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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밀알의 희망 (고후 1:3~7, 요 1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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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에게는 말은 안하지만 희망사항이 공통으로 있습니다. 그것은 새것, 새로움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면 오늘은 새로운 날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것이 우리한테 무언가 희망을 줄 것이다 이렇게 바라고 살아갑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새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마 사는 것이 괴롭고 힘들고 지루할 것입니다. 매일 같이 새로운 날. 새로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버리지 마십시다. 그런데 예로부터 우리한테 주는 이야기 가운데 하늘나라에 새로운 게 없다. 이렇게 저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늘나라에 새로운 게 없다. 경험에 따라서는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 강원용 목사님이 아카데미 설립40주년을 기념하면서 여러분과 상의해서 내놓은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 된 새길. 우리나라 역사에 귀중한 역사발전을 이룬 사람들 가운데도 옛것과 새것에 관한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엄선해서 써놓은 여러 가지 글들을 보았는데 그중에 우리 연암 박지원 씨가 쓴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하늘과 땅은 비록 오래 되었지만 계속해서 새것을 낳는다. 맞는 말입니다. 해와 달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그 빛은 날로 새롭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하늘. 얼마나 되는지 제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땅 그렇게 많이 경작하고 쓰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것을 내어놓는다. 해와 달은 하늘에 붙어있는데 그렇게도 오래되었는데 비추는 빛은 변치 않고 날로 새롭다.

하늘도 땅도 피조물. 해와 달도 피조물. 창조주는 어떨 것 같습니까? 사람들 만들고 역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너무나도 오래 되신 분 그분은 시간이 있기 전부터 계시기 때문에요 언제 나셔서 언제 완성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나님은 엄청나게 오래되신 분인데 매일 같이 우리한테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 틀린 말 아니겠지요. 피조물도 그런데.

하나님이신 은총은 옛날이나 지금도 똑 같은데 예수란 분이 오셔서 이 천 년 전에 하신 말씀 아주 오래된 말씀인데 그 말씀을 읽고 그 분의 살아가신 행적이나 말씀을 따라가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거기서 나오는 은총은 샘물은 말씀은 진액은 매일 같이 새롭다.

우리 역사에서 살아간 수많은 인재들 훌륭하신 분들의 이야기 그분들의 살아가신 귀감이 될 만한 행적들은 정말 오래 되었지만 제가 기쁨으로 받아들이면 늘 새롭습니다. 온고지신. 옛날 있는 걸 그대로 들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날에 있었던 일을 아주 오래된 것들을 제가 오늘 지금에 제 것으로 만들고 받아들이면 늘 새롭습니다.

그런데 옛날 것을 옛날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만 진실로 어려운 일은 옛것을 아주 오래된 것 속에 진실이 있다고 그 진실 지금 제가 받아서 오늘에 삶속에 역동적으로 다시 작용하고 만들고 새로운 삶을 만들겠다고 하는 결단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옛것을 옛것대로 그냥 지나쳐 버리는 거 또 한 가지 과제지만 오늘에 이끌어 와서 오늘을 신명나게 만드는 일 그것은 상당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있고 예수 이야기, 하나님 이야기, 성령 이야기를 다 들어서 알고 매일 같이 읽고 명상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는 옛날이야기를 분석하는 학문적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어도 알아야 되고 당시 상황도 알아야 되고 분석도 해야 되고 해석도 해야 되는 학문적 작업이 쉬운 건 아닙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금은 설교 말씀 드리면서 더 어려운 것은 뭐냐 하면 그분의 말씀이 오늘도 살아 있느냐. 저한테 새로운 생명력을 주느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 하도 세상이 악하고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 내가 홍수를 통해서 다 멸망시키고 방주에 탄 사람만 살려두었다. 그리고 무지개를 통해서 우리한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내용은 뭐냐 하면 다시는 홍수로는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산이 옮겨지는 일이 있고 언덕이 흔들리고 홍수가 나고 해도 노아 때처럼 세상을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내 약속 무지개를 통한 평화의 약속 생명의 약속은 내가 지켜가겠다. 지금도 홍수 때문에 세상이 멸망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그리고 많은 피해가 났지만 노아 때처럼 세상이 몽땅 홍수 때문에 가라앉은 일은 없습니다. 그 사실이 지금도 오늘도 혹시 내일까지도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까? 제가 그걸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고린도서 얘기로 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받고 아프시지요. 저희들도 선교한다고 고난 받고 아픕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함께 당하기로 결단하십시다. 고난 속에 희망이 싹터오는걸 믿으시면 고난을 같이 받읍시다. 모든 고난이 믿을 만합니까? 고난이 그렇게 희망의 산실이 됩니까?

