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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주님의 고통을 아십니까? (사 52:1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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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종려 주일입니다. 그리고 부활주일까지의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고뇌하시며, 기도하시며, 고통스러워하신 것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주간이기도 합니다. 이 고난 주간에는 그동안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던 사람들도 이 한 주간만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새벽기도에 힘쓰기도 하고 오락이나, 사사로운 쾌락과 연락을 삼가는 한 주간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금식하면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지 이 고난주간을 헛되이 보내지 아니하고 나의 신앙의 성숙과 주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하려고 하는 경건한 마음들을 가지는 것이 한국교회의 전통입니다.

1.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난의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검과 몽치를 가진 자들에게 체포를 당하시고, 그리고 전에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으시고, 다시 그해의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려가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 의하여 사형 판결을 받으셨습니다.(마26:66,67) 죄명은 로마정부에 대한 반역죄였습니다. 원래는 신성모독의 죄명으로 처형하고 싶었지만 로마법에는 별로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에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십자가형을 받게 한 것입니다.(요19:12)

의학박사 트루만 데이비스(TrumanDavis)와 알렉산더 메드럴 박사(Alexander Metherell)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의 고통과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으로 나누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십자가 달리기 전의 고통

첫째로 겟세마네 동산의 고통입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일을 앞에 두고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릴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무 열심히 기도하신 나머지 땀샘에서 땀과 피가 섞여 나옵니다. 의학적 용어로 혈한증(血汗症, hematidrosis)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량의 피가 땀샘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마음과 육체는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막14:34절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거기서 주님은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둘째로 희롱과 멸시를 당하는 고통입니다.

마27:30절에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요19:3절에는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옷을 벗기고”(마27:28), 모욕을 했습니다.(마27:39,사53:3),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받을 수 없는 모든 수치와 고통과 멸시를 다 당하신 것입니다. 피조물들에 의하여 창조주가 당하신 수치와 멸시입니다.

셋째로 태형의 고통입니다.

죄인을 십자가형을 집행하기 전에 먼저 하는 형은 채찍질 하는 형벌입니다. 요19:1절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

여러분들이 패션오브크라이스트라고 하는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채찍의 모양은 가히 가공할 만합니다. 39개의 가닥으로 되어있습니다. 병사의 기분에 따라 가닥수가 많을 수도, 줄일 수도 있었습니다.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죽에는 쇠구슬과 뼛조각이 매달려 있습니다. 쇠구슬은 살을 멍들게 했고, 찢어진 근육조직을 더욱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뼛조각은 살을 찢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채찍질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채찍이 아니라 비수보다도 더 무서운! 한번 스치면 사망할 수 있는 그러한 채찍질이었습니다.

이 살인적인 채찍은 어깨부터 등과 엉덩이 정강이를 무차별적으로 내리칩니다. 채찍이 미친 듯이 춤을 출 때마다 골격 근육이 찢어지고 피범벅이 되었으며, 채찍에는 살점들이 리본처럼 매달렸습니다. 3세기의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에 대하여 말하기를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라 가장 정확하다고 평가되는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말대로 예수님도 정맥이 드러나고 근육과 근골과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태형으로 인해 죽기도 하였답니다. 그 원인은 고통도 고통이겠지만 더 확실한 것은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즉 피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알렉산더 메드럴 박사에 의하면 저혈량성 쇼크 상태의 증세는 1>심장이 더 이상 피를 못 퍼 올리고, 2>혈압저하,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하게 되며, 3>신장에 남아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의 역할이 중지되고, 4>몸에서 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목이 많이 마르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달리기 전의 상태도 매우 유독한 상태셨습니다.

2)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가로 들보(Cross bar), 즉 패티블룸(patibulum)이라 불리는 것과 수직기둥과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수직 기둥은 땅에 고정되어있고 가로 들보는 처형당할 사람이 형장까지 지고 가야 합니다. 가로 들보가 너무 무거워 허약하신 예수님은 14번이나 쓰러지고 또 쓰러지면서 형장까지 올라 가셨습니다. 형장에 도착하면 땅에 놓인 채 처형당하는 사람을 눕히고 못을 박도록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박았던 못은 약 18Cm의 대못입니다. 제가 못을 하나 가지고 나왔는데 예수님을 못 박았던 실제의 크기의 못입니다. 1073년 A. W. Thomason 제작한 못입니다. 성경에는 손에 못을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정확하게는 손목에 못이 박혔습니다. 못 박힌 곳은 ‘중추신경’ 이 지나는 위치입니다. 못이 들어 갈 때에 큰 중추신경이 파괴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 팔은 6인치 정도 늘어나고, 어깨뼈는 탈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극형인 것입니다. 이렇게 쇠못이 뼈마디를 뚫고 들어가면 신경과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이 숨을 들어 마신 상태로 멈춰 버린다고 합니다. 가슴의 상태는 숨을 들이마신 상태로 고정됩니다. 곧 이어 호흡곤란이 오고, 결국 호흡량이 줄어들면 “호흡 산독증(酸毒症)”! 즉 혈액 속에 이산화탄소가 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이 산성으로 변하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다가 결국 질식하여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통당하심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53:5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2. 왜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는가?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고통을 당하셔야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면 얼마든지 좋은 방법이 있으셨을 텐데 그토록 처참하고 잔인한 십자가형 밖에는 방법이 없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53: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나님이 지으신 첫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고 최상의 복을 누리며 살았으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은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어리석은 양이 목자를 떠난 것처럼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욕심대로 살았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흉한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벌을 받고 파멸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도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지셨습니다. 그 중에는 극악무도하고, 가장 악한 사람의 죄까지 다 지시고 가장 악한 자가 받아야 할 최악의 고통까지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가시에 찔리고 못에 찔리고 창에 찔린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그 고통을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이 고귀한 고난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이렇게 우리를 위해 고통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셋째로는 주님의 고난과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도록 도와야 합니다. 무서운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그들을 살리는 약이 창고에서 썩고 있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는데 우리 주위에는 그것이 없어 사람들이 죽어가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주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이 한 주간! 고난주간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저와 여러분들의 경건한 삶에 큰 유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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