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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손의 착각 (삿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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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이유는 바로 교인들이 훌륭하고 좋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데 이 정도로 헌신하시고 관심을 가지시는 것에 너무 놀랐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고마워하실 줄 압니다.
이렇게 좋은 성도님들께 오늘 저는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듯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더 잘하고 더 성숙하고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빠지지 말아야 하는 ‘착각’이나 ‘오해’ 혹은 ‘자만심’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교훈을 주실 양반은 유명한 ‘삼손’입니다.

사사기 13장에서부터 삼손 이야기가 나옵니다.
삼손은 출생부터가 대단합니다.
사사기 13장부터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블레셋’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붙이십니다.
마치 우리에게는 한일합방이 된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때에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아기를 못 낫는 불임이었는데 어느 날 여호와의 사자가 그녀에게 나타나서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 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삿13장 4, 5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여기서 보면 이 아이는 나면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실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민수기 6장에 나오는 제도인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어느 일정한 기간 동안을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합니다.
특별히 이 기간에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기쁘게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금하면서 자기 몸을 구별해서 거룩하게 이 기간을 보냅니다.
첫째로,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취하고 있고 하나님과 성령에 충만하게 있겠다는 표현입니다.
두 번째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습니다. 머리를 깍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머리카락을 기른다는 것은 나실인의 기간 동안 하나님이 나의 대장이 되시고 머리 되신다는 표현입니다.
세 번째로, 절대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해서 거룩하게 드리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율법으로서가 아닌 자원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인 바로 ‘나실인의 서원’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를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이 정도로 자세한 ‘탄생기사’가 길고 자세히 묘사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 말씀대로 이 아이는 태어나게 되었고 그 부모는 그를 삼손이라 했습니다.
‘삼손’ 이라는 뜻은 ‘강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알듯이 장사였습니다. 힘이 엄청났습니다.
분명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 아이가 ‘나실인’이라는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강하게 태어난 삼손은 자라면서 이상한 짓들을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은 받는 것 같은데 에메합니다.
늘 여자관계가 복잡합니다.
먼저, ‘딤나’라는 지방에서 이방인인 블레셋 여자에게 장가를 듭니다.
여러분, 블레셋은 이방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싫어 하셨다는 것을 아시죠?
더군다나 제사장이나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은 이방인과 결혼을 철저히 금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그 여자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합니다.

이 결혼 할 때쯤에 우리가 잘 아는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아 찢어 죽이는 일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 사자의 몸에서 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꿀을 떠서 먹고 부모님에게도 갖다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체험이 너무 기이해서 딤나 지방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낼 때에,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데 그게 뭐게요?”라고 합니다.
이 수수께끼를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을 안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 되는 여자를 꼬셔서 이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하여간 삼손은 여자에게 약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도저히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없어서 그 아내될 사람에게 협박해서 알아내라고 하고,
그 아내는 자신 미모를 이용해서 그 비밀을 알아냅니다.
결국 삼손은 그 여자의 성화에 못 이겨서 결국 여자에게 모든 수수께끼의 답을 말해주고 맙니다.
그러므로 게임에 지게 됩니다.
그래서 벌칙으로 옷 삼십 벌을 마련하기 위해 사람들을 때려죽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삿16장에 보면 삼손은 기생에게 홀딱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와 거시기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그 다음의 여자가 우리가 잘 아는 들릴라라는 여자입니다. 영화삼손과 들릴라에 나오는 그 여자입니다.
삼손은 힘이 너무 쎄기 때문에 블레셋에 큰 위협과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삼손의 힘 때문에 그를 죽이지도 못하고 애태우고 있던 차에 들릴라를 꼬셔서
“도대체 삼손의 힘의 근원이 어디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여러 번 꼬시고 거짓말도 하고 했지만 결국 삼손은 그 여자에게 넘어갑니다.
한 두 번 이 여자가 나의 위협이 되면 빨리 도망가거나 떠나야 하는데 들릴라가 이쁘긴 이뻤나 봅니다.
삼손이 폭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삼손이 진실을, 자기의 힘의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사사기 16장17절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여기서 우리가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삼손이 자기 자신을 아직도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삼손은 이때까지도 자신을 ‘나실인’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 삼손의 착각입니다.
삼손은 아직도 자기가 나실인이래요. 왜냐하면 긴 머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가 ‘나실인;입니까?
저는 앞에서 나실인들이 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해 이야기 드렸습니다.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 당시 여러 번의 혼인잔치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블레셋의 문화에서 술 없는 잔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늘 술을 마셨던 사람입니다.

