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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고전 15:19-26, 요 1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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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본문 : 고린도전서 15:19-26, 요한복음 11:17-26

1.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무덤 문을 열고 생명으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은총이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온통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 우리 주님의 부활의 생명이 마침내 승리하여서 마치 죽음과 같은 겨울이 물러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듯이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생명의 푸른 계절이 오게 되기를 소원하여 마지않습니다.

    요20: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는 3일전에 장사지낸 주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드리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는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무덤문은 열려있었고 그가 그토록 찾던 주님의 시신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는 무덤 밖에 서서 울면서 무덤 안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져있던 마리아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평소처럼 사랑이 넘치는 음성으로 “마리아야!”라고 그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주님을 알아보고 그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슬픔은 살아졌습니다. 절망도 끝났습니다. 기쁨과 감격이 넘쳤습니다. 그는 그 길로 곧바로 제자들을 찾아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역사상 첫 번째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 땅에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지배하는 새 세계의 역사가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저 막달라 마리아처럼 헛된 것을 찾거나 헛된 장소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에는 절망의 어둠이 먹구름처럼 덮여 있으며, 우리 삶의 앞길은 캄캄하기만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땅도 역시 소망보다는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들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처럼 여기저기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갈수록 태산입니다.

    바로 이런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 옛날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가신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신 것을 믿습니다. 특히 이 부활절 아침에 성도 여러분 심령 심령마다,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우리 교회에, 그리고 이 땅에 부활의 생명으로 찾아오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활절은 범상한 날이 아닙니다. 결코 기념일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새롭게 찾아오신 날입니다. 생명의 주님께서 이 땅을 찾아오신 날입니다. 우리가 오늘 부활의 주님을 영접할 때 우리 안에 깃들인 죽음의 세력이 물러가고 부활의 생명이 약동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교회의 주님으로 영접할 때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을 것이요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2.  오늘 봉독한 복음서(요11:)는 우리가 이른바 “나사로 부활장”이라 일컫는 내용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께 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반응이 참 놀라웠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키엘케고르가 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은 맨 첫머리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살아 있으나 실상은 죽은 사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지금 어떤 사람이 죽어 장례식을 하고 있어도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는 선언을 받을 사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장례식 때 흔히 사용하는 김활란 박사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죽거든 부디 슬픈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승리의 개가를 불러 달라”. 왜냐하면 그가 비록 육신은 죽어 장사지내지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자요 부활과 함께 영원한 승리자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은 나사로를 문상해야 하는 자리에서 말씀하시기를 “나사로는 잠들었으니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죽은 것을 “잠잔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잠자고 있지 않습니까?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말씀이 오늘 여러분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까? 이런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지금도 이 부활절 아침에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려 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 현장에서 살렸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독자를 매장하러 가는 길에서 살렸습니다. 그리고 베다니의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렸습니다. 주님이 찾아가셔서 “달리다 굼” 즉 “소녀야, 일어나라!”, 그리고 “청년아 일어나라!”, 또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그들이 살아났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에게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잠자던 자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죽은 자라고 할지라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이와 같이 오늘 여기서도 생명으로 부활하게 될 줄 믿습니다.




3.  예수님은 죽은 지 이미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찾아가십니다. 마르다는 주님께 원망 섞인 말을 합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로서는 “오늘, 여기서” 주님이 하실 일은 다 끝났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운운하지만 우리도 마르다와 같은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신 것을 다 믿습니다. 우리 신앙 고백에도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2천년 전 유대 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또 우리들은 성경대로 이후에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신앙고백에도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 언젠가 되어질 일입니다. 모두 “오늘, 여기서”의 일이 아닙니다. 물론 과거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몸이 부활하게 된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소망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활신앙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사로에게 되어진 일들이 무엇이었습니까?

  (1) 그는 병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을 살아갈 때 숱하게 육신의 질병을 앓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주께서 우리 병을 고쳐주시기를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육신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병이 육신의 병뿐입니까? 마음의 병도 있고 영적인 병도 있습니다.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심각하고 이 모든 것보다 영혼의 병이 더 심각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영혼의 병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이것이 오늘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울어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는” 이 불치의 병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고침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여기서”의 부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부활의 생명, 부활의 씨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산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주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2)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것도 죽은 지 이미 나흘이 지났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사흘까지는 소생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의 사흘이 끝났습니다. 나흘이 되었다는 것은 상황이 이미 종료된 것을 말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절망뿐입니다.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앞에서는 인간의 끝이 오히려 시작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사람들은 이미 죽어버렸으니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절망은 없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님을 믿고 오히려 그 절망을 승리의 출발로 바꾼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요셉은 주님을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절망 속에서 주님을 만나 소망을 찾았다면 이미 여러분 속에 부활의 주님이 역사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나사로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무덤문은 무거운 돌로 막혀졌습니다. 보통 우리는 인간의  일생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합니다. 출생으로 시작된 인생이 무덤에 묻히는 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일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덤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영생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미 부활생명을 소유하고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를 가두거나 묶어 둘 수 있는 세력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망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아니 다른 어떤 피조물도”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거나 얽어맬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참 자유인이라고 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예수님도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럴 때 부활의 주님을 모신 우리들은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라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나사로의 시신은 썩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은 무덤 문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죽은 지 이미 나흘이 지났으니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아니라 주님을 믿느냐입니다. 주님을 믿기만 하면 어떤 절망적인 현실도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의 신앙이 썩어 냄새난다고 실망하십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으십시오. 바로 냄새나는 저나 여러분을 통해서도 부활의 생명이 역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혹 교회가 썩어 냄새난다고 실망하십니까? 그래서 교회에서 멀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시선을 부활하신 주님께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이 교회를 살려내고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2007년 부활절을 맞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오늘 이 질문에 여러분의 진실된 신앙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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