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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거기 너 있었는가 (요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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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요19:25-27)

많은 날들이 그러하지만 오늘은 참으로 의미 있는 날입니다.

우리 예수님 수난의 한 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 이 날 우리는 영광스럽게 우리 안산빛나교회 창립 18주년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빛들로 나타나는 교회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교회 로의 꿈을 안고 힘차게 출발했던 우리 안산빛나교회가 벌써 18살이 된 것입니다. 18년전 교회개척을 준비하면서 두가지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이때 주신 이름이 안산빛나교회입니다.

빌2:15-16절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이 말씀이 너무 좋아 빛들로 나타나는 교회로해서 빛나교회가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앞으로 만나지는 성도님들과 언제까지라도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교회의 가장 큰 아픔이 무엇인가였을 때 그렇게 아름답게 함께 했던 성도들이 작은 갈등으로 이 교회 저 교회로 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하고 용납하라 하셨는데 서로 사랑하셨는데 오리가 억지라도 10리를 가주라 하셨는데 천국에서 모두가 함께 만날 사람들인데 모두가 함께 사랑했었는데 그렇게도 함께 사랑하던 사람들과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은 큰 상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것입니다. 만나지는 성도들과 언제까지라도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목회하면서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함께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더라구요 사랑만 하면서 살기에도 용서만 하면서 살기에도 시간은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이렇게 창립주일때마다 지금도 함께 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 속에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하늘로 가버린 사람들말입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이런 기도를 하곤 합니다. 만나지는 성도님들마다 힘들게 해도 좋사오니 때려도 좋사오니 헌금못해도 좋사오니 아무것도 못하는 성도여도 좋사오니 언제까지라도 함께 할 수만 있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 제 삶의 여정속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요 가다말면 힘든 것만 남고 끝까지 가면 간증이 남는다입니다. 무엇이든지 그러합니다. 교회고 그렇지만 부부도 그러하지요 살다말면 힘든 것만 남고 끝까지 살다보면 할 말이 남는 것이지요 교회안에서 언제나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고맙지요

  마지막까지 함께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말씀에는 오셨던 목적 그대로 십자가에 높이 달려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목숨을 걸고라도 운명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고 있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렸는데 말입니다.

몇일 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수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만은 죽는데라고 가겠다했던 베드로도 모두가 떠나버렸는데 예수님의 마지막 때에 끝까지 함께 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네명의 여인들과 사랑받는 제자 요한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환경으로 볼 때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 나는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예수님만 생각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그늘에 있게 한 것입니다. 저들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거나 어떤 불이익이라도 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상관없다 떠나버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의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이들에게도 부활에 대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다가 잘못하면 죽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함께 해주겠습니까 저 사람과 함께 하면 유익이 되거나 좋은 일이다 싶으면 함께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많은 손해가 오거나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면 함께 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계산 잘하는 사람들 모두는 떠나가 버린 것입니다. 지금 계산 못하는 네명의 여인들과 요한은요 저들은 왜 함께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요 왜일까요? 부활의 영광도 아직은 아닙니다. 왠일인지 자신들이라도 예수님의 마지막에 함께 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떠나가버렸지만 나라도 함께 있어주어야 할 것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예수님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음은 은혜인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께서 이 여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 주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창립18주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은 은혜아니겠습니까 성질대로 했다면 자신의 유익과 계산대로 했다면 사실 우리 모두는 함께 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여러번 잃었던 것 아닙니까 부부에게도 함께 할 수 없는 기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함께입니다. 은혜입니다. 영광의자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밑에 인 것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오늘 말씀은 너는 성령이 있으라는 곳에 있냐는 것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나무위에 달릴때...서로 지나쳐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주님 교회의 지체되어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지 아십니까 사실은 그렇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밑에 있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6시간이나 십자가에 달려 계셨으니 지금 이 말씀은 운명하시기 직전에 들려진 신음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향한 예수님의 유언이요 요한을 향한 주님의 부탁입니다. 이렇게 운명하시기 직 전 예수님의 마지막 아픔인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인가 부탁해야 할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 하겠습니까 지금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부탁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일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탁은 더 큰 계획을 가지시고 계십니다. 그 부탁이 요한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주님의 부탁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이 축복과 함께 예수님은 마지막 염려인 어머니를 형제들에게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 요한에게 사랑하는 요한에게 부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탁을 받은 요한은 그렇게3-40년을 변함없이 섬겼습니다. 요한의 갈등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성격이 붙 같았던 요한이 다른 제자들의 사역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도 늘 사역을 하고 싶었겠지만 마리아를 모시고 있어야 하기에 3-40년동안 그렇게 보내야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탁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긴 시간수고해야하는 인내가 있어야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수종들며 함께 해 주어야 했습니다. 이러다 내 생명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의 부탁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으니 요한이 받은 축복입니다.

나중에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1.2.3서와 계시록을 기록한 제자였으니 정말 큰일을 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노년이 된 요한은 들것에 실려 강단에 누워서 설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탁에 순종하다가 자신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26절에는 사랑하시는 제자라 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요한의 신앙과 경건의 모습을 갖추어져 있는 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부탁은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떤 부탁을 받았습니까 오늘 창립주일 그리고 종려주일을 맞는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부탁이 있으시다면 어떤 부탁을 하시겠습니까? 사실 다윗에게 사울을 부탁하신 것도 나중에 보면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안산빛나교회를 부탁하시지 않으실까요? 어쩌면 새성전도 부탁하시지 않으실까요? 보라 네 어머니라 때론 남편을 부탁하고 자식을 부탁합니다. 내 생각 내 계산은 주님의 부탁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부탁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부탁하심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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