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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에게 주신 세 가지 사명 (신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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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지니라 (신6:1-9)

사명은 성도가 반듯이 행할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 주신 사명을 힘을 다하여 감당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칭찬을 받았지만 반면에 힘을 다하지 아니하고 땅에 묻어둔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에게 책망을 들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사명을 통하여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축복을 받을 사명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책임을 감당하는 사명만 아니라 좋은 것을 받을 사명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성도에게 주신 삶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며 책임과 축복을 깨닫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참 사명을 깨닫는 이 아침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1. 명령을 행하여 번성의 복을 받을 사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신6:3)

두 가지의 사명이 본문 속에 감추어 있습니다.
1) 말씀을 듣고 행하라 -사명을 행할 사명입니다.
2) 네가 복을 얻어 번성하리라 -복 받을 사명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행하는 자에게 그의 가정과 자녀와 생업이 번성하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명과 그로 인하여 주시는 복을 받을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된 삶을 살지못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지못하고 그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비웃음을 받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삶을 잘 사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행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축복을 여러분의 삶에 넘치도록 받으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한 가정에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자동차를 무척 같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동차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네가 대학에 들어가면 차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드디어 목적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이제 자동차를 사주시겠지 하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십니다. 드디어 대학에 입학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학교였기 때문에 기숙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학교로 떠나는 날 아버지는 성경책을 선물로 주시면서 당부했습니다. “아들아 그곳에 가서도 열심히 성경을 읽어라 그리고 특별히 로마서 5장 3절4절의 말씀을 꼭 읽어라” 아들은 너무도 섭섭했습니다. 자동차를 사주지 않고 성경책만 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은 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가 주시는 성경책은 속상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방학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갈 때가 되어서 용기를 내어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대학에 들어가면 자동차를 사주신다고 했는데 언제 사주실 겁니까?”그러자 아버지는 동문 서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 내가 준 성경책을 읽지 않았구나?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어라!” 아들은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너무도 속이 상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가 성경을 읽으라는 말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한 학기동안 팽개쳐 두었던 성경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로마서를 읽으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그 성경구절을 폈습니다. 놀랍게도 그 성경 갈피에 아버지가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수표를 끼워두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아들의 잘못된 삶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바라 보아야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라는 명령을 순종했다면 학교에 가자마자 소원하는 자동차를 살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그 말씀을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주셨는데도 누리지 못하는 삶이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행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가정과 자녀와 생업의 번성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번성의 복을 받는 것도 사명입니다. 못 받으면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아버지는 이미 주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원망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복된 성도에게 번성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못받는것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길이며 사명을 잃어버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고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번성을 복을 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사명을 완수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두 번째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해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놀라운 일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너무도 간단한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님의 아들 딸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집의 아들이 학교에서 착한 일을 해서 선행 상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 상장과 상품을 가지고 제일 먼저 이웃집 아저씨를 찾아가서 그 기쁨을 이야기하고 자랑했다고 합시다. 이것은 아들이 행할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먼저 아버지께 자랑하고 그 기쁨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좋은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찾아가 아뢰고 도움을 받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 책상 위에 놔두는 큰 유리를 깨트렸습니다. 이놈이 혼자 고민을 하다가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사실대로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책상에 올라가서 얼마나 난리를 쳤으면 얹어놓은 유리가 깨졌겠습니까? 야단맞을 일이지만 저는 이유를 묻지 않고 유리를 사다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 것이 사고를 치고 얼마나 고민했을까 생각하니 측은했고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고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제게 알려졌다면 섭섭하고 아들에게 화를 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에게 대한 아들의 바른 자세이고 이런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대하면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하나님 사랑의 모습입니다.

