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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 (룻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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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룻기라는 성경은 누가 그 책을 기록하였는지 저자를 알 수 없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아마 다윗 왕 이후에 다윗을 예찬하는 어떤 사람이 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탈무드 “바바 바드라”에서는 사무엘 선지자가 기록한 것으로 말하는데, 정확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나눌 때에 모세오경의 율법, 예언서와 마지막으로 성문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룻기가 우리 성경에서는 역사서로 분류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거룩한 문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문서 중에는 시편과 잠언과 욥기의 지혜문서와 함께 다음으로 “다섯 두루마리”라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 아가서, 룻기, 전도서, 애가, 에스더 이상 다섯 권의 책을 다섯 두루마리라고 합니다.  아가서는 유월절에 읽었으며, 룻기는 무교절에 읽었고, 애가는 아브월 9일인 성전파괴기념일에 읽었고, 전도서는 장막절에, 에스더는 부림절에 읽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룻기는 가장 목가적인 책이라고 칭찬하며, 시적인 예술성과 아름다움이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룻기를 기록하는 목적은 룻이라는 여성이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다윗왕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 인물이냐, 그가 메시아의 족보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실패한 한 사람을 어떻게 받아주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어떻게 회복시키느냐 하는 것으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어떻게 보면 좁은 동리에서 스캔들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사건인데도 당당하게 한 사람을 세워주고, 회복시키고,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으로 룻기는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돌아오기를 소원하십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도 재기하게 하고, 망하게 된 사람도 위대한 인물로 일어서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징검다리를 놓는 인물로 사용하십니다.  어찌 보면 정상적인 여인들의 이름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 반하여 비정상적인 여인들은 위대한 인물로, 그들의 족보에 당당하게 기록해주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극히 연약한 사람을 들어 강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여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사람이요, 사회적인 약자요, 부적절한 관계로 들어온 사람들인데, 정말 귀한 존재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룻기 1장에서부터 읽어보면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동리에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부인 나오미와 함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흉년을 피하여 모압이란 이방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흉년을 피한다고 이민 갔는데, 10년 동안 살면서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었으며, 부인 나오미는 모압의 여인 룻과 오르바를  맞이하여 두 아들 말론과 기룐으로 장가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자식도 낳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라는 여성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땅이 무너질 것인데, 두 아들을 이방 땅에 묻어야 하는 쓰라린 아픔을 겪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처량하기도 하고, 남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 부인들 책임입니까?  우리나라 같으면 남편을 어찌한 여자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정신을 차리고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사람이 성공해서 고향을 찾는 것은 좋으나 다 망하고 돌아온다는 것이 자존심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팔았던 땅을 되찾고,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고향인 베들레헴은 이제는 풍년이 들었고, 먹을 양식이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두 며느리가 함께 따라나서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간곡하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자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각기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남편을 맞아 잘 살라고 하였습니다. 

두 며느리가 소리 높여 울며,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단호하게 며느리들에게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오르바라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의 입 맞추고 돌아갔지만, 룻은 절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1:16-17의 룻의 간절한 소원을 그대로 읽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세상에 이런 며느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룻은 모압의 여성이었지만, 유대인에게 시집을 왔으면 이제 자기는 유대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에 떠날 수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의 젊은 여자 룻을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나와 반겨 맞아주는 것도 불편할 정도로 절망감에 쌓여 있었습니다.  온 성읍의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떠들며 인사합니다.  “이 사람이 나오미가 아니냐, 나오미가 왔다.”고 반겨 맞이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고 하지말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라는 말은 희락이라는 말인데, 나를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마라라는 말은 괴로움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희락이 아니라, 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나오미의 심정이 얼마나 처절하였을까, 그의 심정을 상상해보았습니다. 한 여성으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그 후에 장가든 두 아들이 따라 죽었으니, 마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습니다. 

