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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수 1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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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신문마다 이런 제호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리스트 조슈아 벨(39)의 워싱턴 굴욕”
  미국이 자랑하는 바이올린 연주자 벨의 연주를 들으려면 100달러로 약 10만 원 정도에 가까운 돈을 내야합니다. 그가 평소 받는 출연료는 1분에 1,000달러로 약 100만 원에 이릅니다. 그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명기 악기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가 워싱턴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깜짝 연주를 했는데 전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지하철역은 미연방청사로 출근하는 정책분석가, 프로젝트 매니저, 예산 심의관, 컨설턴트 등의 고학력 출신의 고급 공무원들이 이용하는 장소였습니다. 이 곳에서 바하의 곡과 슈베르트의 곡이 아름답게 연주되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쏟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벨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청바지와 긴소매 티셔츠를 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채 45분 동안 깜짝 공연을 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몰래카메라를 통해서 45분 동안 이 앞을 지나간 사람이 몇 명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미니음악회를 하는 동안 1,097명의 숫자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음악 소리 때문에 잠시 멈춰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이 거리연주로 그가 번 돈은 고작 32달러였습니다.

  이 기사는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기대가 없으면 아무리 유명한 연주자가 연주를 해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아마 거꾸로 자신이 어떤 연주자인지 알리고 연주를 했다면 바쁜 중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신뢰를 갖지 않고 연주를 들었을 때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듣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이 있으면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이 없으면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이 유명한 대가에게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다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귀 기울여주지 않는 인기는 지나가는 안개처럼 금방 사라지는 물거품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제일 어려웠습니까?”하고 물어보면, 대개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부활절 이후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에게 부활절이 주는 의미는 다시 시작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여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어떤 문제가 있든 상관없이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어제까지 잘나가던 사람, 자타가 성공했다고 인정하여 자부심에 취해있던 사람들도 다시 원점인 빈 상태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 시작하는 마음을 품고 출발하라는 것이 부활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어제까지 나를 괴롭혔던 실패의 기억들, 나를 묶어 놓았던 육체적인 질병들의 쇠사슬과 정신적인 억압에서부터 해방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나를 붙잡고 나의 영혼을 짓밟았던 죄책감에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다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리, 죽음과도 같은 허허벌판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주저앉아 낙망하며 우울해 하지 말고, 새롭게 생기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삶이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부활절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일어난 사건을 설명해 줍니다.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가나안을 점령했고 땅을 분할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들어가서 개척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85세의 갈렙이 등장합니다. 그는 모세가 신임했던 인물로 가나한 정탐꾼으로 파송했던 12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가나안에 갔던 10명의 정탐꾼은 말했습니다. “아낙자손은 굉장히 거대하고 그 성은 아주 단단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치기에는 불가능할 만큼 아주 견고하고 튼튼한 성입니다.”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은 놀라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명의 정탐꾼들은 하나같이 아낙자손들과 자신들을 비교해볼 때 자신들이 마치 메뚜기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백성들이 통곡하며 슬피 울고 이제 여기서 죽게 되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저들은 우리의 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던 갈렙은 광야에서 40년이 흘러 이제 85세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85세는 어쩌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나이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열심히 살 수 있을만한 이유가 별로 없는 나이입니다. 이제는 조용히 뒷전에서 살아야 하는 나이인데, 그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내가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는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갈렙도 자신을 30~40대의 나이와 비교해 보면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체력도 떨어지고 외모도 늙었습니다. 모든 것이 젊을 때만 못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마음과 생각은 청춘이었습니다. 본문은 갈렙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마음만은 결코 늙지 않았음을 가르쳐 줍니다.
 
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젊음을 육체만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애 늙은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늙어버린 사람, 마음을 포기한 사람, 마음이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열려지지 않은 사람은 늙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울만이 쓴 ‘청춘’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한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를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갈렙은 바로 이런 청춘의 마음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갈렙은 인생 자체가 하나님 안에서 행해지는 모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약속하시면 인생은 재미있고 즐거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도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한 어느 때에도 결코 늦은 인생은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인생의 최적의 시기입니다.

