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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밧보섬에서 요한의 힘 (계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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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모섬에서 요한의 힘 (계1:9-20)

AD95년을 전후하여 로마의 도미티니아누스(도미시안) 황제 말기
  그는 자신의 제국 통치의 누수현상을 만회하고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신을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이 정책의 첫째 희생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 외에 누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당시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였던
  사도 요한이 체포되어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사정을 그는 본문 9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로마제국 시대에 밧모섬은 정치·종교 중범자들의 유배처였는데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생지옥이었다.
요한은 이 섬에서 돌을 깨는 일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이곳 채석장에서는 돌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인생의 막장에 던져진 요한은 아마 살 수 있는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요한 사도의 성품 자체가 아주 온순하고 부드러워서
  어떤 면에서는 가장 소극적이고 이 고난을 극복한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밧모섬으로 유배를 왔다는 것인데 놀라웁게도
  그런 절망적인 용어는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인생막장과 절망과 고통과 외로운 유배지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요

아마 그 절도 고도에 던져진 요한 사도는 이런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첫째는,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고
둘째는,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연예인들이 줄줄이 자살을 하는 일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마 이들도 자신에게 이 두 가지의 질문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결국 할 일이 없다고 생각되고 자기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가 없다고 판단되니 죽음을 선택할 수 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나 자신 있게 대답할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하여도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일이 분명 있으며
  또한 막장과 같은 인생의 막다른 두려움에 골목에 있다 하여도
  우리는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경험하고 체험한 일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놀라운 체험이 있습니다.

1.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일을 지키고  예배한다.
대답은 여전히 주일을 기억하고 주님께 예배할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내가--"라고 강조한 것은
  그가 이 유배지에서도 얼마나 주일을 사모하고 예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일은 한 주의 첫째 날이며 안식 후 이튿날
    곧 주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었습니다.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날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교회 공동체의 승리를 피차에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승리의 날이요, 예배의 날이요,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림으로 그들은 힘을 얻었고
    삶의 모든 문제들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함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지경에 있든지 성도는 그곳에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꼭 교회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꼭 목사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눈만 감으면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아니 눈을 뜨고서도
    기도하며 찬송을 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1968년 1월 23일 미국의 정보선 푸에불로호가
  북한의 영역을 침범하여 배와 함께 36명의 선원이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10개월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던 미군들은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그곳에서 예배함으로 힘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예배 했느냐 하면 선원 중에서 성경을 많이 암송하고 있었던 군인이 있었는데
  그가 성경을 암송하면 나머지 군인들은 그 성경을 들으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바로 날마다 그렇게 예배함으로 그 힘든 지옥 같은 10개월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재하여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에게도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 핍박 가운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바로 예배였습니다.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전20:7)라는 표현이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에 모여서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안식후 첫날에 모였다”는 말이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그들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안식 후 첫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으며
  핍박과 고난이 있기에 더 자주 안식 후 첫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이 낯선 고난의 섬-밧모에서 유배생활을 하지만
  어떻게 주일을 잊겠으며 주일 예배의 감격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10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성령에 감동되어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컨대 계시록4:1-2에서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었고 주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는데
4:10에 보면 이어서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를 떠날 때 에베소 교인들은
  요한 사도를 돕도록 요한의 제자였던 브로고로(행전6:5-브로고로/예루살렘 7집사중 1인)를 함께 동행시켰다고 합니다.
브로고로 그리고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밧모섬의 암굴에 엎드리어 주일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도 밧모섬에는 사도 요한이 주를 예배하고 계시를 받은 장소를 "계시 동굴 교회"로
  보존하고 있고 같은 지역에 후대에 세워진 신학교가 남아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낙심될 것 같을 때에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부르며 찬송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큰 은혜와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어던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시고
    마지막 눈을 감기 전까지 주님을 찬양하시면서 그 힘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는가?
인생은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대감이 소망이 되며, 기대감이 곧 힘이며
    그 기대감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대할 것이 무엇입니까?
(소원 성취하시려고요..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 큰 기대는 것은 바로 주님 만나는 일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고 가장 큰 기쁨입니다.
(나 오늘 예수님 만난다.)