또한 나실인은 자기 몸을 구별해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가까이 하지도 말았어야 할 이방여인과 결혼하였고 기생과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나실인은 절대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죽은 사자 시체에서 꿀을 보고 손으로 만져서 먹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자의 시체에 손을 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을 퍼서 부모님께 갔다가 드렸습니다.

오직 그가 잘 지킨 것은 하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아직도 나실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안 지키고 오직 머리만 안 잘랐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큰 착각입니다.
영적인 교만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나누고 싶은 예방주사 같은 것은 “이러한 착가에 빠지지 말자!”입니다.
삼손은 분명히 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태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가졌는데 그의 삶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여자들에게 연연하고, 결국 그 여자 때문에 힘이 빼앗기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머리하나만 안 깎았기 때문에 나실인이라고 자만하고 있습니다.

물론 삼손은 결국 하나님께 쓰임은 받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그는 나귀턱뼈로 블레셋 사람들 천명을 죽였고, 나중에 힘이 빠지고 갖은 고문 끝에 마지막으로 자기의
목숨과 함께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큰 집을 무너뜨림으로 죽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는 죽기 전에 후회하면서 하나님께 사사기 16:28절에서 이렇게 사정하듯이 기도합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죽는 순간도 원수를 갚기 원하는 기도를 합니다.
아무리 삼손을 잘 봐 줄라고 해도 그의 삶은 나실인으로서의 삶으로 모범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사명을 갖고 태어나게 하셨지만 그의 일생에 선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근거는 삼손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역사적인 평가 때문입니다.
대개 그 당시 사사들은 죽은 후에 그들에 대한 평가가 있어집니다.
먼저, 삼손을 보겠습니다.
삿16:31 -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냈더라 .

다음은 다른 사사인 기드온을 보겠습니다.
삿8:28 -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옷니엘이라는 사사를 봅니다. 삿3:11 입니다.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에훗이라는 사사입니다. 삿3:30 입니다.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삼갈이라는 사사입니다. 삿3:31입니다.
에훗의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삼손과 다른 사사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삼손에게는 다른 사사들과는 달리 그로 인해서 그 땅이 평온했다든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든지 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그에게는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입니다.
삶의 열매가 죽은 후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사로 지 멋대로 살다가 자기 원한을 갚고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은 받았지만 자신의 삶의 열매는 성경을 기록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없는 것입니다.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실 때는 이스라엘의 백성과 나라를 위하여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나면서부터 나실인 이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맘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나실인으로서 살지도 않았고, 단지 머리만 안 깎았을 뿐이지, 하나님을 향한 책임이나
이스라엘 나라를 향한 책임을 나실인으로서 사사로서 다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에게 향한 냉엄한 인생평가는 "그가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가 다 입니다.

그가 그렇게 산 결정적인 원인은 그가 나실인으로서의 자신의 이해를 잘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머리만 안 깍으면 나실인이라고 착각하고 지 멋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평소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모태신앙이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나실인으로 착각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나실인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 해가면서 한, 두 가지 지켰다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한 두가지를 잘 한다고 훌륭한 신앙을 가졌다고 자족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난 담배 안 피쟎아? 그래도 난 술 안 먹쟎아? 그래도 난 높은뜻 숭의교회 가쟎아?
난 희년헌금 하쟎아? 로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덕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헌신과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 이 나라가 덕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사랑을 통해 나라가 태평해지고, 나라가 구원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단지 머리를 깎지 않아서..”라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잘 한 것 한 두 가지로 다른 모든 것을 상쇄시키려 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삼손처럼 그렇게 막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께서 ‘나실인’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고린도 후서 6장 16-18절과 7장 1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바로 예수님을 믿은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된 또한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바 된 나실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잘 하고 있는 것 한 두 가지로 만족하지 말고 나중에 내 인생을 하나님이 평가하실 때 사명에 합당하여 그 열매도 나라와 민족이 덕을 보는 사사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영적인 착각이요 영적인 자만감입니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을 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만하면 안 됩니다.
성도로서 우리는 우리의 본문을 여러 가지 면에서 지켜야 합니다.
이러 저러한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잘하니깐 저것은 안 해도 돼!라고 생각하신다면 삼손의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저가 성도로 60년 살았더라! 끝. 되면 안 됩니다.
저로 말미암아 최소한 누구는 구원을 받았더라.
저로 말미암아 누구는 평안을 누렸더라.
저로 말미암아 누구는 이러 저러한 덕을 보았더라. 하는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527전도 축제에 참가하고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문희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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