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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의 표징 (막 16: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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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부활절은 기념식이 아닙니다. 부활 신앙을 회복하는 기회로, 부활절만 딱 지키고 지나가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부활 신앙을 유지하고 부활의 주님과 동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매 주일이 부활주일이어야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토요일)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나 안식교도들은 안식일(Sabbath)을 고집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부터는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식일은 창조 기념일입니다. 반면 주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 기념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원(原) 창조! 그런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영원한 사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십자가 대속을 통해 죄를 사하시고 부활을 통해 새 생명,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재(再) 창조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재창조이고,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안식일 후 첫날 즉 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날을 성경에서는 주일(主日 The Lords Day, 계1:10)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 인간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그런 뜻에서 매 주일이 부활주일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부활 신앙을 점검해 보기를 소원합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내용을 잠시 복습해 보죠. 여러분, 부활 신앙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3가지입니다. 예수 부활의 역사성, 성도 부활의 미래성, 예수 임재의 현재성입니다. 세 가지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현실적으로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예수 임재의 현재성’입니다. 사실 이것을 항상 믿고 있으면, 그 안에 예수 부활의 역사성, 성도 부활의 미래성을 다 믿는 것입니다. 예수 임재의 현재성은 우리 신앙의 역동적인 힘입니다. 이 힘을 갖고 살아갈 때 우리 신앙생활에 주님의 놀라운 축복과 권능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1] 믿는 자 :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의 일을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수차례 나타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셨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처음에는 그들이 잘 믿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들의 모습이 한심스럽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합니다.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납니까? 금세 보고 나서도 헛것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책망하십니다. 14절.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여기서 우리는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인식하게 됩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부활하셨어도 사람이 믿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부활이 전혀 상관없고 의미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믿음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2천번의 부활절이 지나갔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부활절이 오지 않은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정말 믿으십니까?
만일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오래 동안 다녔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으면 아직도 성전의 뜰만 밟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세례는 믿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십자가 한편의 강도처럼 세례 받지 않고도 분명한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고 천국 갑니다. 물론 기회가 되면 당연히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어쨌든 믿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십자가도 상관없고 부활도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판 받고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자만이 예수님이 대신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심판 받으셨기에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심판을 면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뭐라고 말씀합니까? 요1:12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신분이 바뀝니다. 요5:24에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  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는 자는 이제는 소속이 달라집니다. 심판 받지 않고, 새 생명 가운데 삽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제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 죽을 일이 없습니다. 육신의 죽음은 지상에서 천국으로 이사 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살아계십니다. 물론 본문을 보면 어디로 가 계십니까? 19절.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나 그곳에 한정되어 계신 게 아닙니다. 그분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 지금 여기에도 계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성령에 관한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14:16~20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live)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서 제자들이 조금 후에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은 재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성령 강림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오셔서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에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신기합니까? 특히 로밍을 하면 멀리 외국에 가서도 통화가 가능합니다.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화상 통화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재주로 전파를 통해서 이런 신기한 일들이 가능한데,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을 통해 가까이 우리에게 오지 못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해 주시되, 아예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신다고 말씀합니다. 롬8:9,14 “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런 걸 가리켜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라고 부릅니다.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입주에서 거주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별명이 임마누엘(Immanuel)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God with us)는 뜻으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함께 해 주셨는데, 부활 승천 후에는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어느 불신 영어 교사가 부활절이 다가오자 골려먹을 속셈으로 크리스천 학생을 불러내서 칠판 앞에다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데도 없다”고 영작해보라고 지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빈정거리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좋고 총명한 그 학생은 본래대로 하면 “He is nowhere.”인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 썼습니다. “He is now here.”(그는 지금 여기 계시다.) 얼마나 통쾌합니까?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영원히! 특별히 지금 여기에 살아계십니다. 나와 함께 계십니다! 이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참 신자입니다.


[2] 믿는 자의 표징 : 살아계신 예수님이 함께 하는 증거

  이와 같이 예수님이 살아계신다, 나와 함께 해 주신다고 믿는 자에게는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17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 ” 표적(表迹)은 표징(表徵)이란 말과 동의어인데, 드러나는 증거 즉 ‘싸인’(Sign)이란 말과 같습니다.

  그런 말이 있죠. 사랑과 냄새를 숨기지 못한다! 정말 그렇습니다. 연애하는 사람은 뭔지 모르게 티가 납니다. 냄새를 안 풍기려 노력해도 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도 숨기지 못합니다. 참 믿음은 살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증거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5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의 5대 표적입니다.

  ① 영적 권세 : 17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 ” 빛이 임하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악한 영(사단, 귀신)을 쫒아내는 권세가 있습니다.

