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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마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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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를 보리라(마태복음28:1-10)
 
  조지 뮬러(George Muller)는 일생 동안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 응답을 많이 받은 것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쁨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한마디로 극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였던 71세 때 그를 따르던 성도들과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누렸던 기쁨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어린 동료 신자들과 젊은이들에게 영적 즐거움과 기쁨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 주고 싶습니다. 정말 기쁨을 누리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말씀을 읽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는 진실로 애정 어린 마음으로 권면하고 싶습니다. 나는 성경을 100번 이상 읽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읽을 때마다 늘 새롭습니다. 나의 평안과 기쁨의 근원은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조지 뮬러처럼 신앙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말씀 속에서 그 맛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왜 어떤 이는 말씀을 읽어도 종이를 씹는 것처럼 아무 느낌도 없는데 다윗 같은 인물은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던 것일까요? 말씀을 미각으로 느낀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영혼의 미각을 만족시켰기에 시인은 그렇게 단 것으로 말할 수 있었을까요?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지만, 맛을 보는 미각은 나머지 감각들인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디지로그>에서 "인간의 먹는 행위는 생리적인 욕구나 물질적인 경제 가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나타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몸에 체화되는 것은 결국은 먹는 행위를 통해서 미각을 느끼고 몸에 흡수되어야만 생생하게 남는다는 뜻입니다. 앞에 정말 먹음직한 사과가 있어서 아무리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아도 그것은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과는 먹을 때에만 비로소 내 것이 되고 내 몸으로 체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수사적이거나 교언(巧言)이 아님은 나환자촌에서 살았던 사람의 경험적 고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환자들에게 최후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 있다면 그것은 미각, 즉 맛에 대한 쾌락이다.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코와 귀와 입이 문드러져도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미각만큼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보고 읽는 차원에서 맛을 보는 차원으로 올라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처럼 말씀을 먹는 경지로 올라서서 날마다 송이꿀보다 더 단 것을 우리 영혼의 미각으로 느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매년마다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반복되는 부활 주일이 아니라 해마다 부활 신앙의 맛이 깊어지고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더 가까워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확실하고 뜨겁고 강력한 부활신앙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부활주일을 몇 번 맞이했습니까? 확신과 감격이 햇수만큼 비례하고 있습니까? 부활은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만나는 최고의 축복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믿으면 보리라

  본문 5-6절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여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말에서 강조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강조는 분명한 죽음이 분명한 부활의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함은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결코 외롭게 고립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동을 감찰하시며 함께 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 대한 여인들의 신실한 믿음과 변함 없는 사랑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천사는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부활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께서 '몸'으로 부활했다고 하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부활하셨고 죽었던 그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공동 협력에 의한 신적인 승리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신적 권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모방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역사적인 신성한 사건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믿기에 지금 여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최근 <복음과 상황>이라는 잡지에 "20년 낚시 다닌 사람과 20년 교회 다닌 사람과의 차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20년 동안 낚시하러 다닌 사람은 아마도 매주 낚시 잡지를 보면서 연구하고, 또 실제 낚시 현장에도 참여했을 터이니 낚시에 관한 한 대단한 고수이자 전문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낚시만 했는데 어찌 아무런 변화가 없겠습니까? 그런데 20년 동안 매주 예배에 참석하여 3,40분씩 꼬박꼬박 말씀을 듣고 매일 말씀을 묵상했는데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앙 상태에 별 차이가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주님 앞에서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만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기적이고 축복입니다. 놀라운 최대 행운입니다. 복권 당첨과는 비교가 안 되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믿음의 평준화가 아니라 믿음의 차별화와 특수화가 되어야 합니다. 발전과 성장이 필요합니다. 1년 믿은 성도나 50년 믿은 성도의 믿음이 똑같다면 이는 큰 문제입니다. 어딘가 병들고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고 뜨겁고 흔들리지 않는 살아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고 자랑하실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보는 축복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전하면 보리라 

