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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습관과 취미가 변해야 합니다 (잠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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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힘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젊은 화랑일 때의 일입니다. 화랑 김유신은 '천관녀'라는 기생에게 정을 붙여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자가 어찌 한낱 기녀에게 정신이 팔렸느냐?"며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다시는 천관녀의 집에 가지 않기로 맹세를 하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말이 늘 하던 버릇대로 그녀 집 앞에 멈추었습니다. 이에 정신이 든 김유신은 사정없이 말의 목을 베었고 천관녀는 그의 무정함을 원망하여 <원사>(怨詞)라는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천관녀의 입장에서 김유신이 너무도 무정해 보였을 것입니다. 기생 만나는 것과 삼국통일이 무슨 상관이냐고 따졌을지 모릅니다. 말은 더 억울하지요. 매일 기생집에 찾아간 주인이 잘못이지 늘 하던 대로 기생집 앞에 선 말이 무슨 죄가 있어 목을 벱니까? 하지만 화랑 김유신이 벤 것은 말의 목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습관이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습관에 젖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삶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만큼 습관의 힘은 무섭습니다. 김유신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자신이 아끼던 애마의 목을 벰으로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단호하게 결심한 것입니다.

오래 전 어떤 집사님의 회사에 찾아갔는데 책상머리에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상자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안에는 담배가 한 개비 들어있는데 반으로 뚝 잘라져 있습니다. 궁금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집사님 대답이 걸작입니다. "제가 예수 믿고도 오랫동안 담배를 못 끊었는데 이번에 담배 확실히 끊으려고 이렇게 진짜 담배를 끊어서 잘 보이는 데 전시해 놓았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그 끊어진 담배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집사님이 끊은 것은 담배가 아니라 잘못된 습관입니다. 이렇게 내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은 잘못된 습관을 뿌리 뽑으려면 상당한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말의 목을 베던지 담배를 끊어버리던지 단호하게 끊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 습관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습관 1

먼저 '습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습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나쁜 습관, 좋은 습관'이 아니라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습관'과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습관'으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습관에 대해서는 잠언이 많은 교훈을 주는데 특히 잠언은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생활습관'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인 잠언 6:6을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나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고 말씀합니다. 게으른 사람에 대한 경계입니다. 지나친 잠도 게으른 생활의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면 가난이 몰려온다고 경고합니다. 10:26에는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고 했는데 게으른 사람은 상전이 볼 때 식초나 눈의 연기처럼 늘 손해와 괴로움을 주는 성가신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제 머리나 재능만 믿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보다 조금 부족해도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12:24에 "부지런한 사람은 성공해서 남을 다스리게 되지만 게으른 자는 항상 남의 부림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22:13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게으른 사람은 일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핑계가 많다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면 사자가 있기 때문에 찢겨죽지 않으려고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해보려는 마음과 진취적인 모습이 아니라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트집을 잡아서 안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게으름이나 소극적 부정적인 삶의 자세가 얼마나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아무리 잘 나고 똑똑한 종이라도, 아무리 재능이 많은 종이라도 게으르면 주인에게 방해거리가 되고 늘 손해를 준다는 말씀처럼 우리도 내 재능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하나님께 손해 끼치고 방해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늘 영적으로 부지런해야 합니다. 사실 주일에 교회 나오는 것만 해도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주일 내내 회사에서 일하느라 피곤한데 주일 아침에 교회 나오기 얼마나 피곤하고 힘듭니까? 그런데 주일저녁이니 수요일이니 구역예배니 교회 모임이 왜 그리도 많은지, 게다가 남들 다 잠든 시간에 새벽기도나 월삭기도회 나온다는 것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가뜩이나 바쁜 시간 쪼개 성경 보고 기도하고 봉사까지 하고 전도까지 한다는 것 이건 정말 초인적인 부지런함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시간이 많아서? 할 일이 없어서? 아닙니다. 다 똑같이 바쁘고 힘든데 시간과 관심의 최우선순위를 영적인 데 두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방학숙제로 생활계획표 짜는 것 보셨지요? 저희 아이들 하는 것을 보니 먼저 컴퍼스로 동그란 원을 그린 후 하루 24시간을 눈금으로 나눕니다. 그런 후 아침 몇 시에 일어나 몇 시에 잠자리에 들고, 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밥 먹고 공부하고, 몇 시부터 TV 본다고 쓰고 마지막으로 잘 보이게 책상머리에 붙여둡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는 것 먹는 것과 노는 것이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24시간 중 제일 먼저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떼어놓고 노는 시간, TV보는 시간을 다 뗀 후 남는 시간에 공부도 하고 독서도 한답니다. 무엇이 우선순위입니까? 무엇이 중심이 되는 삶입니까? 두 번째 문제는 실컷 계획은 세워놓고 그렇게 못 산다는 것이지요. 방학 시작하고 하루 이틀은 실천하지만 작심삼일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어른들도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면 시간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무엇이 먼저냐, 우선순위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노는 시간, 누구 만나는 시간, TV 연속극 보는 시간 먼저 다 떼어놓은 후 남는 시간으로 교회 가고, 성경 보고, 기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습관으로는 절대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내 생활과 시간을 철저하게 신앙중심으로, 영적생활을 중심으로 짜야 합니다. 아침에 깨는 시간도 밤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신앙적인 필요에 의해 조정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최우선이요 기도하고 말씀 보려면 얼마든지 자는 시간을 줄일 수도,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고 밤에 조금 늦게 잘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결심이, 우리의 생활계획이 작심삼일이 안 되도록 날마다 굳게 결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또 신앙 자세가 소극적인 사람은 늘 믿음이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기왕 믿으면 좀 화끈하게 확실히 믿고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교회 나온 지 꽤 오래 됐는데도 늘 신앙이 제자리걸음인 사람들을 보면 대개 소극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입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어도 신앙이 쑥쑥 크는 분들의 공통점은 적극적인 자세로 믿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신앙생활 하는 분들입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고 남들에게도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합니다. 밖에 나가면 사자가 있다는 사람들처럼 이 핑계 대고 저 트집 잡으며 나도 안 하고 남 하는 것도 방해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습관 2