  저의 애송이 전도사 시절의 간증입니다. 아는 사람 중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인 때라 혼자서 가기는 뭣해서 친구 전도사와 둘이 찾아갔습니다. 한참 찬송하고 기도하며 실랑이를 벌이는데 그 사람이 휴~ 하며 한숨을 쉽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정수리로 뭐가 빠져 나갔다는 겁니다. 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라는 겁니다. 나중에 wr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랬습니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기를 애지중지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중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때 귀신이 할머니를 가장하고 들어왔던 겁니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닙니다. 타락한 천사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으로 가장했을 뿐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할머니인 줄 알고 귀신을 끼고 살았던 겁니다. 그러다 쫓겨나가게 된 것이죠. 예수님의 권세가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서 진 치고 있는 소위 ‘귀신들림’의 상태가 아니라, 귀신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 등을 통해서도 교묘하게 활동합니다. 우리에게 걱정, 근심, 두려움, 미움, ... 이런 부정정인 생각과 감정을 유발시키고 충동질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그런 것들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비단 개인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일어납니다. 미국 콜로라도 州 스프링즈는 20년 전만 해도 사단 숭배의 소굴이었고, 사이비종교와 뉴에이지운동에 빠진 사람들로 득실거렸습니다. 교회도 맥을 못 추었습니다. 오죽 하면 그 도시가 목사의 무덤이라는 별명까지 붙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도시에 테드 헤거드(Ted Haggard) 목사가 뉴 라이프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저항이 있었습니다. 칼을 들고 찌르려고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고, 밤마다 협박 전화에 시달리고, 사단 숭배자들이 개와 고양이 소포를 보내오는 등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더욱 기도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름을 보고 주민 몇 명씩을 맡아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 도시의 범죄율이 떨어지고 사단 숭배자들이 떠나가는 한편, 교회는 부흥하여 4천석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1만 명 출석 교인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려 80개나 넘는 기독교단체들의 중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과 늘 동행하면 이런 영적 권세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기도함을 사단의 권세,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② 새 방언 : 17절. “ ... 새 방언을 말하며”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새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방언은 두 가지입니다.

i) 외국어 방언입니다. 행2:1~13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 시에 성령 충만 받은 제자들이 방언을 합니다.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는데, 각 지역과 나라의 방언으로 전파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도 이상하니까 새 술에 취했다고 빈정거리는 자들도 생겼습니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창11:1~9)으로 언어가 혼잡하게 된 것을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하는 역사입니다. 오늘날도 선교지 같은 데서 이런 희한한 일이 가끔 벌어지는 보고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흔하게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ii) 은사로서의 방언(고전12:10)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이 통하는 영적 언어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으면 깊이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밤새 방언으로 기도해도 피곤한 줄 모르고 기쁨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은사를 체험하도록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방언의 은사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계신 예수님이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중요한 증거이므로 나의 신앙에 유익합니다.

  그 외에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언어생활이 변화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새 방언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밝은 언어, 긍정적 언어, 상명의 언어 등을 말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미안합니다. ... 예수 믿고 변화된 새 방언을 말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③ 안전 보장 : 18절.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 하며 ...” 주의할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목적으로 일부러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사고가 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혹시 그런 위기 상황이 되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실제의 예가 있었죠. 행28: 보면 바울이 멜리데 섬에 갔을 때 불을 쬐면서 나무 한 묶음을 불 위에 얹어놓는데, 그 속에 있던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짱하니까 원주민들이 깜짝 놀라 신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원주민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뜻하지 않게 그런 일을 당해도 주님이 보호하시고, 안전을 보장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사님이 현지인 청년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반감을 가진 모슬렘 불량자들이 몰래 우물에 독을 탔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나고 수련회를 다 마쳤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오히려 놀란 불량자들이 선교사님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이실직고하였습니다. 그 후 마을이 복음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주님이 함께 해 주시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 믿고 아무 염려하지 말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④ 치유 역사 : 18절. “ ...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 ” 이런 일은 과거에도 현재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사례들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도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 이름으로 안수하면서, 혹은 그냥이라도 기도하면 치유의 역사를 허락해주십니다. 목회자들 중에 그런 분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옛날 폐병이 있었죠. 그때는 약도 시원치 않아 각혈하며 죽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때 기도함으로 치유 받고 목회자 된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만 해도 열 분이 넘습니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 되었지만, 의료적인 치료를 받아도 결국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똑같은 약을 먹어도, 수술을 받아도 기도하면서 살아계신 주님을 의지하면 고쳐주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치유의 기적을 믿으시고 자신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이런 표적을 믿고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⑤ 복음 증거 : 15절. “ ...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20절.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는 가장 큰 증거는 전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는 겁니다. 연애할 때 정말 뜨겁게 사랑을 나누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자랑합니다. 마찬가지 나와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을 자랑하고 말하는 게 전도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앞에서 언급한 모든 표적들, 증거들이 함께 나타나서 복음이 진리인 것을 드러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늘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경험하시고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역동적인 신앙생활로 승리의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쁨을 나눠주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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