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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4계명 : 안식일 (출 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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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훈련병 시절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예배 후에 초코파이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업에 빠지고 예배 시간을 이용해 졸면서 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어떤 인솔 교관은 가짜 신자를 골라내기 위해서 몇몇 사람들에게 불시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야! 제4계명이 뭐야?’ 대답하지 못한 사람은 예배에 참석하는 대신 작업 현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오늘은 십계명 중에 그 내용이 가장 긴 제4계명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8a)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안식일을 어떤 날로 기억해야 할까요? 어떤 훈련병들은 초코파이 주는 날로 기억했었고, 어떤 고참들은 재미없는 설교를 들어야하는 지겨운 날로 기억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건과 관련하여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11)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7일 째에 쉬셨습니다. 인간이 창조되면서 6일이 끝났으므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제7일이 생애 첫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며, 여호와께서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한 날이었습니다. 그 때는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괴로움과 피곤함이 없던 때였고, 심지어 어떤 노동도 시작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복되고 거룩한 여호와의 안식일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이 단지 ‘육체의 피곤을 떨쳐버리기 위한 날’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그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두신 그분의 뜻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들었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 지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날이 없었다면 인간은 자신이 창조된 의미와 목적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멍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신명기 5:15절 말씀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이 날을 기억하라 명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유가 없었고 쉼도 없었습니다. 매일 과도한 강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자유와 쉼’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면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육체 역시 자유와 쉼을 얻는 날입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계명을 종합하면,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구속하심을 기념하는 복되고 거룩한 날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 모두가 자유와 쉼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혜로운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8b)고 명하셨습니다. 어떻게 지키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원래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되다’는 의미입니다. 창조 사건에서 안식일은 다른 6일과 구별된 날입니다. 출애굽 사건에서의 안식일도 이전의 삶과는 구별된 새로운 삶의 출발이었습니다. 거룩히 지키는 것은 구별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명기에서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5:12)고 하셨습니다. 구별하여 지키면 그 날이 거룩한 날이 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함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기억하고 지킬 수 있는 매우 독특한 날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킨다는 것 자체가 일단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일상의 삶과는 구별된 모습이 됩니다. 장소와 시간이 구별되고 복장도 구별됩니다. 마음가짐도 구별됩니다. 신자의 구별된 삶은 불신자들에게 ‘왜 저들은 저렇게 구별된 모습인가?’하는 의구심을 던져줍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구별된’ 모습이기를 원하셨습니다. 반면 고의적으로 이러한 구별됨을 없애는 자들에게는 엄한 형벌을 선언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출 35:2)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 지키지 않으면 죽는 다는 것은 마음에 상당한 부담감과 거부감을 줍니다. 사실 어느 정도의 부담감은 필요합니다. 자유와 쉼이라는 것이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쉽게 방종과 게으름으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그러한 기억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참 자유와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영혼의 울타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부담감을 가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안식일은 기본적으로 통제하는 날이기보다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에 자유와 쉼을 주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3:12절에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숨 돌릴 겨를도 없다고 말할 만큼 바쁜 시대입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예수님 믿을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숨 돌릴 틈도 없이 일하거나 공부하면 틀림없이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영혼도 병들게 됩니다. 중간 중간에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은 즐거운 마음으로도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아시스가 없다면 얼마 가지 못해서 탈진할 것입니다. 안식일은 우리의 몸과 영혼에 숨 돌릴 틈을 주는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후, 몸만 피곤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각종 불안과 염려와 근심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이 거칠어지고 피폐해집니다. 정욕적이고 탐욕적인 세상과 부대끼며 살다보면 어느새 탐심과 정욕이 우리의 영혼을 더럽힙니다. 마치 담배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 오랫동안 있다 보면 자기는 못 느껴도 담배 냄새가 몸에 베이는 것과 같습니다. 육체의 피곤은 운동을 하고 찜질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피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풀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때라야만 염려와 근심에서 놓여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영혼의 때를 청소하는 날입니다. 탐욕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날이며 비뚤어진 소망을 바르게 고치는 날입니다. 평소에 청소하며 살아도 가끔씩 대청소가 필요한 것처럼, 어느새 오염된 영혼의 죄들을 청소하는 시간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식일이 인간의 육체를 위해서나 영혼을 위해서나 꼭 필요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탐심’입니다. 지루한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예배를 빠지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안식일에조차 이러한 탐욕을 털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나머지 6일은 탐욕에 사로잡혀 살지 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성취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세상 정욕에 목말라하고 동시에 영혼의 곤고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과 그다지 구별되지 못할 것이고, 영혼이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될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불신’입니다. ‘하나님 잘 섬긴다고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라는 마음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한 일을 단호하게 중단하지 못합니다. 고3이 되면 주일 예배 빠지고 공부하는 학생도 만습니다. 하루 일을 쉬면 그만큼 손해 보는 것 같고, 하루 공부 덜하면 그만큼 뒤처지는 것 같다는 불신의 마음이 안식일을 철저히 구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내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지혜와 명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힘으로 공부하고 일해서 장래를 대비하려 합니다. 단호하게 하루를 구별하여 하나님과 충분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려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다 하면서도 그분과 교제하는 하루를 온전히 비울 수 없다면 그 믿음과 사랑이 과연 진정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킵니다. 이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원래 안식일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이 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진정한 안식을 위한 모형과 그림자로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구약 성도들은 참 자유와 참 쉼을 주실 구속자를 소망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구속자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모형과 그림자의 기능은 끝났습니다. 신약 성도들은 이제 안식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자유와 쉼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불렀던 그 날을 대신하여 ‘주님의 날’에 함께 모여 안식일 정신을 충실히 지켜 나갔습니다. 안식일이라는 날 자체를 맹목적으로 지킨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바르게 알고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b)고 했습니다. ‘주일’도 그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날에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한 몸으로써 예배하고 교제함으로서 구별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주일은 참 자유와 쉼을 누리는 시간으로 온전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피치 못하게 그 날에 일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원칙적으로 그 날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쉬는 날로 구별해야 합니다. 탐욕과 불신 때문에 일하지 않기로 단호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주일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동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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