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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초라해진 부활 (요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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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진 부활(요21:1-14)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오늘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이 예배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2천년전에 있었던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그 부활의 영광이 우리의 것이 되었음에 감사로 드려지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부활의 은총아애 이 땅 조국의 모든 아픔이 치유되고 갈등과 반목의 낡은 질서가 사랑과 화해의 새 질서로 아름답게 자리매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또한 우리 주님 부활의 은총가운데 너무도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는 아픔들이 치유되고 부활의 승리 부활의 소망이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노래되어졌으면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는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봅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고기를 잡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저들이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고 누구를 기다려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사람들임을 아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저들은 고기를 잡고 있다는 것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고기도 잡지 못한채 또 한번의 실패자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처음 예수를 만나면서 그물을 버려두고 과거의 삶을 정리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서 제자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경험한 신앙적 체험은 또한 무엇입니까 저들은 바다가 주님의 말씀에 잔잔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도 38년 된 병자가 치료되는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았습니다. 더 깊은 체험들도 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서는 예수님의 변형되는 모습도 보고 하늘의 음성을 들으며 수천년 전 구약시대의 사람들이었던 모세와 엘리야도 보았습니다. 이런 경험과 더불어 제자들이 했던 신앙고백또한 귀한 것들입니다. 요1장을 보면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 너무 좋아서 형제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소개하기도 합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소개하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와보라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마16:15절에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앞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여 주님을 감동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제자는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만은 버리지 않겠다 하며 예수를 따르며 죽는데라도 가겠다 고백을 합니다.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죽은데라도 가겠다고 저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며 무너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망과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무덤을 열고 살아나신 예수님은 흩어졌던 제자들을 하나하나 찾아와 만나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은 빈 무덤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천사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로 돌아와 고기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저들이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은 고난 중에도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도 아닌 부활하신 다음이 있어진 일입니다. 지금 저들이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 많은 영적인 체험들 고백들 그리고 수없이 배우며 감격했던 하늘의 진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됨의 축복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3년반전에 배에서 그물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라 나섰던 저들이 이제 더 큰 것 부활의 영광을 포기하고 과거의 생활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그간의 체험들을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가 사셨슴도 부활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지금 부활이 부활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이러해야 했을까요
왜 이들은 자신들이 버렸던 배와 그물을 찾아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앞에서 저들의 인간적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처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에는 남다른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다에서 배 그물과 씨름하는 것보다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 가능성이 있어보였던 것입니다. 그때 저들은 12명밖에 안 되는 제자공동체에서 서로 예수님의 오른편 왼편에 앉으려 했다고 서로 높아지고 큰 자가 되기 위해 씨름을 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낮아져야 한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정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기대는 십자가앞에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 상실감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아나셨답니다. 제자들은 모였습니다. 무엇인가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사셨으면 저들의 신앙도 고백도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인데 그러나 주님의 부활의 소식앞에 제자들에게서 살아난 것은 신앙이 아니라 과거에 가졌던 인간적 기대 그리고 인간적 욕심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 기대앞에 모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세상적 기대나 세상적 욕심을 버리지 못한 제자들에게 아무 역할이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앞에 초라해져 버린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원하는 말씀은 하나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을 받으라 나 있는 곳에 너희가 있으라 십자가를 맡기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기에서 절망합니다. 고기나 잡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고기 잡으로 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삶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잊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15:5절에서 예수님이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은혜를 입은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가장 자신있다 싶었던 바다에서 배와 그물사이에서 학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것이 복입니다. 아직도 세상이 바다가 무엇인가를 줄 것 같아 보이시겠지만 저들은 자신들이 바다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능력이 만들 능력이 있는 줄 알고 있겠지만 아닙니다. 예수님을 포기하고 제자됨을 포기하고 수없이 누렸던 은혜들을 포기하고 영적인 특권을 포기하고 고기하면 제일 자신있다 여겼던 현장에서 완전한 실패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이 겪고 있는 또한번의 실패의 현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영육간에 무뎌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버렸으나 예수님은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포기했으나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한번의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진 제자들을 버려두고 더 잘남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배반하고 저주하고 고기잡으로 갔다가 또 한번의 실패에 허우적 되고 있는 저들을 찾아와 만나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 현장에서 주님은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은 주님이 지금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 하여 숨어있는 아담에게 묻듯이 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는 것을 지금 역설적으로 묻고 있으신 것입니다. 지금 어리석은 제자들은 옛날에 버렸던 배와 그물을 잡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외면하고 과거의 것들과 헛된 씨름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은 없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것 같아도 결국 인생은 평준화됩니다. 50대가 되면 인물이 60대가 되면 지식이 80대가 되면 재산이 평준화된답니다. 내것이 내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에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과 씨름하고 계십니까? 훼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을 읽어보면 결국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그물을 던지고 계십니까? 부활의 주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닙니다.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구합니다.

먼저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을 묻고 사랑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부활이신 주님은 우리를 향해 짝사랑보다 일방적 사랑보다 함께 하는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을 이제 부활의 주님은 사랑을 원하십니다.

이제 주님이 내 삶에서 외면당하고 초라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적극적으로 믿으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십시오. 내 삶에서 부활의 주님이 가장 중요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또 하나 부활의 주님은 사명을 요구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내 양을 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으셨던 부활의 주님은 이제 우리의 수고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말입니다. 이 부활의 날에 주님은 우리를 찾아와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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