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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이보다 기쁠 순 없다 (요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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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오랫동안 공연되었던,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윌리]는, 외판원이란, 힘든 직업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사장은, 그를 신뢰하고 좋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린다]라는 예쁜 아가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도시 외각 지역, 숲이 우거진 지역에, 작은 집도 마련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잘 생긴 녀석이고, 똑똑하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윌리]는, 그것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그보다 더 좋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장이, 그렇게 신임을 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외판원을 하지 않고, 내근을 하면서, 외판원들을 지도하고, 월급은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집은, 더 넓고 크게 지어서, 멋진 파티를, 집에서 하려는 꿈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아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윌리]에게, 그런 행복은, 영영오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장이 죽고, 아들이 사장이 되면서, 나이 먹은 외판원을, 해고 해버렸습니다.
처음에, 아름다운 숲이 있던 곳에 집을 지었는데, 지금은, 도시가 확장되면서, 나무는 다 베어지고, [윌리]의 집은, 높은 빌딩 사이에 끼어 있는, 초라한 집이 되었고, 집은, 계속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들은, 계속해서, 좀도둑질을 하고, 교도소를 들락거렸습니다.
그에게 기다렸던 행복은, 영영, 오지 않았습니다.

죽기 직전에, [윌리]는, 몇 년 전에 죽은, 자신의 형을, 꿈속에서만나,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형님, 어떻게 하면, 즐거웠던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희망과 동지애로 충만했고, 겨울엔 썰매도 타고, 추위에 얼어, 얼굴도 빨갛던, 그리고, 늘 무슨 희소식이 전해오고, 좋은 일이 닥치기도 했고, 여행 가방을, 못 들게 하고서, 대신 들어서, 집안으로 들여놓고, 왁스로, 아담한 빨강색 차를, 광택이 나게 닦아주던, 그 시절 말이예요.”
[윌리]는, 그가 행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행복한 시절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장을 얻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들이, 보험금을 타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어서, 생을 마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이보다, 더 기쁠 순 없다.’ 이런 기쁨을, 단 몇 초만이라고, 경험해 보셨습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기쁨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사십니까?
우리가 소망하는 희망과, 기대한 기쁨은 무엇입니까?

[윌리]의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 행복하지 못합니다.
기다렸던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아무리 기쁘고 즐거운,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죽음 앞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이보다 더 기쁠 순 없다.’ 이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에 기쁨이 없다면,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땅에서, 이런 행복과 기쁨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이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와 있는 사람 중에, 가장 큰 기쁨을 맛본 사람을, 소개할 까 합니다.
이 사람은, 여자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서, 인구조사에도 넣지 않은 시절에 태어났습니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일찍이, 창녀가 되었습니다.
가정도 없었습니다.
집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다’는, 큰 기쁨을 맛 보았습니다.
그녀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에게, 생애 가장 기쁜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날은, 내 생애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면,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2. 부활은, 마리아에게, 역전승의 기쁨이었습니다.

빤히 이길 줄 알고 있는 게임은, 이겨도, 그 기쁨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지면, 실망은 크지만, 이기면, 기쁨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기면, 똑같은 승리인데, 기쁨이 훨씬 큰 법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목숨이 붙어 있어야지, 희망을 걸 수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거는 것도, 숨이 붙어 있을 때입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고, 말도 못하고, 의식이 없어도, 숨이 붙어 있으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이 끊어지면,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약도 필요 없습니다.
의술도 필요 없습니다.
사람에게,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방법은, 없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새 사람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녀의 두 눈으로,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시체를 싸서, 무덤에 안치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시체가, 빨리 부패하지 않도록, 향품을, 발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주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는 것도,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불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동굴의 문을, 여러 사람의 장정들이, 힘을 쓰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큰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것도,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설령, 향품을, 예수님의 시체에 발라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지고 가 보기나 하자, 하는 심정으로, 무덤 앞에 갔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가까워져 올 때에, 마리아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안도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입구를 막고 있었던, 커다란 돌이, 치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덤을 들여다보는 순간, 안도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근심과 슬픔이,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무덤 안에,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너무도 연약해서, 그 분의 시체 하나도, 지켜 드리지 못하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앞에서, 넋을 놓고 울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슬픈 사람 위로해 주시고,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사랑을 쏟았는데, 모두, 주님의 곁을 떠났고, 시체마저, 지키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그의 일생에, 가장 슬픈 날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슬플 수는, 없었습니다.
울다가,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있었던 자리에, 머리 쪽과 발쪽에, 흰옷 입은 천사가 있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우리 주님의 시체를, 누가 가지고 갔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니, 거기에,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사람이, 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옮겼으면, 제발 가리켜 주세요.’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시체를 잃어버렸다고, 큰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세상에, 바로 그 주님이 살아 나셔서, 자기 곁에 서 계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었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가장 큰 슬픔이,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을, 여러분 마음속에 모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의 삶도, 역전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슬픈 일만 겪고 고통만 있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분을 구주로 모셔 들이세요.
모든 슬픔은 기쁨으로, 고통은 행복으로, 역전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에서 가장 큰 역전극입니다.
가장 멋진 역전극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인생의 역전이옵니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던 마리아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주님이, 마리아 곁에 서 계셨지만,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 곁에 계시지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실 때에, 주님을 알아보고, 최고의 큰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이 시간, 주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세요.