혹시 여러분이 이제 곧 세상을 하직하는 것을 앞에 두고 기억력이 사라지기 전에 기억력이 있을 때 여러분의 선조나 여러분 자신이나 한번 후손들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고 고백록 비슷한 일기를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기를 많이 쓰시는데 저는 전기를 읽을 때마다 많이 감추고 전기들을 쓰신다 하는 느낌들을 받습니다.

그 전기에 보면 귀한 이야기 귀감이 되는 이야기는 참 아름답게 쓰시는데 아주 창피한 이야기 슬픈 이야기 실패한 이야기는 좀 쓰기가 주저스러운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성향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고린도 후서 이야기는 사도바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고백적 전기를 쓰고 싶으면 고통 얘기를 제발 써라. 어려웠다고 써라. 실패했다고 써라. 아팠다고 써라. 쓰고 난 다음에 그 아픔 가운데서 희망이 솟았다고 고백해봐라. 저는 여러분이 수십 년 동안 경험하고 저도 경험한 역사 속에서 모든 고백의 이야기들 고난의 이야기들 다 쓸 필요가 있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못써도 적어도 고난 속에서 고난을 딛고 일어났더니 결국에는 희망이라는 열매를 낳았습니다, 하는 고백이 있으면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한번 고난의 이야기를 기록해 봅시다. 가슴에도 기록해 보고 글로도 기록해 보시는데 오늘 신구약성경 전체를 보면 이런 고난의 이야기가 대게의 경우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고 슬픈 이야기도 있고 힘든 이야기도 다 있습니다.

모든 것의 결론 이야기는 하나님의 역사적 고백록이 성경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고백록 속에 고난의 얘기가 엄청나게 많이 등장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고난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받으신 고난이든 선교사를 통해서 받은 고난이든 제사장들을 통해서 받은 고난이든 모든 사람이 욕함으로 받은 고난이든 하나님의 고난 얘기가 하나님의 성경책 전체를 다 휘감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또 하나는 고난 자체가 좋거나 아름다워서 쓴 것이 아니라 고난이 그릇이 되어 그 그릇 속에서 희망이 넘쳐 올랐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 읽고 느끼긴 그렇습니다. 성경책이란 인간의 역사를 무대로 하고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중에 영광의 피조물인 인간을 주역으로 하여 하나님 대신 받은 모든 고난의 이야기를 기록시키고 거기서 희망이 솟아난 이야기를 답으로 써라.

제자들 보내신 이야기, 예수를 보내신 이야기 전부가 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핀 희망의 꽃. 그 이야기가  성경 전체의 주류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받았을 때 어떤 고난의 이야기는 조금 아름답게 꾸미기도 하고 어떤 건 너무 고난스럽게 쓰기도 하고 저자에 따라서 약간의 편차가 있고 차이가 있기는 하나 공통점 하나는 하나님은 아프시다. 하나님이 만든 세계는 아프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인간도 아프다.

