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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비다 굼 (행 9:36-43, 요 1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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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복음성가에 “달리다 굼”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 지치고 곤하여 내 영혼 깊이 잠들었었네 / 내 영혼 어둠속에 방황할 때 / 어디선가 들려 오는 주님의 음성 /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 일어나 걸어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이 노래에 나오는 “달리다굼”이라는 말은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회당”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유대나라는 물론 소아시아 각 지방에 흩어진 유대인 즉 디아스포라들이 안식일 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당과도 같습니다. 회당장은 그 회당의 책임자입니다. 당시 정서로 봐서 회당장이 비록 자기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고 해도 그 일로 예수님을 찾아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야이로는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을 들어보면 너무도 놀랍습니다. “내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두 말씀도 않으시고 그를 따라가십니다. 가는 길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만나 고쳐주느라고 상당히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는데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이미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선생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회당장으로서는 마지막 기대가 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고는 주변 사람들의 조롱에도 개의치 않으시고 소녀의 시신이 있는 방에 들어가셔서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외치셨습니다. “달리다 굼!” 즉 “소녀야 일어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12세 소녀가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려내신 일이 3번 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믿기만 하라고 하셨던 말씀대로 이 놀라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한 회당장의 믿음이 주님께 인정받아서 이루어진 기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아주 비슷한 일이 초대교회에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고 하는 여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욥바 지방의 초대 교회에서 선행과 구제하는 일로 교회를 열심히 섬기던 여성도였습니다. 그런데 병으로 고생하다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거의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줄 알고 있었고, 그 일이 자기들이 죽기 전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비다의 죽음은 단지 한 훌륭한 성도가 죽었다는 슬픔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재림 신앙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에 유명한 사도 베드로가 개입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시신이 있는 현장에 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신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옛날에 주님께서 야이로의 집에서 그의 딸을 살릴 때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지금도 살아서 계시기 때문에 그때와 똑같은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용하던 아람말로는 이것이 “다비다 굼”입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 굼!”이라고 외쳤던 것과 아주 비슷한 말씀입니다. “달리다-다비다” .

  다비다의 헬라식 이름은 “도르가”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도르가 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비다 굼!”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외친 것은 지금 다비다에게 일어나는 이 놀라운 일이 전혀 자기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달리다 굼!”이라고 하시면서 소녀를 살려주신 바로 그 주님의 능력인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 가운데서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달리다 굼” 복음성가 가사의 내용처럼 오늘 개인이나 교회나 할 것 없이 캄캄한 인생길, 죄악의 길에서 우리의 영혼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면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달리다 굼!” 또는 “다비다 굼!”이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죽음의 세력을 부활로 이기신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죽음도 이기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가난하고 불행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남은 가족으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포도주 통을 수리하는 장애인 삼촌뿐이었습니다. 거기다 소년도 역시 영양실조로 폐결핵을 얻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매우 성실하였으며 또한 열정도 있었습니다.

  소년의 초등학교 담임인 루이 제르맹은 이 소년에게 천재적인 문학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소년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 소년은 가난과 질병 등 자신의 불행을 문학을 향한 열정으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자신이 겪은 삶의 아픈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많은 명작을 남겼고 44세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프랑스 최고의 작가인 알베르 카뮈입니다.

  오늘 시23:을 보십시오. 이 시편은 시편중의 시편이라 할 만큼 유명한 시편이요, 어린이들도 노래를 통하여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23:은 다윗의 고백적인 시로서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4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바로 지옥의 길, 멸망의 길, 죽음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다윗이 이런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양을 칠 때는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나중에 사울을 위하여 섬길 때는 왕으로부터, 자신이 왕이 되고 나서도 사방으로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런 급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윗이 생각하고 확신한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시라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삶의 체험에서 나온 확신입니다. 자신이 양을 먹일 때 배가 고프면 푸른 초장으로, 목이 마르면 잔잔한 물가로 인도했습니다. 때때로 사나운 짐승들이 달려들면 그는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싸워서 물리치고 양떼들을 지켰습니다. 병든 양은 치료해 주었습니다. 방향감각이 둔한 양떼들이 길을 잃었을 때는 찾을 때 까지 온 산천을 찾아 헤맸습니다. 해가지면 양떼들을 우리에 들이고 양떼의 안전을 위해서 밤새 보초를 섰습니다. 양은 목자가 있는 한 염려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이신 이상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나 겪고 있는 여건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시편 23:1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 “부족함이 없다”는 이 말씀 속에는 단 한 가지도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다윗에게만 목자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듯 다윗의 하나님이 또한 나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내 필요를 다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내 아픔을 다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나를 위협하는 원수도 다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아니 내 작은 신음소리도 다 들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주를 위하여 섬기는 일에 무슨 주저함이 있겠습니까?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알베르 카뮈에게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어서 그의 격려 때문에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최고의 문학가가 되었다면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심을 알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잔이 넘치는 인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네덜란드에 가보니까 지붕마다 풍향계가 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농부가 자기 집 지붕에 있는 풍향계에 글씨를 쓴 천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때마다 그 글씨가 펄럭였습니다. 그가 거기 써넣은 글씨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문구였습니다.

  한 여행객이 농장을 방문했다가 그 문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풍향계와 함께 그 글씨를 써넣은 천이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방문객은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그러니까 당신의 하나님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저 천같이 변덕이 심하단 말입니까?”라고 다소 빈정대는 어투로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농부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아니요,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3.  오늘 요한복음 10장의 말씀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상당한 의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하나이까? 그리스도이어든 밝히 말씀하옵소서”라고 다그쳤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주님을 통하여 정말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고, 엄청난 은총을 받았습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런 은총도 능력의 역사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도 저 의혹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주님의 양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나룰 따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능력과 은총을 보여주시며, 나아가서 그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달리다 굼”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사람을 통해서도 “다비다 굼”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때 주님께로부터 말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을 받게 되고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차 대전 때 소위 “가시 철망병”이란 희귀한 병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군인들 가운데 가시 철망으로 둘러싸인 막사에 갇혀 살면서 그것이 자신들의 모든 희망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면서  철망에 갇혀 사는 것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앓는 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막사 안에 살면서도 이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시 철망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철망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속히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면서 그때 고향에 돌아가서 할 일들을 마음속으로 계획하면서 행복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같은 풍향계에 달린 글귀를 보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변덕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환경과 여건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의 양이 되어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목자이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곳이 푸른 초장이 되게 해 주시고 쉴만한 물가가 되게 해주십니다. 마침내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잔치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다비다의 죽음으로 온통 신앙에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사람들에게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다비다 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오늘도 여러분의 목자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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