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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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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중국의 선교 전략회의 위해 상해에 며칠 머물면서 4년 전에도 청년들과 함께 다녀 온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보고 또 한번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상하이 옆 포동이라는 곳을 가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포동은 미국 뉴욕의 맨하탄보다 더합니다. 60층이 넘는 건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즐비하게 늘어섰고 또 세워진 건물들이 비슷한 건물이 하나도 없는 포동의 야경은 그야말로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도시를 연상시킵니다. 마치 건물들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런 일들이 불과 지난 5,6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지금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욱일승천하고 있는 중국에는 숨은 비밀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나나 날 중국과 미국이 핑퐁 외교를 통해 얻어진 것이 무엇이냐하면 중국은 어떤 원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대신 똑똑한 중국 학생 10만 명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현재 중국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관료들은 우리나라 관료들보다 훨씬 깨어 있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잘 세운 것입니다. 뭐,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을 잘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세워지지도 않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리더십 전문가 스티브 코비(Stephen Covey)는 리더십 양성은 학교 교육의 개념이 아닌 농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두뇌가 있고 요령이 있으면 벼락공부를 해도 좋은 학점을 따내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농사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봄에 씨를 심고 모내기를 한 뒤, 여름 내내 충분히 물과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지 않으면 결코 가을의 풍성한 추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보고, 갑자기 가을에 모내고, 거름 주고, 물주고 해서 일주일만에 추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농사는 정직한 땀을 흘려야 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만 합니다. 인스턴트 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는 리더도 라면처럼 급조하려는 경향이 많은데, 인간의 생각으로 급조하면 성경의 사울 왕과 같은 비참한 지도자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진 에드워드는 '세 왕 이야기'라는 책에서, 사울과 다윗은 처음 시작할 때는 둘 다 능력도 비슷했고 겸손하게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둘의 차이는 오직 하나. 사울은 광야를 거치지 않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급조된 리더였기 때문에 그의 지위가 그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태양같이 젊은 20대를 광야에서 사울의 광기에 찬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며 보냈습니다. 그 광야를 통해 하나님은 다윗 속에 자리하고 있던 제2의 사울을 죽여 버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다윗을 겸손하게 하시고 그의 영성과 인격을 깊게 하는 리더십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놓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리더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로 기름 붓는 장면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행13:22절에 보면 다윗을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가 내 뜻을 이루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았습니다. 그 말은 다윗을 처음 보았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참 다윗을 겪어 본 다음 다윗을 평가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이 말은 '마음이 맞는다', '마음에 든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다윗이 어떠한 사람이 길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사람에게도 인정받는 다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이 이야기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은 영웅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닙니다. 또는 그가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어 나라를 통일하는 큰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사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뺏는 몰염치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그를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다윗이 완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도 연약한 한 인생입니다. 실수도 많이 했고, 그의 손에는 피 냄새가 떠난 적이 없을 정도로 숱한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인 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움은 그는 그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너무 정직한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수백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영적인 자산과 우리에게 도전을 줄만한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의 다윗은 특별히 우리에게 남다른 감동을 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도 사람을 세우는 일에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역시 '나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없을까? 이런 소원은 성경을 읽으면서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함께 대한 본문을 보게 되면 이제 한 시대를 섬겨 나갈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이새의 집에서 사람을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찾아가 우리도 왕을 세워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래서 세워진 인물이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왕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욕심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 앞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왕을 버리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을 세우려고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 하나님과 함께 일할 정결하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때 하나님께 발견된 사람이 다윗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함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갈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마음을 맞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하나님은 오늘도 다윗에게 주신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다윗처럼 존귀하게 높여 주실 것입니다. 다윗처럼 사랑하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언제 어디서든지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마음이 맞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마음을 맞출 수 있습니까?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었습니까?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무엇을 먼저 보시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한 시대를 아름답게 섬겼던 사무엘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외모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6절과 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는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은 제사를 드리러 온 엘리의 아들들 중 ‘엘리압’을 보고 한 눈에 하나님이 선택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무엘이 엘리의 장자인 엘리압을 마음에 두게 된 이유는 바로 7절에 있는 것처럼 그의 외모와 신장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왜 엘리압을 보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9장과 10장에서 사울이 왕으로 뽑히는 과정으로 되돌아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9장 2절을 봅니다. "기스가 아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10장 23절입니다.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니라" 이스라엘 나라에 첫 번째로 왕으로 부름을 받은 사울은 그 용모가 준수했고, 키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정말로 남자다운 풍채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압의 용모와 신장을 사울 왕과 비교하면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재목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무엘의 판단을 뒤집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그의 외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외모가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회활동을 하면서 외모는 중요한 것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는 것도 하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외모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외모가 그의 인격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제일먼저 겉으로 나타나는 외모와 외적인 조건을 봅니다. 그가 잘 생겼는가? 못 생겼는가? 키가 큰가 작은가? 몇 평 짜리 아파트에 사는가? 그의 직업은 무엇인가? 얼마짜리 차를 타고 다니는가? 또 학력은 어느 정도 되는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 겉으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들입니까?

