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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 (행 1: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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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
본문 / 행 1:22-26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사람들은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행 1:14절에 보면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의 사실을 믿는 약 120여명의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베드로는 가륫 유다가 빠저 나간 빈자리를 채워야 할 것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열한 사도와 모든 성도들은 가룟 유다가 빠져나간 사도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천거한 다음 하나님께서 선택해주시기를 위해 기도하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투표를 한 것입니다.
  투표에서 맛디아가 당선되자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알고 열한 사도의 숫자에 가입하여 가룟 유다의 자리를 직무를 대신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도 결원 보충 투표를 하는 목적과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래 사도를 세우신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행 1:22절을 보면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도를 세우신 목적은 바로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에 한 사람이 결원이 생기자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차질이 생기게 될 것을 우려하여 처음부터 항상 함께 다녔던 사람 중에서 부활의 목격자 된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눅 24:48절에서 “너희는 이모든 일의 증인이로다” 라고 하셨는데 이 모든 일이란 그 앞 절인 눅 24:46-47절에서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러므로 행 1:8절에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의도는 제자들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행 2:32절에 보면 사도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라고 한 말씀에서 보듯이 자신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행 3:14-15절에서도 베드로는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라고 말했고 행 5:32절에서도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라고 확실하게 선포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우신 목적이 부활의 목격자 되어 부활의 증인이 되게하려하신 것이고 그런 주님의 의도를 사도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고 부활을 목격한 후에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와 제자들을 세우신 목적이 부활의 증인이 되게하려 하심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역시 부활의 증인이 되게하려 하심입니다.

  오늘날 어떻게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는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즉 부활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믿는 것같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사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고는 부활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사망권세를 깨고 살아나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 아들 하나를 둔 어느 부부 집사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분다 부모님이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며 집사 직분을 받았지만 열정적인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녔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식사할 때도 가족끼리 식사 기도하는 법도 없고 혼자 밥을 먹을 때도 기도하고 식사했는지 그저 했는지 자신들도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물론 가정 예배는 한 번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외아들 하나 잘 기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외아들 하나 잘 기르기 위해 공부에 정열을 쏟으며 아이를 볼 때마다 공부 이야기만 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교회에 갔다오면 빨리 오지 않았다고 야단을 치고, 교회에 갔다고 오면 물어 보는 것은 늘 "오늘 재미있었냐?"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주일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아들에게 오늘 뭘 배웠냐고 물어 보았답니다.
  대단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들이 교회에서 무엇을 배웠는가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 때 어머니의 믿음을 잘 알고 있는 아이는 신이 나서 말했답니다.
  “오늘은 모세가 적들을 어떻게 이겼는지 배웠어요. 홍해에 도착해서, 모세는 다리를 건설해서 사람들을 모두 건너게 했대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건너자 그는 무전기로 본부에 연락을 해서 폭격기 지원 요청을 했죠. 폭격기는 폭탄을 떨어뜨려서 다리를 부쉈고, 적군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대요."
  그러자 어머니가 눈이 둥글 해져서 "아가,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얘기하셨니?"라고 물었답니다.
  "사실은 아니에요. 하지만 선생님이 얘기하신 대로 말하면 엄마는 못 믿을걸요?"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을 다 믿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사실이 그렇습니다.
  교회에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고 목사가 그렇게 설교하고 대 다수의 교인들이 그렇게 인정하고 있으니 자신도 당연히 그렇게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부활신앙이 없습니다.
  부활신앙이 없는 성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도 힘이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예배에 참석합니다.
  아이들 학교 가는 것은 지각하지 않도록 열심히 깨우면서 주일에는 왜 예배를 빨리 시작하느냐고 불평합니다. 항상 설익은 음식처럼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들여놓고 늘 번민과 고민 가운데 살아갑니다.
  부활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나라가 있고 언젠가는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까?
  비평의 원리, 인과의 원리, 유추의 원리에 익숙한 인간의 사고틀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경의 말씀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화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이 말하면 잘 믿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어는 전문가가 나와 채소가 좋다하면 무조건 채소를 먹습니다. 건강에 걷기 운동이 좋다고 하면 만 보기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불티나게 팔립니다. 건강에 비타민이 좋다고 하면 약국에 비타민 사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잘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믿기를 망설입니다. 자기 부인이나 남편의 말은 잘 믿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이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 고백적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 의하여 신화적으로 꾸며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살아나셨다” 부활신앙을 가져야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 역사의 창조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끊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과거의 죄에 얽매여 살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나온 과거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겠습니까?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지만 과거에 갇힐 필요가 없습니다. 죄의식에 끌려 다니며 사는 분이 있습니다.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에 시달리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픈 상처로 원한을 품고 복수의 날만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의 욕심에 끌려 다니며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에 끌려 다니며 인간의 노예로 사는 인생들도 있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우리의 인생은 끝이 납니다. 인생이란 풀의 꽃과 같은 것입니다.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에게 평생 붙들려 삽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끝없이 자식에게 얽매여 사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목회자들도 끝없이 자식의 종이 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큰 교회 장로님께서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식당에 가서 앉아있는데,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와서 뭘 드시겠냐고 물어보지를 않더랍니다.
  참다 못한 장로님은 지나가 버리는 한 종업원을 억지로 붙잡고 따졌답니다.
  "왜 물도 갖다주지도 않고 뭘 드시겠냐고도 물어보지도 않는거요? 천국에서 서비스가 뭐 이래요?"
  종업원이 "장로님, 여기는 셀프서비스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그러면 왜 저기 있는 사람들은 셀프서비스가 아니고, 종업원들이 서비스를 직접 하는거요?"
  "아 저분들 말입니까? 저 분들은 주방에서 열심히 일한 집사님들과 화장실 청소, 차량안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십자가를 지고 온갖 더러운 것을 감당했던 성도님들입니다. 저분들께서는 지상에서 서비스를 항상 남에게 베풀고 남을 잘 섬겼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지면 세상 것에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미움도 원망도 과감히 주 예수의 이름으로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고 승리하신 날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던져 주신 날입니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신 날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날입니다. 회의가 변하여 확신이 되는 날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변하여 평안이 되는 날입니다. 무능력한 삶이 변하여 능력있는 삶으로 향하는 날입니다.
  증오가 변하여 용서가 되는 날입니다.
  죽음이 변하여 삶의 소생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에게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산다는 사실만큼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개인에게 혁명적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슬픈 일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절망에서 일어나 소망을 가지시길 원하십니다.

  베드로 전서 1장 3-7절의 성경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소망이 넘치는 것이 부활신앙의 삶입니다.
  겸손히 낮은 곳에서 섬기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이 부활신앙의 삶입니다.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며 부활의 증인으로 한 평생 헌신하다가 주님 만났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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