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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인생 삶의 생기를 얻으라!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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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삶의 생기를 얻으라!
(요 20:19~23)

시작하는 말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완전히 생기를 잃고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나사렛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생활하며 활동했던 모든 것이 허사인 듯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1-2)라는 말씀을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맥이 풀어져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의 글로바와 그의 동료와 함께 만찬을 드신 주님이 25리나 되는 예루살렘 제자들의 은신처에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동시에 나타나셨는지, 시차가 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별 문제될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요20:19)라고 문안하셨습니다. 문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선언이셨습니다. 그 시로부터 제자들은 생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손에는 못자욱, 옆구리에는 창자욱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물론 부활의 몸에 육체의 모든 상처가 그대로 있는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독실하게 하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보여 주신 겁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 자리에서 지난 3년 동안 제자들에게 누차 강조하시며 가르치던 말씀을 재확인시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삶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1. 평강의 은혜를 받으라 !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강입니다. 평강은 평안하고 강건한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평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활이전에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도 나를 믿으라”(요14:1)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두려워 떨고 문을 잠그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요20:19)라고 문안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이 한 마디 말씀은 천하의 모든 두려움을 날려 버리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삽시간에 사라지게 했습니다. 평안을 제자들의 심령 속에 깊이 심어주셨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한 아이가 어머니께서 주신 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불행하게도 그 반지를 잃어버려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평정을 찾고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누나가 비웃듯이 그에게 말 하였습니다. “얘 반지에 대해 기도하면 무슨 소용이 있니? 반지가 돌아오기라도 하니?” 

그아이는 “아니”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지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것이 없이도 갖고 있을 때와 똑같이 지낼 수 있거든”라고 말했습니다.

2. 사명을 재확인하라 !

우리 주님은 평상시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명을 주셨습니다. 갈릴리 전도에서, 예루살렘 전도에서, 가시는 곳마다 사명감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건으로 삽시간에 사명감은 무너졌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우리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8-19)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신약에서 교회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나옵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 즉 사도들에게 교회를 세워서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이 사명감은 십자가의 예언으로, 십자가의 사건으로 삽시간에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허물어진 사명감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스웨덴의 종교가요, 교육자였던 “칼 힐티”는 “인간 생애의 최대의 날은 자기의 역사적 사명 즉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자기를 어떤 목적에 쓰려고 하는지를 자각하는 날이다”고 말했습니다.

내 생애의 최고의 날이 언제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 다르다. 어떤 이는 고시에 합격한 날을 드는 이도 있고, 박사학위를 받은 날을 말하는 자도 있고, 권세를 잡은 날, 또는 원하던 사람과 결혼한 날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습니다.

내 생애에 최대의 날은 언제일까?  힐티의 말처럼 인생의 최고의 날은 “하나님께서 나를 무슨 목적에 쓰려고 이 세상에 보냈는가를 확실히 깨닫는 날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고 사명을 다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그래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디베랴 바닷가에 가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를 찾으신 주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를 세 번 물으시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시명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시는 말씀이셨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나의 사명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을 확인해야 합니다. 사명을 확인하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명의 확인이 없으면 유야무야의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직분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명감을 일깨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이나 일삼고, 불만이나 토로한다면 부활정신과는 맞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사명을 찾아야 합니다.

사명은 의무요, 사명을 감당하는데는 권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권세를 위임하셨고, 예수님은 권세를 교회에 위임하셨고, 교회는 권세를 사명 자들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 자들은 사명에 합당한 권세를 부여받게 됩니다. 권세는 휘두르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주어지는 겁니다.

3. 성령 충만을 받으라 !

우리 주님은 성령 충만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성령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성령으로 자라나셨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셔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 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주님은 보혜사를 보내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제대로 축복받고 생활하자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숨(호흡)과 같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할 것을 재확인시키시는 말씀이셨습니다.

“무디 선생”은 언젠가 설교를 듣는 교인들에게 이 컵에서 어떻게 공기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뺄 수 있는 지를 질문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기 펌프로 빼면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무디 선생은 “그렇게 하여 진공이 되면 컵이 깨집니다.”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많은 빗나간 대답들이 있은 후 무디 선생은 미소를 지으면서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자 보세요. 공기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할 때 무디 선생은 그리스도인이 생활에서 공기를 빼려고 하듯이 죄를 제거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로지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짐으로 죄를 제거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에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오순절에 새로운 기운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은 하늘을 나를 듯한 능력을 받았습니다.

끝맺는 말

십자가의 사건으로 풀이 죽어 생기를 잃었던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사건으로 생기를 얻었습니다.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숨결이 가빠졌습니다. 모임이 잦아졌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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