  본문 7절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자들은 더 이상 그 무덤 앞에서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천사들은 그 여인들에게 예수 부활의 메시지를 황급히 전하라는 중요한 사명을 맡기었습니다. 이는 분명 권유나 선택이 아니라 촉급한 명령이며 필수입니다. '모든 족속'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과 정치와 종교와 문화와 이념과 지역과 풍습과 그리고 그밖에 모든 것을 다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외치고 전해야 합니다. 입을 다물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벙어리 교인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는 우주적이요 보편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온 인류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동서고금 누구를 막론하고 다 믿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장벽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기적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복음전파의 결과입니다. 전할 때에 은혜를 받게 되고 믿음이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믿음이고 순종이고 은혜이며 놀라운 축복입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기독교 신자들이 있습니다.
  첫째, 많이 아는 교인입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와서 교회라든지 성경에 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이 모두 몇 장이냐 물으면 "구약이 929장, 신약이 260장, 더해서 모두 1,189장"이라는 대답이 바로 나오고, 성경에서 제일 긴 장이 어디냐고 하면 "시편 119편"이라고 막힘 없이 대답합니다. 그러나 이런 성도들을 살펴보면 정작 삶의 변화는 없습니다. 남들의 본이 되지 못합니다.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붙여 주면 전도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합니다.

  둘째, 동화된 교인입니다. 어떤 교단이나 어떤 신앙의 컬러에만 적합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예배 시간에 장로님들이 강단에 올라가서 이렇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정통보수주의 장로교에서 신앙생활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구원받은 것이 감사하지, 자기 교단이 장로교다, 감리교다, 침례교다 하는 사실이 감사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어느 교단이 자기한테 꼭 맞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단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진정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셋째, 변화된 교인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변화라는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 점을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하라고 부르셨지만, 우리는 회심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 삶의 변혁을 촉구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의 천국에서나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조차 달라진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실패하여 단번에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보면, 변화에 성공하느냐의 여부가 바로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열쇠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R. A. 토레이라는 위대한 신앙의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번역본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경 번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변화된 삶으로 하는 번역이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철저하게 변화되면 우리가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포기할 것이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들입니다. 이제 지식과 동화의 교인이 아니라 변화된 교인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담대하게 전하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순종하면 보리라 

  본문 8-10절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여인들은 천사의 말에 철저히 순종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만나는 최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보라고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철저히 천사와 주님의 말씀만 전하였습니다. 철저한 순종입니다. 지금 우리 신앙에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불순물을 제련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리적인 갈릴리보다는 영적인 믿음과 선교와 순종의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신비한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과 가정과 교회가 순종의 갈릴리가 되어야 합니다. 100% 순종의 갈릴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죄악과 세속적인 불순물을 씻어내야 합니다.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바꾸어서 순종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지식과 물질과 사람과 여러 가지 욕망들… 위치와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리우고 있고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극이고 불행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모든 것들이 가치 있는 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부가 가치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순종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고 우리의 모든 가치를 높여 주십니다. 성도의 주가를 끝없이 치솟게 하십니다.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끌어내릴 수 있겠습니까? 누구도 손 못 댑니다.

  한국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강화읍에 김씨 부인이 살았습니다. 그는 80세의 고령으로 친척 하나도 없이 종 하나만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에게 성경이 건네졌지만, 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한글을 공부하여 깨우친 뒤에 성경을 읽다가 말씀 속에서 주인은 한 분뿐이며 모두 한 형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교회 식구들과 자신의 종 복섬이를 불러 놓고 마태복음 18장 15절에서 20절을 읽은 다음 종 문서를 태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를 내 종으로 알지 아니하고 딸로 아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씀 앞에 일어서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씀 앞에 영혼의 옷깃을 여미고 일어서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사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교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좋은 교회는 성경 말씀이 삶의 유일한 규범이요 법칙이라고 인정되는 교회입니다.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정확하게 선포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부분도 들어 있다는 얘기인 셈입니다. 인간의 해석에 따라서 성경의 권위가 좌우되는 경우입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교회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높이는 교회, 즉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교회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때 변화되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더 순종합시다. 순종하는 그곳에 주님이 계시고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믿고 전하고 순종하여 나를 구원하고 축복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만나고 체험하는 영화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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