주님은 외로운 유배지 밧모 섬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를 예배하는 요한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팔 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다가 오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무릎 꿇어 기도하며 경배하는 동안
    갑자기 등뒤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려 왔다고 합니다.
놀랜 요한은 "당신은 누구십니까?"묻습니다.
음성은 세 갈래로 갈라진 천장 바위틈에서 세 마디로 울려 나왔다고 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자라 하시더라"(계1:8)

그날 요한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주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그 모습을 모면서 크게 깨달은 두 가지가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하나는
1)주님이 교회를 다스리는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2)주님이 역사를 다스리는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요한 계시록 전체계시의 핵심입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를 오늘 깨달아야 하며
  이것을 깨달으면 세상 걱정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1) 교회를 다스리시는 교인의 주인

지금 요한은 그가 섬기던 에베소 교회를 빼앗기고 밧모섬에 유배되어와 있습니다.
교인들은 다 흩어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섬으로 유배되어 떠날 때 요한은
  "아니 주님 당신의 교회들을 이렇게 버리십니까?"라고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보여 진 환상은 그가 뒤에 두고 온 소아시아 7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금 촛대 사이로 주께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다니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을 잡고 있었습니다.
12-13절을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이 환상의 의미는 다시 20절에서 해석되고 있습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일곱 교회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교회들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그는 여전히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고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진다 하여도
  바로 전능하신 예수님이 교회 사이를 거니시고 교회를 지키시기에
  결국 교회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좀 벅차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친히 마태16:18에서 "내가 반석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집이며 예수님이 잡고 계시기에 예수님이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일곱 별을 잡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별은 누군가요?)
예수님은 교회의 지도자 목사를 세우시고 그 목사를 붙잡고 계십니다. 
저도 가끔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 말씀을 생각하면 저에게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이 저를 잡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도 잡고 계십니다.

2)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님

성경은 계1:8에서 예수을 가르켜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올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주인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다시 17절에서 그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에서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
  곧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함께 지배하시는 분이라고 자신을 선언하십니다.
그 역사와 세상을 다스리는 예수님이 19절에서 요한에게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시고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분이
  보여주시는 역사를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바로 이 비밀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계시록에는 역사의 과거에 일하신 주님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요한이 이 계시를 받던 당시의 교회의 현실이 그대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역사의 비밀이 또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곱 인봉이 차례로 열리면서, 7나팔이 불어지면서 이어서 7대접이 쏟아지면서
이 세상 역사 속에 넘쳐나는 죄악들을 심판하는 전쟁,
  기근, 온역. 자연의 재앙들로 신음하는 지구의 역사가 증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역사는 결코 비관적이 아닙니다.
흔히 계시록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같은 재앙이 임하는 비관적인
  종말의 책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보편적입니다.
물론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는 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재앙이 임합니다. 
계시록의 핵심은 죄악과 심판과 재앙의 한 복판에서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소망이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더럽혀진 교회, 더럽혀진 성도들도 이 땅에는 적지 않지만 주님은 거룩한 교회,
  거룩한 성도들을 사용하셔서 거룩한 승리를 선포하게 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소아시아 7교회를 향해 보내어진 요한의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기는 자에게는--"라는 표현은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를 기대하는
  주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석가 윌리암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은 그의 계시록 주석에서
  계시록의 열쇠구절을 11:15로 보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롯 하시리로다" 헨드릭슨은 계시록의 주제를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가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도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

맞습니다. 때로는 세상에 의해 경멸받고 핍박받는 예수의 교회-
    그러나 이 교회만이 세상의 소망이고 구원인 것입니다.
비록 요한 사도는 그가 섬기던 소아시아의 교회들에서 단절되어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교회를 다스리시고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환상을 보는 순간  외로운 밧모섬의 동굴에서 주일마다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을 경배하면서
  이 암울한 시기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이 예배에서 새 역사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신으로 경배하라고 강요했던 황제 도미시안은 AD96년 마침내 살해되고
  요한 사도는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소아시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또 한번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가 승리하였으며 믿음의 성도들이 이긴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요?
이 힘들고 어려운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
  내가 할 일도 없고 나에게 기대할 소망도 없다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의 일이 아니고 최대의 일입니다.
예배보다 나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큰 일은 없습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나에게 소망을 주며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일 날에 예배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힘이며 해결책이며 예배는 좌절 가운데서도 큰 기대와 소망을 가져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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