2)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의 가장 핵심적인 자세가 주일성수입니다.
시골의 어떤 부모님에게 서울 가서 사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큰 사업을 해서 생활은 여유로운데 매우 바쁩니다. 명절이 되어서 회사의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고향에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용돈과 선물을 마련해서 부쳐 드리고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작은 회사의 사원인데 가난합니다. 그래도 어렵게 휴가를 내어서 고향에 찾아왔지만 첫째처럼 넉넉한 선물이나 용돈도 못 드립니다. 고향의 부모님께 이 두 아들 중 누가 더 효도하고 사랑하는 자식이겠습니까? 당연히 둘째 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똑 같을 것입니다. 부모를 찾아뵙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듯이 우리가 주일에 교회를 찾아와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제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세인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에 좋은 일이 있었을 때에 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한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생활이 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될 것이고 그런 한나에게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와 가득 차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에 세상 일로 나아갑니다. 놀러가고 운동하러가고 결혼식에 가고 친구나 애인 만나러가면서 첫날 첫 시간에 하나님을 찾아오는 삶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좀 시간 날 때에나 교회에 나아오고 감사헌금도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사명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에 살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가 죽을 때 그는 눈이 흐리지도 아니하고 기력이 쇠약해서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34:7)
사람이 죽을 때는 기력이 쇠하거나 병들어서 기능을 상실할 때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기력이 쇠한 것도 아니고 병든 것도 아닌데 모세가 120세에 죽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이 땅에서 행할 사명이 다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이 땅에 살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명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명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일마다 새벽마다 하나님의 전에 오셔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아뢰고 감사하며 영광 돌려서 하나님께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고 가르쳐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 지니라(신6:6-9)

우리가 이 땅에 살아야할 세 번째 사명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것이 귀중한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데 집에서, 길을 갈 때, 누웠을 때, 일어날 때에,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이마에 붙이고 손목에 매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성도들 가정을 심방할 때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가보며 항상 웃습니다. 아기가 아직 백일도 안됐는데 벽에 영어 단어가 적힌 그림과 덧셈 뺄셈을 적은 그림들을 붙여놓은 것을 봅니다. 돌도 안됐는데 동화책 위인들의 전기책 각종 그림책이 책꽃이에 즐비하게 꽃혀있는 것을 봅니다. 너무도 재미있어서 웃습니다. 태교라고 해서 뱃속에서부터 교육을 시키는 요즘 추세를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붙여 놓은 집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우리가 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은 우리들에게 아이가 엄마 얼굴을 보면 성경말씀이 보이게, 손목에 예쁜 시계나 멋있는 팔찌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대학에 유학간 목사님 자녀들이 어려서 따라갔는데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그들에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3년 동안 창세기를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 창세기를 외우고 3년이면 창세기를 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너도 창세기를 외우느냐고 물으니까 그 즉시 히브리어로 창세기 1장 1절부터 줄줄 암송하더랍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다른 공부는 중요하지 않고 성경말씀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967년에 6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한 13개 국가가 석유를 팔아서 축척한 돈으로 미국과 소련에서 최신식무기를 사서 육해공군이 육지바다 하늘로 쳐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도에 독립한지 20년밖에 안되어서 나라구실을 못할 때 100배도 넘는 군대와 무기로 13개국이 쳐들어갔으니 간단하게 끝날 전쟁이었고 이스라엘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에는 한쪽 눈이 애꾸인 모세 다얀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 장군이 전쟁 초기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2500년 기다렸던 이 나라의 독립을 얻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이 전쟁은 빠른 시일 내에 끝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최고의 최신식 무기를 전 장병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전쟁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CIA, FBI, 소련의 KGB 등 전 세계의 정보망은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최신식 무기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핵무기인가? 전 장병이 다 가지고 있다면 핵무기는 아닐 것이고 ....”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전쟁은 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의 이름이 6일 전쟁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모든 유대인 장병이 가진 최신식 무기가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드디어 그 무기가 공개된 것입니다. 모든 장병들은 자신의 왼쪽 주머니에서 책을 한 권씩 꺼내어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켓용 성경이었습니다. 세계는 다시 한번 놀랬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 속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전 세계 사람이 힘을 모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승리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이처럼 크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하고 보여주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정에 다른 것은 다 준비되어져 있습니다. 음식을 조리하기 위하여 주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온 식구가 함께 식사하도록 식탁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함께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수 있도록 응접실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잠을 잘 수 있도록 침실과 침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의 장소나 성경을 읽는 자리는 마련되지 않는 가정이 많습니다. 부모님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부모, 설거지하는 엄마, 일하는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지만 성경을 읽는 부모,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존귀한 사명임을 깨닫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중요한 사명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명을 잃어버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와 목적도 상실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을 보이고 나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지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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