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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눈 (눅 22:5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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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은 4월 1일입니다.
4월이 평안하고 복된 날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의 분과 “4월이 복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Palm Sunday)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마21:8)
나무 가지를 베어 펴면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요12:13)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환호성을 올렸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요12:13, 계7:9).

그 당시 유대 팔레스타인 지역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먹고 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때 예수라고 하는 젊은이가 나타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풍랑을 잔잔케 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예수님이 무엇인가 큰일을 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기만 하면 …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우리를 살려 주세요.’하는 뜻의
“호산나”를 외쳤습니다.(마21:9)
그러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하신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고난의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하는 것이고
전 세계 모든 크리스챤들이
경건하게, 엄숙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오늘 강단에 장식된 모양만 보아도
여러분이 주님의 고난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에는 생일잔치나 결혼식 또는 즐기는 파티를 금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에는 주로 기도하고, 금식하고, 묵상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고난주간을 고난주간답게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멀찍이 따라가니라

예수님이 감람산 중턱 겟세마네에서 기도하고 계실 때
가룟 유다는 예수를 골칫거리로 생각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거기에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눅22:52)
군인들(요18:12)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왔습니다.

유다는 어둠 속에서도 예수님을 쉽게 체포 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 다가가 입을 맞추었고 예수님은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갔습니다.(마26:57, 요18:13 참고).
예수님은 먼저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의 집으로 끌려갔었습니다.(요18:13)

예수님이 대제사장 집으로 끌려 들어갈 때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어떻게 따라갔습니까?
54절 봅니다.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눅22:54)

어떻게 따라 갔다고요?
멀찍이 (Peter followed, but at a safe distance. - Message)
(Peter was following from a distance. - The Simple English Bible)
(Peter followed at a distance. - NIV)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까지 고백했던 베드로가
잡혀 가는 예수님을 멀찍이 … 안전거리를 두고 …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가졌었지만
눈앞에 닥친 어려움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4:18) 했습니다.

단순한 이성적 사랑에만 빠져도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물 불 안 가립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마음에 두려움이 … 생겼다면
베드로의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피해보고 싶지 않아서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안전거리를 두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해보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굳이 피해 볼 것이 무엇인가?
기적을 행하셨던 예수님이지만
혹시 살면 좋고 아니면 미련 없이 돌아가려고 … 거리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안전거리를 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희생이 전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희생하고, 손해 보고, 참는 것이 없다면 …
그런 사람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요,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우리교회도 보면 고등학교 3학년만 되면
예수님과 교회와 거리를 두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3 때 교회에 나오면 손해 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27년 동안 목회 하면서 보면
고 3때 공부한다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 가운데
제대로 된 학교에 가는 것을 못 봤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1시간 정도 예배드린다고 해서
대학에 못 갈 정도의 실력이면 안 가는 것이 낫습니다.

거리를 둔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손해를 볼까봐 그러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것 자체가 더 손해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만 하면 예수님과 교회와 거리를 둡니다.
대목만 되면, 돈 좀 벌면 거리를 두고 …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예수님과 교회와 목사와 거리를 둡니다.

보통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적당히 안전거리를 두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리를 두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과 거리를 두는 것은 예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와 목사와 거리를 두는 것 점차 예수님과 멀어지게 되는 길입니다.
신앙생활은 운전이 아닙니다.
안전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꼭 붙어 있는 … 교회에서 멀어지지 않는 …
목회자와 날마다 얼굴을 대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할지라도
늘 기도함으로 만나고 가깝게 지내는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자신을 숨겼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 숨기고 예수님으로부터 멀찍이 있었습니다.

신분도 숨겼고 하인들과 앉았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범죄 한 후에 어땠습니까?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자신을 숨겼지요.
무화과나무 잎으로 벗은 자신을 감추었습니다.(창3:7)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신분도 숨겼습니다.
숨기는 그것이 곧 죄인의 길에 서는 출발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인 것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혹, 다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알까봐 두려워하신 적이 있습니까?
목사인 것을, 장로인 것을, 권사인 것을 …
집사, 교사, 찬양대,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을 … 알면 안되는 때가 있었습니까?
그때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며 사시기 바랍니다.