  우리의 나이가 몇 살이든지,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마음속에 이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일이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 있는가? 내가 이웃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청춘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신문광고를 보면서 제일 못마땅한 광고가 소주 광고입니다. 특히, 소주광고를 하면서 “처음처럼”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못 마땅 합니다. 알콜 도수가 높은 소주를 마시면서 “처음처럼”이라는 좋은 말을 떠올리면 대체 무엇이 떠오를까요? 머리 속에 처음에 술을 먹고 타락했던 것, 처음에 술을 먹고 만취했던 것이 떠올리지 않겠습니까? 본래 이 이름은 신영복 씨의 서화 에세이집인 “처음처럼”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서화 그림과 함께 짤막한 글들이 실려 있어 아주 재미있고 아름다운 책입니다. 이 책에 있는 ‘처음처럼’이라는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나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지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처음처럼” 산다는 것은 모험의 용기를 갖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 믿는 것은 매일을 처음처럼 사는 것입니다. 아침도 처음처럼, 점심도 처음처럼, 저녁에도 처음처럼 살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갈렙은 그의 삶에서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으나 언제나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든 때에도 모든 것을 걸고 도전했습니다.
 
용기란 무엇을 다 성취해서 얻은 다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계속 목표를 향해서 시도할 줄 아는 것입니다. 도대체 갈렙은 무엇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졌을까요? 첫째로 그는 나이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85살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할 일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에 걸려 여기에서 주저앉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에 대해서 극복할 수 있을까요? 혹 대학입시나 시험에 실패했다면 너무 빨리 낙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년 혹은 2년, 늦으면 3년 시험에서 떨어져 다시 준비한다고 인생의 실패자는 아닙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취직시험에 떨어져서 부모님을 뵈면 “너 언제 돈 벌어올래?”라는 꾸중을 들어도 낙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직 결혼도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나이가 서른 살이 넘었다고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기다림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조금 늦었어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1년, 2년만 늦으면 안달이 되어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고민합니다. 인생이란 우리의 시간과 상관없이 매일 매일 새롭게 다시 출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갈렙은 이성과 판단이라는 장벽도 넘어섰습니다. 자기가 가야할 곳은 산지였고, 거대한 백성이 있었습니다. 그 성읍은 견고하고 단단했습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결코 점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약속의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기에 담대히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지성(知性)이 소중하지만 지성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생각이 중요하지만 생각 자체에 자기의 삶을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성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의 최고의 은총과 축복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갈렙은 감정의 두려움이라는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시옵소서. 나의 지경을 넓혀주시옵소서” 이것은 엄청난 위험부담이 있는 것입니다. 미지의 세계에 뛰어 들어가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거대한 적과 대면한다는 것에 주눅들 수밖에 없고, 슬금슬금 도망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인생을 살겠다고 가슴속에 약정하셔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감정의 두려움이라는 벽도 넘어설 수가 있습니다. 아마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있다가 심한 상처와 좌절감을 받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 중에 자기의 후계자로 갈렙을 제치고 여호수아를 택했습니다.

  여러분이 갈렙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아마도 마음속에 슬픔과 절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패배자라는 아픔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았을 때 그는 새로운 역사를 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인생이 모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폴 트루니에가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책을 쓰면서 멋진 말을 합니다.
 
“인생이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다.”
 
  그는 하나님이 모험가라고 규정합니다. 우리 같은 죄인, 우리 같은 변덕쟁이와 함께 역사를 이룩하시려는 하나님이 모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모험하시면서 인간이 실패할 때 하나님도 실패합니다. 폴 트루니에는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인생은 모험이며 모든 모험에는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인생의 길은 언제나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이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라면 그 고통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겪는 실패는 사실상 실패가 아니다. 십자가가 최고의 실패인 동시에 최고의 승리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자신의 나이와 환경을 탓하거나 가진 것이 없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지금 다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모험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되는 용서의 삶의 모험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혐오, 자기연민, 낙담과 절망에서부터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서 인생의 모험을 다시금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의 나이가 몇이든, 삶의 환경이 무엇이든, 혹 실패했든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삼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주신 것이 남아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러주셔서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다시 시작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결코 주눅 들어 넘어져 주저앉지 말고, 주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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