무슨 이유든지 아프다. 그런데 아픔이 목적이 아니고 아픔 속에서 희망이 나왔다. 이야기를 총 결산하면 오늘 예수께서 오셔서 예수님의 biograph를 쓰다. 그러면 뭐라고 쓰냐하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마음대로 쓰십시오. 단 전제가 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라 이른 고난의 극치를 받았습니다. 근데 고난의 극치인 십자가 속에서 부활이라는 꽃이 피었답니다. 그 이야기를 전제로 해서 예수 이야기를 맘대로 쓰십시오. 전 최근에 도마 복음서 이야기, 예수에 관한 여러 가지 사본이 발견돼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소설로 작품으로 또는 신학적 실화로 많이 등장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렇고 저러고 말이 많습니다만 그 정도 이야기는 좀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되지 안 씁니까. 전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고난에 벽을 넘지 못하고 고난 속에 있었습니다. 죽었습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부활의 꽃이 생명의 꽃이 피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랍니다. 그것만 지켜주면 전 뭐든지 가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는 다 받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기록했던 사건의 이야기, 복음서의 기록, 역사의 기록이 원본이 없는 한 사본 밖에 없는데 사본 한 줄기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그렇게 너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고난 속에서 희망은 반드시 꽃 피어 납니다.

그걸 믿으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믿으십시오. 오늘 요한복음은 이런 전제하에서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읽으면 두 가지 주제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누구시냐 하면 그분은 생명의 주. 요한복음의 주제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그냥 살았다고 생명이 아니고 사랑이 없는 생명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은 사는 거고 사는 것은 사랑을 먹고 살고 사랑을 잉태하는 생명이 진짜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두 가지가 오늘 요한복음의 주제이고 이런 주제를 가지고 요한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풀어갑니다.

예수님 말씀을 빌어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그대도 있습니다. 우리는 곡식을 먹고 살아갑니다. 쌀이고 옥수수고 뭐든지. 밀알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영양소입니다. 근데 그 밀알은 다시 또 다른 밀알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본래 자라났던 땅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땅속에 들어가서 썩어야 합니다. 그걸 우린 죽는 거라 표현합니다.

땅속에 떨어져서 썩으면 썩은 채로 없어지는 게 아니라 거기서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나고 열매가 맺어서 무한대의 밀알을 우리한테 생명으로 준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서 이 땅에 와서 반드시 밀알처럼 되어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한답니다.

썩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썩으면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나와서 새로운 무한대의 구원의 열매를 이룬다고 합니다. 밀알 이야기는 하나님의 역사 통치 방식입니다. 밀알 이야기가 하나님의 역사 철학입니다. 밀알 이야기가 하나님 나라에 다스림의 방식입니다.

하나님도 밀알처럼 되셨으니 우리도 밀알처럼 되십시다. 저는 싹이 나는 밀알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우리가 먹는 쌀. 우리가 먹는 보리. 밀. 그냥 있으면 아름다운 곡식인데 이 곡식이 땅에 들어가면 영양분이 있는 땅속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반드시 썩어야 새로운 식물을 창출해 낸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는 걸 우리 인간의 용어로 죽음이라 부릅니다.

저희가 죽어서 땅속에 묻혀서 장사지내고 나면 죽었다고 합니다. 밀알도 죽고 우리도 죽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고난의 극치입니다. 거기서 다시 새로운 줄기가 나고 뿌리가 났다고 그러는데 처음 생명과 뿌리가 난 이후에 밀알의 생명 아마 밀알 입장에서 보면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된 것을 가지고 이것을 혹시 영원한 생명의 시작 아니냐고 항변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밀알을 놓고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끝입니다가 아니라 죽음은 한 밀알에서 무한대의 밀알을 이끌어 내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가는 그 중반의 과정이 땅에 떨어져서 썩는 겁니다. 우리가 죽는다라고 표현하는 말. 땅에 떨어져 썩어서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낸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밀알 이야기에 담긴 하나님의 생명철학, 생명신학. 하나님의 역사철학의 핵심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라 부른 하나님의 아들도 밀알로 왔다가 무한대의 밀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이라 부른 땅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죽고 썩고 죽어야 한답니다.

그러고 나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소망의 나무를 만들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썩고 죽으면 다시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만들어 간답니다. 성탄절의 생명에서 영원무긍한 부활의 생명에 이르는 중간 기착지가 중간 과정이 십자가 고난의 사건입니다. 저도 죽고 고난 받고 우리 똑같습니다.

