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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욱 큰 은혜 (약 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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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랜시스(St. Francis of Assisi)의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나라 구경을 하게 됩니다. 아주 높은 곳에 빈 보좌가 있는 것을 보고 "저건 누구의 것입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프랜시스가 앉을 의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는 아무리 스승이지만 너무 높아지는 것에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그는 조용한 시간에 프랜시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프랜시스는 대답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제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생님, 그것은 교만입니다. 다들 선생님을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강도, 살인자, 온갖 죄인들이 많은데 어떻게 선생님이 가장 악하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위선입니다". 그때 프랜시스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건 자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고 사는지 자네는 모르네". 은혜 받은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은혜는 원어로 '카리스' 입니다. '기쁨을 주는 좋은 선물' 이라는 뜻입니다. 값없이 보혈의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보니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더욱 큰 은혜' 란 풍성한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며 은혜 받지 못하면 그 자체가 무거운 짐이요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허나 은혜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봉사를 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좋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책임이나 의무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사는 삶은 이와 다릅니다.

이미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본문을 보니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변덕스러워 기분과 감정에 따라 생각과 태도가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고 풍성해 집니다.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의 큰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더욱 큰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자신을 낮추라

한 젊은이가 나이가 든 율법학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질문해도 좋겠습니까?" 늙은 율법학자는 흔쾌히 대답합니다. "뭐든 물어보게나". "옛날 황금시절에는 사람들이 눈으로 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신과 만났으며 신은 땅위를 걸어다녔다고 합니다. 신은 그들의 이름으로 사람을 불렀으며 사람들은 신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제는 신이 땅위를 걷지 않습니까? 왜 신은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습니까?" 늙은 율법학자가 대답합니다. "젊은이! 신은 아직도 도처에 있다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을 만큼 낮게 구부리는 법을 잊어서 그렇다네."

본문 6절입니다.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은혜를 받으려면 자세를 낮춰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교만은 은혜를 가로막는 가시와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교만 때문에 망했거나 손해 본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꺾어 버립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멀리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 속에는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것과 자기 사랑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결과 자기를 자랑합니다. 자기 자신 높이기를 원하고 칭찬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하나님과 내가 누구인지 아는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나는 피조물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 아래서 자기의 부족함을 늘 알게 됩니다. 자기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저절로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그 결과 더욱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러시아의 인권운동가이며 소설가인 '솔제니친' (Aleksandr Isayevich Solzhenitsyn)은 노벨 문학상과 템플턴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러시아에 닥친 큰 재난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다 고 하신 어른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50여 년 동안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하는데 소비했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과 면담하며 8권의 책을 써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6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죽게 한 파괴적인 혁명의 주요원인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하나님을 멀리하여 불행이 싹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는 믿음의 가문에서 자라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무디와 함께 복음을 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플로리다 바닷가에 위치한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풍요로웠지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건전지가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으려고 해도 전원이 없어 불이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 진공관처럼 외로움과 공허함 가운데서 살고 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택합니다. 풍요로워 보이고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는 하나님을 떠났기에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자의 최후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여기의 '가까이 하라' 는 원어는 '엥기사테' 입니다. 뜻은 '쥐어짜다' 입니다. 가까이 함이란 쥐어짠 듯한 밀착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쥐어 짤 만큼 압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밀착될수록 좋은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시편 73편 28절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여러분은 무엇을 가까이 하십니까? 돈을 가까이 하면 인격과 신앙이 타락합니다. 권력을 가까이 해도 인격과 신앙이 타락합니다. 안일과 쾌락을 가까이 해도 타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인격과 신앙이 성숙하고 아름다워집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갔다고 했으며, 야곱은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갔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부르십니다. 목마른 자도, 주홍 같은 붉은 죄를 지은 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도 다 가까이 오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시편 65편 4절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기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시편16편 2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복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오는 것이 인생의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큰 은혜를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마귀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더 크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더욱 큰 은혜로 감싸 안으시며 복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셋째로 두 마음을 품지 말라

'스타벅스(Starbucks)' 라는 책은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 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커피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한 스타벅스의 창업자입니다. 시애틀 시장 바닥에서 첫 점포를 연지 15년 만에 세계를 평정하게 됩니다. 슐츠는 말합니다. "1%의 저급한 커피를 섞어 가지고 50%의 이익을 본다고 해도 결국에 90%의 고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최고 품질의 커피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인공향을 넣지 않고 프랜차이즈로도 운영하지 않고 사람을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만듭니다. 스타벅스의 경영은 어떤 가치보다도 사람을 위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책의 제목을 "Pour your heart into it" 라고 정합니다. "그 속에다 너희의 마음을 쏟아 넣으라. 비록 커피 한잔이지만 그 속에다 마음을 쏟아 넣으라" 고 강조합니다. 그것만이 브랜드를 유지하는 비결이며 성공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여기의 '두 마음' 은 '딥쉬코스' 라는 원어로서 '관심사나 마음이 나누어진 불확실한 상태' 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두 마음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은혜가 유지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쏟아 부어야 합니다. 예배에 마음을 쏟아 붓고, 찬송에 마음을 쏟아 붓고, 하나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마음을 거룩케 해야 합니다. 마음을 깨끗이 해야합니다. 더욱 큰 은혜 속에 머물기 위해서라면 두마음이 아닌 한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해인 수녀의 "창가에서" 라는 시(詩)입니다. "창이 있음으로 아픈 이들도 병석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고, 창이 있음으로 나도 매일 식당에서 산을 내다볼 수 있으며, 멀리 있는 바다를 가까이 끌어다 가슴에 담을 수도 있다. 해질 무렵 마음을 비우고 창가에 서면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다. 창가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루 중의 어느 시간을 우리는 창가에서 기도하며 누군가의 맑은 창으로 열려야 하리라". 창을 통하여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창은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 창은 마음입니다. 마음의 창이 맑아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뵈올 때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부디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더욱 큰 은혜를 받기 위해 준비하십시오. 항상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순절특별 새벽기도회 기간에 경건 생활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마시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지 마시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묵상하며 기도로 준비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금보다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삶들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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