 애굽의 죄악에서 종살이하고 있습니다. 교회 다녀도 잘못 믿으면 천국 가지 못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말 예수를 나의 주로 믿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확신은 삶의 변화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성화를 외쳐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화를 강조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에녹이 전파하는 경건과 심판의 복음입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예수 믿어서는 천국 가지 못한다고 심판의 복음을 외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주일성수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주일성수로 천국 가는 것은 아니지만 주일성수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주님을 상당히 멀리 떠난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적당주의 신자도 정신 차려야 합니다. 예수는 편하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녹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했든지 히11:5은 이렇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십시다. 우리 모두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고, 우리 주님을 열심히 대망하며 성령충만 받고, 회개와 경건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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