죽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까? 우리의 당하는 실패의 아픔을 고난을 뭐로 받아들이고 싶습니까? 인생의 끝이라고 성공의 좌절이라고 실패를 모두 받아들이고 싶습니까? 모든 이 사건 속에서 밀알의 본을 받는다고 하면 저의 하나님이 주신 한 생명에서 항상 또 주실 영원한 생명의 중간에 있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가는 과정에 있는 중간 매개체로서의 죽음을 제가 받을 수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 그러나 믿을만한 이야기. 예수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예수도 죽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를 통해서 죽음의 경험을 했습니다. 썩어집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다른 생명이 움터 난답니다. 밀알의 작은 진실에서 배우시지요. 오늘 밀알 얘기 많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밀알이라면 저는 기꺼이 썩겠는데 제발 뿌리내리게 썩게 해주십시오. 제가 썩고 싶은데 줄기가 좀 나게 해주십시오. 제가 썩고 싶은데 제가 죽고 싶은데 죽은 다음에 무한대에 열매 좀 맺어 주십시오. 왜 밀알에서는 그런 기적이 가능하고 인간에서는 불가능 합니까? 만물의 영장이라는데요 피조물들의 영광이라는데요 예수님의 말씀이 내가 밀알이다. 밀알보다 인간들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면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썩자.

고난당하자. 실패하자. 매 맞고 울자. 그리고 다시 살아나자. 예수그리스도의 진실 속에서만 가능 합니다. 오늘 세계 역사를 통해서 보면 작은 나라, 큰 나라, 힘없는 나라, 힘 있는 나라 통치 갈등방식이 너무나 차이가 나서 우리한테 불안합니다. 최근에 언론 보도를 봤더니 미국에서 지성인들이 다시 일어나서 제3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군사 경제 이 문제를 가지고 압박하고 누르면 꼼짝 못하고 평정될 것이다. 그래서 소위 자기들 용어로 hard power가 지배를 하다가 그것만 가지고 세상에 평화를 줄 수가 없어서 문화적인 approach, 또는 외교 이야기 인도주의 등등 아주 부드러운 걸로 서로 인간관계를 하기가 좋다 그래서 한쪽에서 soft power. 어느 것 하나도 해법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라크의 사건 모든 사건 속에서 어느 한 파워만 가지고도 세상이 안 됩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hard power가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내려치고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을 베풀 때는 과감하게 사랑도 베풀고 필요할 때마다 적적히 섞어서 소위 시너지 효과를 내는 새로운 안이 없을까 자기들이 만들어낸 얘기라고 합디다.

그러면서 hard power도 아니고 soft power도 아니면서 두 개의 긍정적인 것을 합한 smart power. 세계가 좀 smart 했으면 좋겠는데 컴퓨터에서 hardware가 있고 software가 있는데 앞으로 smartware 이렇게 나오면 어떨까? smart한 세상 smart한 power, smart한 인간은 뭡니까?

저는 오늘 복음서를 읽으면서 좋은 대안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로 이 세상이 smart 해지려고 하면 우리 역사가 smart한 역사가 되려고 하면 밀알 한 알의 기적이 밀알의 현실이 그 속에 철학적 사상적 신앙적 기초가 되면 진짜 우리는 smart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이 제안을 합니다. 내가 smart world에 밀알이 되어 줄 것이니 나와 함께 이 길을 갈수 있느냐?

그럼 나의 능력으로 나와 함께 세상이 우리 가정이나 사회 전체가 저 자신이 한번 smart한 인간이 되어 봅시다. 밀알 하나의 기적을 믿으면 그렇게 합시다. 예수와 함께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그 고난을 그것으로 그친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고난 속에서 희망을 잉태해 내십시다.

밀알이 썩어도 줄기가 나온다 합니다. 살아있는 씨앗이면 예수와 함께 하는 씨앗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새로운 생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사랑 때문에 고난을 견딥시다.

사순절이 부활절로 가는 새로운 영원한 삶의 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 속에 우린 아름다움을 만들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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