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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 (히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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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 - (히 5:~10)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성경만이 이러한 것을 얻기에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경전을 통해서도 교훈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른 책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성경만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무오, 동정녀탄생, 그리스도의 대속, 육체적 부활, 그리고 주님의 재림입니다. 물론 다른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가지는 기독교의 핵심적 가치입니다. 이 다섯가지가 없는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인가와 어떻게 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또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은 오직 십자가에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모든 것은 십자가와 연관하여 해석되어져야 하고 모든 답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입니다.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육체에 계실 때에 어떤 모습이셨으며, 무엇을 하셨는가? 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여서 33년 동안 육체를 입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육체로 계실 때'에는 그 33년중에 언제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통상적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라고들 생가합니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마태는 '고민하고 슬퍼하사'(마26:37), 마가는 '땅에 엎드리어'(막14:36), 누가는 '힘쓰고 애써'(눅22:44)라고 당시의 상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님은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말씀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이라고 표현된 것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십자가의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히브리서 기자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라고 하지 않고 '육체에 계실 때에'라고 표현했을까요? 이것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가 십자가에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와 똑같은 육체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유독 강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못 박히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못'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님 곁의 두 강도도 다 못 박혀 사형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성경은 저들도 못 박혔다고 진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목회와 신학'의 '이달의 성화읽기'라는 칼럼의 저자 '전광식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는 소장하고 있는 100여개의 골고다 십자가 성화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를 알려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성화는 강도들이 못이 아닌 묶인 상태로 사형이 집행 된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 두 개의 그림에는 못 박힌 장면이 있지만 그 경우에도 발은 못 박지 않고 묶여진 상태로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예외 없이 손과 발 모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독 '못 박히심'을 강조하고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못은 순종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못은 망치에게 맞으면서 깊이 박혀 어둠 속으로 자신을 숨깁니다. 못은 자신이 감추어짐으로서 다른 것을 받쳐주고, 버티게 해주고, 이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망치는 힘과 권력을 상징합니다. 망치를 든 사람은 망치로 내리치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그 무서운 손으로 내리칠 때마다 못은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못이 되기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참으로 위대한 일은 망치가 아니라 못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 망치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일생을 못처럼 사셨습니다. 망치에게 얻어맞고, 채찍으로 맞으면서 깊이 박히는 못처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망치를 손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손에 든 것은 망치가 아니라 수건이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못에 박혀 우리 영혼을 받쳐주는 구주가 되셨고, 우리의 고통스런 인생길에서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모진 고통과 고난을 친히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요, 십자가 위에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의 고난 없이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업습니다. 그 측량할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 무려 6시간동안이나 이어졌던 그 고통을 기도함으로 견디신 주님, 때로는 골짜기를 뒤덮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때로는 심령 깊숙한 눈물로, 그 모진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신 주님을 생각하며 이 한 주간 동안 우리 모두 기도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나와 엎드리는 자들에게 은혜주실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떤 문제이든지 해결해 주시는 기쁨을 맛보게 될 줄을 믿습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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