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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그리스도의 마음 (사 50:4-9, 빌 2:5-11, 눅 22: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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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수많은 군중들로부터 “호산나!”라고 환영을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요, 이 한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주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시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가 지상의 왕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열렬히 환영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대원군을 호위하던 천하장안처럼 어깨와 목에 잔뜩 힘을 주고 “거 보라!”는 듯이 뽐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스캔들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영광만을 소망합니다. 저 군중들이 다음 순간 돌변하여 예수를 향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주먹을 내밀며 목소리를 높였듯이 우리도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쉽게, 아주 쉽게 우리 모습을 바꾸어 버립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제자들이 “죽는데 까지 따르겠습니다”라고 맹세했으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저 군중들을 정죄할 수 있으며, 저 제자들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들이 바로 나의 자화상이 아닙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한 주간을 통하여 우리 주님의 그 고난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부활의 감격도 새롭고, 또 그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28살의 한 청년이 사형대에 묶여 있습니다. 영하 50〫〬의 추위가 청년의 살을 바늘처럼 찔렀습니다. 이제 청년에게 남은 시간은 단 5분입니다. 이미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는데 3분이 지나갔습니다. 2분이 남아있습니다. 그는 이 순간 지난 28년의 삶에 대하여 후회하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만약 내게 다시 한번 생이 주어진다면 정말 보람 있게 살 텐데.......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다니....”. 바로 그때 멀리서 한 병사가 황제의 특사 명령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황제께서 사형집행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청년은 사형집행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와 부귀가 있더라도 그것이 신앙에 위배된다면 나는 단연코 그리스도의 편에 서겠습니다”. 이 사람이 저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고난이 인생을 진실되고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녹차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녹차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도자기도 함께 관심권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점토에 규사를 약간 섞어 1200〬의 온도로 구워낸 것이 토기입니다. 일반 점토보다 양질의 점토를 1200〬의 고온에 구운 다음 유약을 발라 900〬의 고온에 한번 더 구우면 도기가 됩니다. 도기의 원료보다 점토가 적은 고품질의 점토를 900〬의 온도로 구워낸 다음 유약을 발라 1200-1400〬의 고온에 한번 더 구워낸 것이 자기입니다. 흙의 질, 구워내는 방법, 온도에 따라 토기, 도기, 자기로 차이가 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그 질이 달라집니다. 특히 우리 주님의 고난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참여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주간을 단순하게 교회력으로 만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특별한 기회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말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시게 될 줄 믿습니다.




2.  오늘 서신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예수님의 겸손에 대한 초대 교회의 찬양입니다. 이러하신 우리 주님을 소개하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마음”만이 아닙니다. 그 인격, 그 삶의 자세, 그 인생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을 때 빌라도가 예수님을 군중들 앞에 내 세우면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지만 이 말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 정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입니까? 요새 흔히 쓰는 말로 한다면 우리의 온전하고 영원한 멘토는 과연 누구입니까?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쩌면 빌라도는 온 역사를 통하여 모든 인간들에게 이렇게 예수를 소개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빌립보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정말 본받아야 할 사람이 누굽니까? 우리 신앙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범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또 본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빌2:7에 “자기를 비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만 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시라고 합니다. 우리 찬송가에서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왕들이 그 왕관을 벗어서 만 왕의 왕이신 주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그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말하자면 빈털터리가 되셨습니다. 

    왜 그렇게 되셨습니까? 고후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하신 주님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가난해 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들이야 더 가난해질 물질도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가난은 단지 물질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 재능을 드리는 것, 기도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 방문하는 일 등도 내 희생을 전제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 왕자가 시골의 가난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왕자는 그 처녀를 왕궁으로 초대하여 청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화려한 마차를 타고 신하들을 대동하여 처녀 집으로 가서 청혼하는 것이 더 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 두 가지가 다 썩 좋은 계획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왕자는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처녀를 찾아가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배경이나 소유가 아니라 사람들끼리 진실된 사랑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요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2)  역시 2:7에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눅22;27에도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하셔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질서를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만찬과 함께 우리 주님의 세족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당연히 주님이시오 또 선생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만찬의 주빈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셔서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일이 요새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 하는 낭만적인 세족의례가 아닙니다. 당시 이런 일은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주님이 서셨습니다.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그 더러운 발을 씻어주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졸지에 그런 일을 당하게 된 제자들은 그야말로 안절부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발을 씻어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성도들 서로 간에 발을 씻어주시기 바랍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십시오. 무릎을 꿇으십시오. 자세를 낮추시기 바랍니다. 허리를 굽히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8절에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구약 이사야50:6을 보십시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 주님께 사형언도가 내리고 나서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신 그 길은 단지 고난이 아니라 수욕의 길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당할 수 없는 온갖 치욕스런 일을 다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가신 십자가 길을 따라가면서,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밑에 까지 갔을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떠합니까? 금방이라도 그 현장에 뛰어 들어가 주님을 괴롭히는 무리들을 때려눕히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 편이 되어 우리 주님을 그들의 손에서 구해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누구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그가 바로 나 자신은 아닙니까? 주먹으로 치는 자, 그 얼굴에 침을 뱉는 자, 몽둥이를 휘두르는 자, 그리고 십자가에 “꽝, 꽝” 못질 하는 자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은 아닙니까? 주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때문에, 아니 나에게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수욕과 고난을 당하신 우리 주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바로 그 길을 따라오라고 하심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지체된 형제를 위하여, 주님이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도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오늘 여기서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빌립보서에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오늘 빌2:9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더 없이 낮아지신 우리 주님을 하나님은 더없이 높여주시고 존귀하게 해 주셨습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해 주셨습니다. 사50:에는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높아지려고 한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높여주셔야 합니다. 내가 의롭게 되고 싶다고 해서 의로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의롭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고, 주님께서 사신 그 삶을 살 때, 주님이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가 어느 날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기독교 최고의 덕이 무엇입니까?” “겸손이다”.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겸손이다”.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도 역시 겸손이니라”. “선생님 그러면 도대체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교만이다” “무엇이 교만입니까?”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교만이니라”.

      오늘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나의 어줍잖은 교만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읍시다. 아니 그리스도로 하여금 내 마음은 물론 내 삶, 내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저 십자가의 길을 가십시다. 그리하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마침내 저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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