요즘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조건 불리기와 외모 가꾸기에 열중입니다. 그 중에 외모 가꾸기는 너무하다 싶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미를 추구하는 본성을 주셨기에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란 말이 있듯이 짧은 시간에 우리는 결단을 요구하는 시기에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쉬운 의사 결정이 외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이왕이면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외모에 대한 관심이 너무 지나치다 보면 상대적으로 내면에 대한 무관심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겉도 아름답고, 속도 아름다우면 좋지만, 겉만 화려하고 속이 추하거나 비어 있으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마리 프랑스(유명한 체형관리업체)에서 아시야 6개국 여성들(20-59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여성의 78.7%가 불만족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 현상입니다. 이렇게 외면에만 신경 쓰니 얼마나 그 내면이 공허하고 빈약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내면 가꾸는 데 열중하도록 권면하십니다. 벧전3: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그런데 내면을 가꾸는 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 심히 부패했기 때문입니다.(렘17:9)

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인간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는데, 정말 밭과 비슷합니다. 그냥 놓아두면 그대로 보존되는 게 아닙니다. 어느새 잡초가 돋아나고 쓴 뿌리가 생기듯이, 흙이 굳어지듯이 마음이 엉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호 10:12절에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이를 위해 먼저 십자가 보혈을 의지함으로 마음을 깨끗이 함을 얻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 대속의 은총으로만 우리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매일 말씀 앞에 마음을 비춰봄으로 영적인 잡초를 뽑아내고, 성령의 은혜를 간구함으로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돼야 합니다. 다윗은 늘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가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소년 시절 이미 그 마음이 아름다워 하나님의 눈에 들었지만, 일생을 살면서 때때로 실수도 있었지만 꾸준히 마음의 밭 가꾸기에 힘썼습니다. 참회시인 시편 51편을 보면 그의 이런 영적 노력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시51:5,7,16-17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악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정결케 해주시도록 부단히 기도했습니다. 늘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승리한 비결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 다릅니다. 감찰하시는 눈입니다. 잠16: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감찰하시는 눈입니다. 불꽃같은 눈입니다.(계1:14 참조)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전지성을 표현하는 비유법이죠. 사람은 겉모습만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엘리압을 비롯한 이새의 일곱 아들들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사무엘이 보기에 이새의 일곱 아들들 모두가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택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순간 당황하며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새가 아직 막내가 남아 있는데, 그는 들에서 양을 지킨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은 즉시 양을 치고 있는 막내아들을 데려오게 합니다. 사무엘 앞에 나타난 이새의 막내아들은 눈에 총기가 있고 혈색이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인물, 그의 아비 이새마저도 기대하지 않았던 막내아들 다윗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입니다. 양을 치고 있는 목동 다윗을 불러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의 선택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막내는 그저 양을 지키면 되는 아이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아비나 형제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12절까지는 그의 이름조차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다윗의 성실성 때문입니다. 다른 형제들이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몸단장을 하고 사무엘 선지자가 집전하는 제사에 참석하는 동안 다윗은 형제들에게 밀려 혼자 조용히 양들의 보호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함이 하나님의 선택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특별히 다윗이 아버지의 양 무리를 돌보고 있는 것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양 무리, 즉 백성들을 돌볼 목자로서, 왕으로서의 준비를 갖추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절대로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삼상 17장 34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양떼를 치면서 성실했습니다. 양을 먹이는 일과 양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양을 해치려는 맹수와 싸워서 지켜냈습니다. 그런 것들이 후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담대함, 전술, 지략 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 훈련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꿈만 꾸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꿈의 대가를 치를 줄 아는 사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히 저절로 이루지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섭리와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데, 바로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또 한가지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고 일을 맡기실 때에 일할 수 있는 힘과 능력도 함께 주신다는 것입니다. 13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이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순간 다윗이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성경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사사시대에 민족을 구원할 사사를 세우시면서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셨습니다. 사울도 역시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왔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임재와 함께 사도행전의 교회가 시작되었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위기는 가난이 아닙니다. 사업에 실패하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을 잃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위기는 영적 빈곤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우리들의 삶을 진단하면서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기를 항상 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말씀은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교회의 장로를 선출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참된 하나님의 일꾼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이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외모나 나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중심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에게 기름 붓는 과정에서 사무엘이 보여준 태도도 유의할 만합니다. 그는 처음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는 "아,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니라 하시자 곧바로 아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승복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곧바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이나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인간관계 등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사람을 택하는 불충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성령에 크게 감동된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떠난 사울처럼 시기와 의심에 가득 차서 남을 헐뜯고 해하는 일에 광분하지 않는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울처럼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함께 망가뜨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앙적으로 바른 판단을 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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