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시 흥(興)하고 싶습니까? (욥 22:21-23)

  • 잡초 잡초
  • 295
  • 0

첨부 1



욥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10남매의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 많은 재산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거지가 되었다. 무쇠같이 단단한 그의 몸에 병이 찾아와 온 몸은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겪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욥이 “망했다”고 수군거렸다. 사람이 무엇을 얻으려고 할 때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욥은 위로받을 길이 없었다. 욥이 이런 고통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셨다.

욥은 욥3:11에서 “어찌하여 내가 어머니의 태에서 죽어나지 아니했는가? 라고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탄식하였다.”
욥은 도무지 재기할 소망이 없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속된 말로 그는 “쫄딱 망”하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욥이 이런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처럼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고 두 번씩이나 자랑하시기까지 하셨던 욥의 인생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그러나 오늘 성경에는 다시 일어날 길이 있고, 다시 흥할 길이 있다고 말씀한다.

여러분들도 이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인가를 하다가 뜻대로 잘 되지 아니하여 실패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 줄로 안다. 사업을 하다가, 취업을 하려고 하다가, 시험에 합격을 하려고 준비하다가, 무슨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인생을 비관하시며, 탄식하시는 분들이 계시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성경에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씀한다.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하나님은 “그런 길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잠24:16=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 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      하여 엎드러지느니라.

그 길이 무엇인가?
오늘 성경 23절을 다 같이 읽도록 하자.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흥하리라”는 말씀은 “회복된다.” 는 뜻이다.

1.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 “돌아간다”는 말은 “방향을 바꾼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등지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인생의 모든 성공과 실패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요, 인생의 근본 뿌리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전12:13=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잘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처참하게 망하였다. 자기만 망한 것이 아니라 자식까지, 그 가문이 모두 철저하게 망하였다.

사울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였는가? 자기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인생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그 사람은 패망의 지름길로 가는 것이다. 그는 결국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되고, 시험에 들어 낭패와 실망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다시 흥할 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눅15:에 나오는 탕자의 결정적인 불행의 원인은 아버지의 품안을 떠난 데 있었다. 탕자가 아버지 곁을 떠나기 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온갖 행복한 삶을 다 누렸다. 배고픔도, 헐벗음도 없었다.

탕자가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아버지를 떠났지만, 그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였고, 행복하지 못하였으며, 더 큰 고통과, 괴로움이 엄습하여 왔다.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와 그 품안에 있을 때만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그의 품안에서만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어거스틴은「우리가 주님의 품안에 거하기 전에는 참된 평안이 없나이다.」고 말하였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남으로 모든 재물과 자유와 행복을 다 빼앗겼다.

인생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살게 될 때, 모든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염려와 고통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며, 하나님은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참된 자유와 행복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바른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간 것과 같이, 오늘날 인생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잃어버린 자요, 죽은 자인 것이다.

탕자는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방종이요, 죄악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 패망할 수밖에 없다. 역사 이래로 하나님을 멀리 떠난 개인이나, 국가나, 민족이 잘 된 일이 없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음 같이, 철로를 떠나 기차가 갈 수 없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코 잘 될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나고, 말씀을 떠남으로 오는 모든 불행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말씀 안에 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을 겪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다.

약4: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책을 등진 학생이 공부를 잘 할 수 없고, 태양의 빛을 외면한 초목이 잘 자랄 수 없음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만족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만족이란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

죠셉 홀은 이런 말을 하였다.「불신앙과 신앙은 모두 똑 같은 망원경을 통해서 바라보지만 서로 반대편에서 본다. 불신앙은 망원경을 반대쪽으로 본다. 그래서 가까운 것을 멀리보고 큰 것을 작게 보아 가장 큰 영적인 것들을 축소시킨다. 그러나 신앙은 바로보기 때문에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보게 하고, 작게 보이는 것도 크게 보이게 한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려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 결단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신앙은 곧 위대한 결단이다. 결단이란 하나의 용기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지난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다 받아주신다.


2.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는 것이다.

“불의”가 무엇인가? 요일5:17에 의하면 “모든 불의가 죄”라고 하였다. 불의는 옳지 못한 것, 의롭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옳지 못한 태도와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모든 것이 불의다.

욥11:14-15=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          라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          으리니

돌이 많은 밭에, 가시가 많은 밭에 아무리 씨를 뿌린다고 해도 곡식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 돌을 제거해야 하고 가시를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불의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불의한 자와 함께 계실 수가 없다.
회개란 불의를 멀리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와 불의를 멀리 버리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요, 다시 일어서는 비결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이다.
21=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어떤 성경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너는 하나님께 굴복하고 그와 화목 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축복해 주실 것이다”

“화목”이란 “친숙해져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팽이는 쓰러지지 않는다. 자전거도 계속 굴러가면 쓰러지지 않는다. 멈추면 쓰러지는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힘쓰지 아니하면 영적으로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로 세계 7대 철학자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탈레스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고 대답하였고, 반대로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 모른 채 살아간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그저 교회 와서 예배만 한 시간 드리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불의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일을 버리는 것이다. 죄를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와 화목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평안”이라고 했다. 탕자도 떠났던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잃어버린 평안을 회복하였다.

오늘 날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평안이다. 여기에 최대의 관심이 있다.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은 돈에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돈을 모으는 일에 주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이상이 실현될 때 평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그 이상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엔이 창설되었다.
하지만 국가와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세계평화와는 거리가 멀고,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어디에도 평화는 없다. 육신적인 평화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영혼의 평화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이다.
그 평화는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서만 얻을 수 있다.

평안해야 모든 것이 잘 된다. 그래야 복이 임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무엇을 한다면 그 일이 잘 될 수 없다.
하나님과 화목하면 갈등이 해소된다. 안정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사가 잘 되는 것이다. 복이 임하게 된다.


결론.

여러분!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여러분의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다시 흥해야 한다. 잃어버린 영광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는 모든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과 화목하시기 바란다.
반드시 여러분은 다시 일어 날 수 있다. 다시 흥하게 될 수 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