최초의 인간이 범죄 한 후에 어땠습니까?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자신을 숨겼지요.
베드로는 하인들과 앉았습니다.(55절, 마26:58)
사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 옆에 앉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동행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리 두고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어울려 앉았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에 보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갔지만 …
“그 결말을 보려고 …” 갔다고 했습니다.
제자로서 보다는 관찰자로서 …
어떻게 되는 가 그 결말을 구경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쫓으십니까?
멀찍이 계십니까?
멀어지려 하십니까?
멀어지고 있는 중입니까?

거리를 좁혀야

이제 이 고난 주간에 자신과 예수님과의 거리를 확인해 보시고
그 거리를 좁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① 예배로 좁히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주님과 거리가 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요4:23)

그런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문제가 생기면 예배로부터 멀어집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라 했습니다(히10:25, 요4:23~24).

영적으로 흔들리는 사람은 예배로부터 멀어집니다.
예배로부터 멀어지면 교회도 싫어집니다.
은혜 속에 살 때는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를 만나면 반갑지만
예배로부터 멀어지면 목사도 싫어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잘 할 때는 길에서 목사님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지만
예배로부터 멀어진 사람은 목사를 만나면 ‘재수 없게’여긴다고 합니다.
예배가 싫어지면 만나는 것을 꺼려합니다.
예배가 싫어진다는 것은 주님과 거리를 두었다는 뜻입니다.

② 기도로 좁히시기 바랍니다.
좋은 사람끼리는 전화를 자주 합니다.
여러분, 아이들의 전화요금이 많이 나오면 좋은 사람이 생긴 징조입니다.
자꾸 얘기하고 싶고, 통화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꾸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알립니다. 기도합니다.
눈을 뜨든지, 밥을 먹든지, 어디를 가든지,
핸들을 잡든지, 무슨 계획을 하든지 계속 기도합니다.
그런데 주님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③ 하나님께 드림으로 좁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예물을 드릴 때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마6:21).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많이 쓰는 곳이 어디입니까?
마음이 거기에 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④ 선행으로, 빛 된 삶을 통해 거리를 좁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면
내가 크리스챤다운 삶을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싶게 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세요.
처음 사람들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끊임없이 핍박의 대상이었습니다.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교회가 칭찬 받았던 시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을 마귀가 싫어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마귀는 더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애쓰면
꼭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잡아 흔드는 사건이 생깁니다.
주변에 사랑했던 사람이 배신하고, 믿었던 사람이 내 눈에서 눈물을 쏟게 합니다.
주위에서 이상한 말을 합니다.
언론을 통해서든지, 사회적인 여러 조건을 통해서든지 …
내 마음을 흔드는, 내 믿음을 흔드는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이“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거리 두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지 주님과 거리를 둔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멀찍이 앉아 있을 때 예수님과 한 패라고 생각하고
다가선 사람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57절)
-“나는 아니로라”(58절)
- 그리고 60절에 또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 기둥 같이 여겼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때 닭이 울었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회개한 줄 압니다. 아닙니다.

34절 “…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눅22:34)
는 말씀이 생각나서 베드로가 회개하고 통곡한 줄 아는데 … 아닙니다.
만일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에 회개를 했다면 …
닭 기르는 사람, 시골에서 닭 우는 소리를
매일 듣고 사는 사람들은 매일 회개하고 눈물 흘리며
신앙생활 잘 하겠네요. 아닙니다.

61절 보세요. 세 번 씩 모른다고 한 베드로를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눅22:61)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시니까, 눈이 마주치니까 … 통곡했습니다.
어떻게, 어떤 눈으로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셨을까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 영상 화면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하고 …
주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으며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 하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은 바라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 보십니다.
삶의 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주님을 모른다고 할 때도 우리를 … 보십니다.
가슴 아픈 눈으로 …, 서글픈 눈으로 …, 안타까운 눈으로 …
그래도 그래도 사랑하는 눈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살면서 주님의 눈과 마주칠 때
부끄러운 순간이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여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모른다 하고
주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던 순간 순간을 회개합니다.
가슴 아픈 눈으로 …, 서글픈 눈으로 …, 안타까운 눈으로 …
그러나 사랑하는 눈으로 쳐다보시는 주님의 눈을
마주보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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