두 여인이 베들레헴에 들어왔을 때에는 한참 보리 추수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룻이 일어나서 시어머니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제가 밭으로 가서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이 때에 나오미는 며느리의 헌신에 감동을 받고 허락해주었습니다.  룻이 추수하려고 나서는 사람들을 따라가서 한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그 밭은 우연히도 죽은 엘리멜렉의 친척이요,  동리에서도 대단히 유력하고 덕망 있는 보아스라는 사람의 소유였습니다.  때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자기 밭으로 나와서 보리를 베는 자들에게 밭에서 이삭을 줍는 여자가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곡식을 베는 일꾼들을 부리는 사환이 일러주었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모압 처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매우 착하게 보고는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하며, 정말 친절하게 배려해주었습니다.  일꾼들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이 젊은 여성을 건드리지 말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룻이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면서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라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밭에서 추수하며 일하는 일꾼들이 식사할 때에도 룻을 오라고 하여 떡을 먹게 하였고, 곡식을 거두면서 야박하게 모조리 거두지 않고, 이삭을 떨어뜨려 넉넉하게 주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보아스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려고 낯선 땅에 찾아온 여인에게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룻이 하루 종일 밭에서 주은 이삭을 떨어보니 한 에바쯤 되었습니다.  한 에바는 22ℓ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보이고 일꾼들이 준 떡을 시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보아스가 적극 관심을 가지고 룻을 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보아스로 하여금 자기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재산을 다시 찾아주고 기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그 후에 계속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 이삭을 줍고,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이삭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몇 주간 계속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을 불렀습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룻이 시어머니의 시키는 대로 “다 행하겠습니다”고 말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좀 어찌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런 스캔들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일을 시키는 어머니나 그렇게 하라고 그대로 순종하는 젊은 여자도 다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하루 종일 타작하였고,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누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룻이 시어미가 시키는 대로 보아스가 덮고 있는 이불을 살며시 들치고 들어가서 옆에 누었습니다.  보아스가 자다보니 한 여인이 자기 곁에 한 이불 속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밤 중에 보아스는 놀랐습니다.  몸을 돌이켜 보았더니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었습니다.  “당신 누구요”하고 물었더니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집안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업을 무를 자는 재산을 되찾아주는 것과 결혼하여 자식을 이어주어야 하는 두 가지의 과업이 있었습니다.  이 밤에 기업을 무를 자가 된다는 말은 자기를 아내로 받아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룻이 기업을 무를 자라는 말의 뜻을 잘 알고 한 말인지, 어머니가 하는 말대로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아스가 자상하게 말해줍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는 참으로 사려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기업을 무를 수 있지만, 자기보다 더 가가까운 친척이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먼저 기업을 물러주면 좋지만, 그가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자기는 틀림없이 기업을 물러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 밤에 발치에서 아침까지 자고 가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새벽에 여인을 깨우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때에 집에 가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 룻이 타작마당으로 들어와 함께 자고 간 것을 알지 못하도록 단단히 이르고,  룻의 겉옷을 펴서 보리를 여섯 번이 되어 주면서 성읍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네 시어머니에게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네 시어머니에게 빈손으로 가지 말라”는 말 정말 귀한  말입니다.

이후에 보아스는 성문에서 모든 사람을 모으고 기업을 물러주는데, 먼저 자기보다 가까운 친척에게 책임을 감당할 것인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가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나, 모압 여인 룻을 아내로 맞아 그에게 대를 이어주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의무를 포기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표시로 그의 신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겠다고 확정하고, 땅을 되찾아주고, 룻을 아내로 맞이한 것입니다. 

보아스가 동리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의 기업을 나오미에게서 사들인 것을 증인이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고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에 증인을 삼았습니다. 

성읍에 사는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이 증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축복해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룻4:10-11)라고 했습니다.  아마 보아스가 나이 많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였던지, 결혼하여 아내가 있었다고 해도 아들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상속자를 낳아달라는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그의 아버지가 살몬이었는데,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을 아내로 맞아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맞아 결혼하였고,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룻으로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동리의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모여들어 축하하였습니다.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축복하는 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깊이 살펴보면서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라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한 여인의 며느리가 되신 분들은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벳이라는 뜻은 “섬기는 자”, “봉양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오벳은 다윗왕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로 다윗에게는 할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이 룻기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를 따라 온 모압의 여인 룻을 통하여 장차 메시아가 오실 계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에게 한 쪽의 창문을 닫으셨지만 그러나 다른 창문을 예비하시고 열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는데, 그것이 사람 편에서 보면 우연이라는 말을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보아스보다는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에게 물질적인 손해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기업 무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게 하시고, 보아스가 최선을 다하여 책임을 감당하게 하시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총이 얼마나 크냐 하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그를 존중히 여겨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귀한 여인, 세상에 소중한 사람, 그렇게 마음이 고운 여인은 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룻의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이들이 좋은 마음과 넉넉한 기다림과 후한 인심으로 실패한 한 가정과 실패한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아스라는 사람은 유력한 사람이요, 인심이 후한 사람이요, 사람을 볼 줄 알았고, 실패한 사람들을 끌어안고 회복시켜주는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 남자들은 보아스와 같은 넉넉하고 책임을 감당하고, 후하고 인심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천국은 누구의 것입니까?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침노하는 자가 빼앗고 차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실패하였다고 생각하고 낙심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들어서 강한 사람, 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며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시고, 실패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은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은 복되게 하여 주십니다.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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