3. 부활은 마리아에게, 영원한 기쁨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쁨은, 일시적입니다.
영원하지 못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희곡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습니다.
주인공 [윌리]가, 아내 [린다]에게, 한 말입니다.
“대출해서 집을 사서, 대출금을 다 갚았더니, 이제, 이 집에서 살 사람이, 없다”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늘 부담이 있습니다.
빨리 이 빛을 갚아야 할 텐데.
그래서 수고해서, 대출금을 다 갚습니다.
그 돈을 갚기 전에는, 대출금만 갚으면, 걱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 값 갚고 나니, 아이들은 다 성장해서, 제 갈 길을 가고 나니, 집만 남고, 살 사람은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이, 사법고시입니다.
사법고시 합격통지서를 받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쁨은 잠시입니다.
요즘 1,000명씩 합격자가 나오기 때문에, 다시 시험을 보아서, 실력이 입증되어야, 판검사로 임명 될 수 있습니다.
합격 통지서 받고, 잔치하고 나면, 합격의 기쁨은 사라지고, 짐에 눌립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좋은 것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기쁨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시들해 집니다.
대통령이 당선되면, 측근들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러나 얼마 못가서, 그 기쁨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로 바뀝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은 사람들은, 더 큰 공포에 빠집니다.
내가 한 평생 수고해서 이룩해 놓았는데, 이걸 어떻게 놓고 죽을꼬. 죽음의 두려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은 영원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적인, 죽음을 이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자신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그 기쁨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부활은,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영원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이, 그의 일생동안 지속되었고, 지금은, 천국에서, 영원히 그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활을 믿고 확신하지만, 우울할 때가 있습니다.
슬플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한 때는,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쁨이 점점 식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서, 고린도 교회에, “예수님이 성경대로 살아나셨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슬픔과, 우울한 마음이 들 때에, 자신에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
‘막달라 마라이의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었다.’
‘기뻐하자’
부활의 기쁨은, 한 순간 있다가 사라지는 기쁨이, 아닙니다.

4. 마리아의 기쁨은,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마리아에게, 속히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허락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슬퍼하던, 모든 제자들과,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기뻐했습니다.
오늘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하여, 여기 모인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기쁨을 나눠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만이 부활 하신 것이 아니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을 약속했기 때문에, 마리아의 기쁨은,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부활소식’보다, 더 큰 기쁨은, 세상에 없습니다.
부활은, 잠깐 기뻤다가 잊혀지는, 세상 기쁨과 달리, 영원한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다른 사람의 슬픔에서 비롯됩니다.
경쟁에서 이길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경쟁에서 진 사람의 눈물에서 난, 기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은,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세상에 기쁨은, 모든 조건이 좋을 때만,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 더 커집니다.

***** 한국교회 순교자 중에, [진학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에, 평안한 삶이, 보장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의사인 아버지가, 갑자기 죽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많은 고생을 해 가면서,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를 하다가, 많은 옥고를 치르고, 고생을 하였습니다.
6.25사변 때, 북한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함으로, 순교를 하셨습니다.
북진이 이루어지면서, 미군들이 북한전역에 공습을 하자, 목사들은 모두, 미제 앞잡이라고, 잡아다가 총살을 시켰습니다. 

그 목사님이,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시다가, 교회에서 쫓겨나서, 어려운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였습니다.
자녀들은,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먹을 것도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왜 목사가 되어서, 왜 이렇게 가족을 힘들게 합니까?”
그 때에, 아들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한 다음에, 다음과 같은 찬송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빈궁하게 살지라도
기쁨으로 노래하며 사는 성도들아
무슨 일로 이 집에는 평화가 충만한가.
자세히 드러내소서.
예수가 우리의 모든 것 되시네.
예수가 우리의 모든 것 되시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 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뒤를 따라서, 부활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 자신에게, ‘당신에게, ‘이보다 더 기쁠 순 없다.’ 절정의 기쁨을 맛본 적 있습니까?’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세요.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 그 기쁨을 경험했으며, 지금도 경험하고, 앞으로도 그 기쁨으로 살 것입니다.”

오늘의 삶이, 힘들고 고달파서, 눈물이 나올 때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 주님께서, 기쁨의 눈물이, 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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