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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게 하소서 (엡 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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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하소서 (엡 1:15~19)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Living, Loving and Learning)" 의 작가는 '레오 버스카글리아' (Leo F. Buscaglia)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녀온 습관이 있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오늘은 무얼 배웠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런 습관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전형적인 이태리 사람인 아버지는 '세상이 곧 학교' 라는 것과 '아침에 일어나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잠드는 건 죄악' 이라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식구가 모이는 저녁 식탁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 네가 배운 것이 무엇이지?" 그러면 아이들은 한 가지씩 대답해야 했습니다. 만약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할 때는 한 가지라도 알아오기 전까지 식사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버스카글리아를 비롯한 형제들, 심지어 어머니까지 그 날 배운 것을 말해야 했습니다.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 날 하루 겪었던 갖가지 경험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경험들에 대해 칭찬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꾸짖을 때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음속엔 올바른 가치관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또 아버지는 아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하찮게 여기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날 즈음이면 버스카글리아 가족은 각자가 말한 지식들이 모여 새로운 사실과 경험들을 배우게 됩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아버지가 늘 들려주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인간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알게 하시고' 는 원어로 '에피그노시스' 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인 '그노시스' 와는 달리 경험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의 교인들이 하나님을 모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관념적으로, 혹은 생각으로 아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기에 구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함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잡혀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가던 바울은 유라굴로 라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모든 이들이 소망을 잃고 자포자기했지만 바울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는 엄청난 광풍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동행하시는 하나님, 나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들 때 내 곁에 계시며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합니까?

첫째로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소서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에 '미국을 움직이는 20인' 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거기에 '죠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 가 나옵니다. 에릭슨은 19세 때 다이빙 사고로 목을 제외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절망하며 부르짖다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십니까?" 라며 하나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그래도 살게 하시는 뜻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있다면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입을 움직일 수 있기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림이 잘 그려지게 되자, 이 소식을 알고 볼펜 회사에서 제안을 합니다.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광고에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이때 그녀는 제안을 허락하면서 조건을 제시합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아래에 'PTL' 이란 싸인을 넣는 것이었습니다. 'PTL' 은 "Praise the Lord- 주님을 찬양하라" 의 머릿글자입니다. 그녀는 무엇이든지 할 수만 있다면 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불구의 몸이지만 소망 가운데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찬양하였더니, 입술뿐만 아니라 수족도 움직이게 해 주셨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전도자가 되어 장애인들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도록 기도합니다. 왜 나를 부르셨고, 나를 통해서 무엇을 하시기 원하는지 알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됩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가지게 될 때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물건마다 만든 목적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의 소망은 비전입니다. 비전을 가진 개인, 비전을 가진 가정, 비전을 가진 교회는 가지고 있는 비젼만큼 성장하게 하십니다. 흔들리는 이유는 부르심의 소망을 붙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르신 주님의 소망이 무엇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소망이요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업의 풍성을 알게 하소서

미국의 재벌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백만평 대지에 12개의 종합대학과, 4,928개의 교회를 세워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록펠러가 봉헌 예배에 참석했을 때 기자가 물었습니다. "록펠러씨, 당신이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여섯 살이 될 때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너를 데리고 교회에 다녔다만 이제부터는 혼자 교회에 다니도록 해라. 그리고 지금부터 일 주일에 20센트씩 용돈을 줄 테니 알아서 쓰도록 해라. 이 돈은 네가 하루에 다 쓸 수도 있고, 일주일 동안 나누어 쓸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기뻐 돈을 주머니에 넣으려 하자 어머니가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네가 받은 20센트 가운데 십분의 일은 누구 것이지?' '하나님 꺼예요' '그럼 교회에 가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거라'. 나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십일조 드릴 기회를 한번도 놓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공의 비결입니다. 나는 물질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가난한 농부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는 신앙적 유산을 물려주셨습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하늘의 영광보다 세상의 영화를 더 부러워하게 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여기에서 기업은 상속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로마서 8장 16절과 17절에서 말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여기서 후사란 상속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영광스럽게도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기업을 상속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풍성한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세상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세상 것을 진토와 같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영광의 기업이 자신의 것임을 아는 성도는 비굴하게 살지 않습니다. 영광스러운 미래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의 풍성함이 있음을 알고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능력의 크심을 알게 하소서

독일의 신학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카톨릭에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할 때, 오른팔처럼 함께 일하던 '프레드릭 니코니우스'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병이 들어 도저히 소생할 가망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느낀 니코니우스는 루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의 편지를 받은 루터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병석에 누운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친구여, 나는 자네가 더 살 것을 하나님 이름으로 명령하네. 교회를 개혁하는데 자네가 필요하니 주님은 자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도록 하지 않을 걸세. 자네가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나의 뜻이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네." 임종을 앞둔 니코니우스는 루터의 편지 내용을 전해 듣고 다시 소생하게 됩니다. 루터의 확신에 찬 기도와 믿음으로부터 죽음조차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는 6년 동안 루터와 함께 일을 하다가 주님 품으로 갔습니다. 루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종교개혁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측량할 수 없이 큰 능력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예수의 부활을 통해 확실히 경험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을 때 자신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죽음을 이기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어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신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면 죽음이 닥쳐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오히려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신앙생활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믿음의 신비는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는 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자신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삶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합니까? 부디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부르심의 소망을 가진 자가 되어 풍성한 기업을 누리며 사는 능력 있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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