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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 14: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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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살겠음이라
본문 : 요 14:15-19

부활절 아침입니다. 한국 개신교에겐 부활절 아침이 의미가  매우 깊은 날입니다. 122년 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 땅을 밟은 날이 바로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 이날에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짓고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따뜻했습니다. 30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공사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날씨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4천여 시간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짓는데도 3천 시간의 기도를 채우는데 어려웠다고들 합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기도하여 하나님이 모든 시험을 막아주셨습니다. 성전을 짓는 일에 제일 싫어하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감리교 신학대학교 교수였던 김철손 교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당 지을 땐 세상에 흩어져있던 모든 마귀들이 달려온다.” 건물만 새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과 믿음과 삶도 이 기회를 기하여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금년 부활절은 그동안 중단되었던 연합새벽예배를 시청 앞 광장에서 모든 교파가 하나가 되어 드렸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부흥되었던 시절이 어느 때입니까? 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 연합새벽예배를 드렸을 때입니다. 여의도 광장이 없어지면서 연합새벽예배가 사라졌다가 금년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점들이 많습니다. 기독교만이 가진 특별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하고 근본적인 것은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은 다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왕과 그 가족의 무덤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 서안의 진시 왕 능, 인도의 타지마할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질문은 영생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죽음이 쏘는 가시가 뽑혔다”고 고린도전서에서 증언했습니다.

6.25 전쟁 시에 밀리던 우리가 연합군의 참여로 다시 북진하여 통일이 거의 눈앞에 둔 상황에서 중공군이 내려왔습니다. 100만에 가까운 중공군에 의하여 연합군은 다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후퇴하던 미 해병들이 골짜기에 포위되었습니다. 포위망은 좁혀오고 있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통조림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있는 미군 병사에게 종군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오?” 이때 병사가 대답한 말이 너무나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Give me tomorrow(내일을 주세요)”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의 소원은 ‘내일’입니다. 미래입니다. 영생입니다. 천국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개인의 미래만이 아니라 교회의 미래요 우리 민족의 미래입니다. 인류의 미래입니다. 교회는 많으나 갈 교회는 마땅치 않다고들 합니다. 사람은 미래가 될 수 없습니다. 기구도 미래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부활의 예수만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말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논리나 철학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에 근거합니다. 여러분이 믿든지 안 믿든지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윤회도 아닙니다. 영혼불멸의 이론도 아닙니다. 옛 생명의 회생도 아닙니다.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보여준 구속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신약성경이 탄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를 증거 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 대통령 닉슨이 물러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1972년 워싱턴 소재 워터게이트 건물 안에 있던 민주당 사무실에 절도범이 들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단순 절도 사건처럼 보였지만, 절도범 중 한 사람의 주머니 안에서 백악관 직원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발견되어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1월 닉슨은 재선에서 사상 유래 없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듬해인 1973년 2월에는 지긋지긋하던 월남전을 종결시켜 대통령으로서의 최절정의 시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망명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확대되기만 하였습니다.

마침내 1973년 3월 21일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모여, 닉슨대통령은 애초부터 사건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조직적인 사건 은폐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 음모에 참여한 10여명의 보좌관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서 미국에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법률 전문가들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사건을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고, 어떻게 진술해야 철저하게 은폐를 유지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모두 닉슨의 열렬한 신봉자들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 역시 그들을 각별하게 대우했습니다. 그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었습니다. 대통령의 허가 하에 그들의 지시로 장관, 장성, 군대를 이동시킬 수 있었고, 공무원 채용과 승진 및 해고가 가능했습니다. 비밀경호원의 경호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웬만한 나라 대통령이 부럽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주어진 특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신봉하는 닉슨을 위해 적극적으로 은폐 음모를 꾸몄고, 그들의 법률적 지식과 경륜에 비추어 그들의 은폐 기도는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불과 18일 만에 무참하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말을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검사의 심문 앞에서 그들의 진술이 엇갈린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에 처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무력으로 협박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진술은 엇갈렸고, 마침내는 닉슨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채 막강했던 권력의 자리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어떤 시도로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거짓은 반드시 허물어지고 맙니다. 거짓이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꾸민 거짓이 18일을 넘기지 못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만약 예수 부활의 증언이 제자들에 의해 꾸며진 거짓이라면, 그 거짓은 이미 2천 년 전에 공중분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성인도 아니었습니다. 법률 전문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식꾼들이었습니다. 예수 부활을 증언하는 대가로 그들에게 세상의 권세나 영광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대가는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개의치 않고 부활의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짜로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식한 제자들의 증언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허물어지지 않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6-17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니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부활 사건은 객관적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나의 사건, 주관적 사건이 되려면 성령이 역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입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 말과 비슷한 용어로는 ’법정 대리인‘ 또는 ’변호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당사자는 법률 지식도 없고 논쟁할 만한 구변도 없습니다. 그때 그의 법정 대리인인 전문 변호사는 그가 한 말을 전부 다 변론함으로써 그를 곤경에서 지켜줍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하여 이처럼 특이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당시엔 박해를 받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 제자들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방패막이가 되어 주셨지만 예수님이 안 계실 때엔 성령께서 법정 대리인이 되어 주어 주셔서 그들을 위하여 모든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떠나시면 그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모두 잡혀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가 곤경에 처하고 공격을 받을 때마다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귀한 일은 성령을 받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살아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받습니까?  본문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그냥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흘리신 피로 하나님께 요청을 해야 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아들이 사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저 받지만 예수님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보혈을 흘리시고 그 피값으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요청하여 받아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옆에서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가 죄 된 길로 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지 못하게 하시고 또 어떤 곳에는 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성숙할 수 있는 만남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망합니다.

금년은 1907 영적대각성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계획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운동은 기도운동이었고, 회개의 운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운동이요, 전도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삶이 급진적으로 변화되는 성화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야 합니다.

또, 성령은 주권자입니다. 성령은 교회에서 어떤 사람에게 직분을 주시기도 하고 누군가를 파송하시기도 합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으로는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을 믿는 자들 위에 임하셔서 교회를 생명력 있게 하십니다. 오늘 이 뜻 깊은 날에 28명의 집사와 23명의 권사가 취임합니다. 모두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죽도록 충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충성을 약속하지만 마음이 변합니다. 시험에 빠지고 넘어집니다. 그래서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성령을 소멸시킵니다. 마음에 분노를 품거나 성령의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악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우리 안에서 성령의 감동이 소멸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지 않는 사람과 교회는  수도시설을 완벽하게 설치했으나 물 한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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