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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막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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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마가복음 16:1-8

오늘 부활주일을 맞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  이것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더더구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성으로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과학으로 증명해 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의 부활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부활한 예수를 실제로 보고 체험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만약에 우리 주님의 부활이 거짓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사람의 손이나 지진이 일어나서 굴려졌다면 우리의 인생은 절망이며 비참 뿐일 것입니다.

알버트 까뮈는 '시지푸스의 신화'라는 수필에서 시지푸스가 큰 돌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느라고 무척 애를 쓰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돌을 산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면 이 돌은 저절로 굴러 내려갑니다.  그는 다시 그 돌을 찾아 내려가서 또 산꼭대기로 밀어 올립니다.  평생동안 이 일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까뮈는 이 이야기 가운데서 인생의 허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지를 못했다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고전15:14-15)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고전15:19)일 것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를 믿건 안 믿건 이 땅의 모든 인생은 실로 허무 그것뿐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영생과 진리와 의와 선과 사랑 모두는 무너지고 맙니다.  무덤의 돌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닌 이유로 굴려나왔으면 인생은 모두가 허사일 뿐입니다.

그러나 기뻐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돌을 굴리시고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기셨으니 우리도 이겼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부활의 소망을 안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사셨다면 우리에게도 영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때가 종종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이 때를 잘 포착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위대하게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호의 결정적인 시기가 다가왔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붙잡지 못하고 지나간 후에야 탄식을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저는 오늘 이 부활주일의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기적의 때를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뜻 깊은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이 성령님으로 찾아오셔서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다시 올 수 없는 축복의 때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하늘이 땅을 정복하듯이, 거룩함이 이 땅의 더러움을 정복하듯이, 성령의 능력으로 박차고 일어나는 생명마다 결정적인 하나님의 때가 오늘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선포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약속하신 축복의 때가 있음을 믿음으로 붙들고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에게도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
삶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복들을 나에게도, 내 자녀들에게도 주시옵소서.
만군의 여호와여, 나에게, 우리들에게 환경의 복을 주시옵소서.
심령의 복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내의 한계 앞에서 완전한 실패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환경에서 올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서 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형제와 이웃 사이에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사탄이 사용하는 제일 무서운 마지막 무기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낙심하면 삶의 마지막 에너지마져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3년간이나 함께 따르던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현실 앞에서 절망했습니다.  그들은 낙심과 절망 앞에서 삶의 에너지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이 모든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기력을 정복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삶의 모든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를 낙심하게 하는 모든 어둠의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내 삶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모든 무기력아, 천리길로 떠나가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모든 낙심과 절망의 인생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며,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 시간 부활의 주님께서 생명의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는 인생들아,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

우리는 때때로 깊은 실망감을 갖습니다.  또 사실 어떤 때는 낙심하고 낙담합니다.  특별히 죄 없고 의로운 자가 맥없이 실패하고 무너질 때 우리는 깊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애매한 고통을 당할 때 낙망하고 맙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 깊은 고뇌와 갈등 앞에서 수많은 인간들은 허무주의 빠져 들어갑니다.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아무 힘도 없으신 그분이 맥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실망에 빠졌습니다.  비애와 허탈감에 젖었습니다.  사명을 포기하는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삶의 목적과 비전을 상실한 채 저마다 제 갈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절망한 저들이 그 절망과 좌절을 딛고 다시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처절한 실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애가 기쁨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평안으로 바뀌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회의가 확신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포기가 자기 순교로 삶의 생기와 활기 넘치는 새날로 바뀌어지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의 날, 믿음의 승리의 날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바로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들 안에는 놀라운 새생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명과 비전을 품고 세계를 향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처절한 실망과 때로는 현실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을 마음에 안고 있다면 이 시간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생명이 꿈틀거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명과 비전을 품고 열방을 향해 일어나십시오.

생명의 날, 믿음이 승리의 날, 부활의 날.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어둠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외침입니다.  이것은 거짓에 대한 진리의 승리입니다.  불의와 죄에 대한 의의 승리입니다.  사망에 대한 생명의 승리입니다.  불신에 대한 사랑의 승리입니다.  흑암에 대한 빛의 승리입니다.  절망에 대한 소망의 승리입니다.  불신의 세상에 대한 하늘의 승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승리의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우리들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소식이 이 땅에 퍼져나가야 합니다.  이 땅에 강한 영적 진동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사막보다 더 메말라진 저들의 심령에 성령의 단비가 내리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통하여 다시금 살아나는 새생명의 역사가 이 땅에 충만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이 땅의 모든 낙심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무기력한 심령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과 함께 다시 희망을 품고 일어나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 이 땅에는 불의와 부정과 불신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일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 부활하신 주님의 메시지를 붙들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배해 두신 기쁨을 기대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모든 부끄러움을 참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늘의 승리를 외치며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때문에 모든 절망과 좌절과 낙심으로부터 박차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절망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십자가 아래에서 깨뜨리고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째 되던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예수님의 몸에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언제 향품을 사다가 준비해 놓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지는 시간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지기까지의 시간입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고 일할 수도 없습니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 후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돌아가셨으므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향품을 구입한 시간은 금요일 해질 때까지의 매우 짧은 시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곧바로 예수님의 몸에 바르기 위해 서둘러 향품을 사러 다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기에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저는 이 부분에서 이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노라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만큼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 그리니까 주일 새벽에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덤을 찾아가면서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무덤을 막아 놓은 엄청나게 큰 저 돌.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저 돌을 굴려 주리요"

