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승리 (마 28:1~10)

  • 잡초 잡초
  • 250
  • 0

첨부 1



영국 성공회의 베버리지(Beveridge) 주교가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기억력이 감퇴되어 가까운 친척들까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저를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누구요?" 또 그의 아내가 물어보았습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당신은 또 누구요?" 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 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라고요?" 마치 그 이름이 강심제 역할을 한 것처럼 기운을 회복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요. 나는 지난 40년간 그와 사귀어 왔답니다. 그 분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랍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과의 교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오직 예수로만 사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Sadhu Sundar Singh)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어느 대학교수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오랫동안 젖어온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힌두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종교를 바꾸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썬다 싱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다른 종교들은 죽음의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부활로 해답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부활은 사상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부활은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부활 설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실망과 좌절, 낙심과 불안 속에 밤을 지새웁니다.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숨거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갔던 여인들은 천사로부터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는 부활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두려움과 기쁨으로 급히 뛰어가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승리의 소식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외침으로 승리를 예고하셨습니다. 부활은 이 승리 선언에 대한 보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승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승리입니까?

첫째로 죄악에 대한 승리입니다

이 백년 전 영국 폭력단의 일원인 열일곱 살 소년이 회심하였습니다. 폭력서클의 주동자였던 로버트 로빈슨(R. Robinson)입니다. 그는 조지 휫필드(G. Whitefield)목사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시인이 되어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찬송시를 썼습니다. 찬송 28장입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송합니다." 그런데 폭력서클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 죄악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공허하고 지친 모습이 되어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차가 서더니 한 부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혹시 교회에 가시나요?" 그는 얼떨결에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타세요. 저도 교회에 가는 길이에요" 로빈슨은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제 이름은 라비스예요. 당신은요?" "저는 로버트 로빈슨입니다" "그럼, 혹시 '복의 근원 강림하사' 의 시를 지으신 분인가요?" "예. 맞습니다." "당신이 지은 시를 통해 감동을 받고 구원을 얻았어요." 그러나 로빈슨은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저는 그 시를 쓴 후 다시 죄악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죽을 생각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힘으로도 안되는 약한 자신을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러자 부인이 말합니다. "당신이 쓴 시의 셋째 줄을 기억하십니까?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해서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우리는 연약해서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은혜 사슬되사'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당신의 연약함을 주님께서는 그대로 받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회개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로빈슨은 교회에 들어가 회개하며 고백하였습니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바울도 마음속에 있는 선과 악의 갈등에서 언제나 악의 세력에 굴복되려는 무력한 자신을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장 24절에 나오는 탄식의 내용입니다. 본래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고, 사망 권세는 죽음의 위력을 앞세워 거짓과 불의를 강요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죄악으로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3장 10-12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모든 인간은 죄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이러한 죄악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거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죄악의 지배 하에 있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으로 사는 한 우리는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죄악보다 의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의가 최후 승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만약 주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불의가 승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인해 모든 죄악에 대하여 기필코 승리하셨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둘째로 미움에 대한 승리입니다

1800년대를 전후하여 영국교회와 사회를 부활시킨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양심이라고 불리우던 '윌버포스' (William Wilberforce)입니다. 존 뉴턴 목사의 도움으로 26세에 회심하고 영적인 각성을 하게 됩니다.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 무서운 죄악인 노예폐지 운동의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당시 영국은 노예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었기에 노예폐지 운동은 목숨을 거는 위험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클래팜' 이란 공동체를 만들어 날마다 기도하며, 이 일을 추진한 끝에 1833년 노예폐지 법령을 공포하게 되었습니다. 46년만의 결실이었습니다. 이 일의 실현을 보고 눈을 감기 전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나 한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미움과 갈등에서 승리케 하신 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믿습니다." 노예 폐지선언 직후 영국 교회에는 새 신자들이 밀려오기 시작했으며 국회의원 3분의 1이 신앙을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무리들은 자신들이 승리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미움의 갈등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확신을 품고 따르는 이들을 통해 사랑을 확산시켜 나가셨습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하신 말씀처럼 미움과 증오에 대하여 승리한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신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책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을 거듭합니다. 그 사랑 앞에 베드로는 녹아졌습니다. "주여! 내 어찌 다른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지 아니합니까" 라며 깊어진 사랑의 성숙을 보이게 됩니다.

부활은 미움과 증오에 대한 사랑의 승리입니다. 원수가 없는, 원수를 모르는 그 사랑 앞에 모든 미움과 갈등은 사라진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으로, 스데반 집사는 돌로 몰매를 맞으면서도 포악한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사랑의 근원이신 부활의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구세주가 되심은 사랑의 승리 때문이었습니다. 죄인도 용서하시고, 악인도 용서하시며, 배신하는 사람도 사랑하시고, 심지어 자신을 죽이는 자까지 용서하신 사랑이 부활로 나타나 미움을 이긴 것입니다.

셋째로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홀로센버그 수용소를 담당했던 독일의 군의관 베스게(Baethge)는 1945년 4월 9일의 일기를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때는 히틀러에 의해서 많은 독일의 장성들도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새벽 5시와 6시 사이에 카나리 제독과 오스트 장군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처형되었습니다. 그 중에 나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은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였습니다. 본회퍼 목사도 히틀러 제거 운동에 관여했다가 잡혀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수대에 올라가서도 잠시 기도했습니다. 그는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그 얼굴에 너무나 평안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사형수를 돌보는 의사를 했지만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나는 50년 동안 의사 일을 했지만 저런 죽음을 본적이 없습니다. 저렇게 평안하고 저렇게 기쁘고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본 회퍼 목사는 부활의 예수를 모시고 있었기에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실상은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죽음이 그를 이기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무덤에 안장시킨 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보다 생명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힘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이 부활신앙이었습니다. 온갖 박해와 형벌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맞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신앙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죽음도 이깁니다.

부활은 어둠의 권세를 향해 승리를 선포한 감격스러운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우리도 승리자가 됩니다. 부활신앙으로 죄악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으로 미움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불의한 세력 앞에서도 부활신앙으로 굴복치 아니함으로 영원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