그들은 무덤을 단단하게 인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덤 문을 막았던 돌은 여인들로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너무나 큰 돌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무덤 문을 로마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허락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이 돌문을 굴려 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이천년 전 나약한 이 여인들이 물었던 이 질문은 이후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에 부딪힐 때마다 던지는 인생의 물음이었습니다.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쩔쩔매고 있을 때에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무거운 짐의 돌문을 누가 굴려 줄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인생의 골목에 서 있을 때에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누가 절망으로 덮여 있는 이 무덤의 문을 굴려 줄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이 여인들은 매우 이른 아침 새벽거리를 가르며 큰 걱정과 염려를 가득 안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십시오.  이 여인들은 그렇게 염려와 걱정을 했지만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누가 그 돌을 옮겨놓았는지 이미 돌문은 열려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일할 때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인들은 괜한 걱정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염려거리가 와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나아간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먼저 나를 위해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아갈 때 미리 끌어다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응답하시고 채워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께 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바로 서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당장은 어렵고, 걱정이 되고, 고통스러워도 인내함으로 기다리십시오.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은 바로 지금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탄식과 한숨과 기도도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크게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사흘만에 살아나리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심히 근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공포와 불안은 믿음의 결핍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도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고 있지만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었다면 그들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한걸음에 달려갔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평소에 죽은 자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앉은뱅이도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니 일어났습니다.  눈먼 시각장애자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도 네 자리를 들고 가라는 말씀 한마디로 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바다 위를 육지처럼 걸어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예 받아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3년 동안 주님과 함께 다니며 수많은 이적들을 보아왔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기억했어야만 했습니다.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의 봉인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그 시간을 학수고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엠마오로 내려갔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로 갔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대로 사람들에게 넘기워져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최초의 거룩한 날 아침 해 돋을 때에 무덤에 온 이 여인들에게 복음의 소식을 듣게 하십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이제 주님께 드리려던 사랑과 헌신의 몰약과 향유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무서워 마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라."

이 미천한 여인들은 우리 주님의 무덤을 최초로 방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초로 부활의 소식을 전할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이제 여인들은 곧장 나와서 달렸습니다.  두려움과 기쁨으로 감정은 온통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살아나신 것입니다.  오싹한 전율을 느끼며 천사가 시키는 대로 성읍으로 내려갔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가는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주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뵙게 된 것입니다.  충만한 위엄과 하늘의 사랑이 가득한 바로 그 얼굴, 주님의 깊고 거룩하고 축복된 뜻으로 가득찬 그 음성이 들립니다.
"평안하느냐?  기뻐하라."
이 여인들은 가장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경외로운 모습 앞에서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안하느냐?  기뻐하라"
부활의 첫 메시지는 여전히 사랑의 메시지요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삶의 평화, 삶의 기쁨도 오직 한 곳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대들이여, 평안할지어다.  기뻐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이 생물계에도 죽음이 있다고 보는 것은 죽음의 존재로 전락한 인간의 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생긴 착각입니다.  생물들은 살다가 소멸되어 갈 뿐 그들에게는 죽음의 의식이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의식입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생긴 죄의식의 피할 수 없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인간에게만 있는 특수한 현상입니다.  자연의 생명현상은 죽음이 아니라 소멸해 갈 뿐입니다.  아담의 후예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고 이 인간의 숙명 같은 문제를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생명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제 우리는 어떤 절망 가운데서도 사는 자들의 대열에 있는 자들입니다.  분명 우리는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기초이고 믿음의 기초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난무하고 힘이 판을 칩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 태산같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의 신경조직이 마비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극치의 표현인 부활의 산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어떤 두려움과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돌문처럼 앞에선 문제들이 인생에 있다고 할지라도 부활의 주님의 첫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무서워 말라.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기뻐하라.  내가 살아났느니라.  이제 너와 내가 같이 말씀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던 삶의 자리인 갈릴리에서 너희를 만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모든 복음의 클라이막스입니다.

그 옛날 미국에 비참한 남북전쟁이 있었습니다.  우둔한 몇몇 사람들의 정권의 욕심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기근과 고통과 죽음, 처처에 비극과 심한 질병으로 생명이 가치없이 죽어가고, 분하고 억울한 일들이 세상에 만연하였습니다.  온 백성이 불안과 염려 속에 수없이 쌓이는 이유를 모르는 죽음의 시체 앞에서 분노하였습니다.

거기 로버트 로리라는 목사님이 전쟁터에서 종근하며 전쟁터에서 그 비극을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 피, 피, 피….  시체를 치웁니다.  "하나님, 당신은 어디 계시나요?"  그렇게 부르짖으며 그 일을 계속했는데 그만 시체 속에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흑암의 권세에 눌렸습니다.

사실 로리 목사님도 죽은 자들과 함께 죽게 되었습니다.  죽는 경지에까지 갔습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는데 그에게 하늘의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밥 로리 목사야, 너 거기 있니?  내가 살아 있느니라.  내가 어둠을 이기고 살아났느니라.  내가 지금 네 속에 살아 있느니라."

의식이 들어 눈을 떠보니 시체 가운데 묻혀 있었습니다.  그는 용수철처럼 죽음 가운데 튀어 올라 "주님이 사셨다.  주님이 사셨다." 그렇게 외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지은 찬송이 160장입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믿음의 승리의 기념비입니다.  믿는 자는 능히 인간의 모든 돌문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능히 모든 인간의 경계선을 넘어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믿는 것이 부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은 빛이 이깁니다.  믿음의 사람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잠시 잠깐 흑암의 권세가 이기는 것 같으나 갈릴리의 암흑의 어부들, 갈릴리의 그 원한의 과부들을 일으킨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신앙은 역사 속에 묻힌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부활절 아침에 모든 절망과 낙심을 날려버리고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다시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신앙을 전파하여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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