그러고 보면 잠언은 술 문제에 대해서도 자주 지적합니다. 20:1에는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23:21에는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술은 사람을 거만하게 하고 떠들게 하고 지혜와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술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음주(물론 흡연도 포함됩니다. 성경시대에는 담배라는 것이 없어서 언급을 안 할 뿐이지만 음주나 흡연이나 같은 습관이라고 보면 됩니다.)를 어떻게 보느냐? 기독교인 중에 술 자체를 죄로 보거나 심지어 술 마시고 담배 피면 구원 못 받는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술 마시는 것과 구원을 연관시키지 않습니다. 성경은 술 자체가 죄라기보다 그 습관성과 중독성, 그 영향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수없이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계하면서 술 취하면 절제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의 생각과 이성이 마비되고, 생활의 질서가 파괴된다고 강하게 경고한 것입니다. 여러분, 술 마시거나 담배 핀다고 신앙생활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 중에도 술 담배 하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구원 못 받는다고 하거나, 불신자에게 술 담배 하면 교회 못 나온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저는 "목사님, 저 술 담배 못 끊어서 교회 못 갑니다." 하는 분 만나면 "끊지 말고 그냥 오세요."라고 말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면 자연히 끊을 일이지, 술 담배 한다고 교회 못 온다고 하면 오히려 그 사람의 영혼구원의 기회를 빼앗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분은 교회 나오는 그 순간부터 이런 것들을 딱 끊는 분들이 있는데 참 잘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심이 있으면 신앙은 반드시 아주 빨리 자랍니다.

여러분,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술 담배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 담배는 분명 우리의 영적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디 술 담배뿐이겠습니까? 도박이나 투기, 낭비하고 사치하는 생활 모두가 우리의 영적생활을 방해합니다. 이런 것들을 절제할 수 있어야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는 믿어도 영적으로 성장할 마음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것들에 대한 미련을 안 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 한 번 제대로 믿어보겠다, 믿음이 자라고 싶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이런 방해요소들을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 술 담배를 끊는다면 쉽지가 않습니다만 내 신앙을 위해 끊는다면 좀 더 단호하게 결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술 담배 뿐 아니라 방금 말씀드린 대로 도박이나 경마 같은 사행성 습관들, 사치와 낭비 같이 절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들, 지나친 식생활, 그리고 지난 주 설교 내용처럼 우리의 언어습관 등 영적인 성장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너무 힘들고 아깝지만 내 영적성장을 위해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끊고 버릴 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할 때 절대 느낄 수 없는 참다운 만족과 기쁨을, 행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습관

그렇다면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습관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워낙 많아서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필수적인 영적습관이 몇 가지 있습니다. 소위 '거룩한 습관'인데 여기에는 성경읽기, 기도하기, 전도하기, 근면하고 성실한 삶 등이 있습니다.

우선 성경읽기는 필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손들에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6~9)고 가르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늘 곁에 두고 읽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삶이 형통하는 비결이 있다고 믿은 것이지요.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시 55:17, 단 6:10 등). 이슬람교도들은 어디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반드시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합니다. 기도시간이 되면 그 자리에 무릎 꿇고 머리를 땅에 조아려 기도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이 쓰는 모자는 챙이 없습니다. 머리를 땅에 조아려 기도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자 하나만 봐도 이미 생활자체가, 습관자체가 기도중심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성경 보고 몇 번이나 기도하십니까? 식사기도 빼고 말입니다. 가끔 생각날 때 한 번씩 하십니까? 아니면 일정한 시간이나 횟수를 정해 놓고 하십니까? 이것이 다 습관이고 생활입니다. 이와 같이 전도도, 봉사도, 그리고 가정이나 직장이나 내가 속한 곳에서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사는 것도 어찌 보면 모두 습관입니다. 내 모든 습관들이 철저하게 영적으로 자리 잡히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게 되면 우리 삶 전체가 놀랍게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취미가 변해야 합니다

'취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취미도 일종의 습관입니다. 내가 즐기기 위해 하는 습관이 취미인데 이 취미도 바로 서지 못하면 영적으로 큰 방해거리가 되고 맙니다. 물론 취미가 전혀 없어도 문제입니다. 저는 취미가 참 다양하고 많은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과 친교하는 데도 취미생활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도 취미그룹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취미의 종류는 상관없습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물론 죄가 되는 취미만 빼고 말입니다. 성도들이 같이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친교도 하고 전도도 하면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삼득의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건전한 취미를 넘어서 취미가 나의 생활이 되고, 나를 사로잡고, 나를 지배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취미의 종류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취미든 도가 넘어섰다고 생각되면, 특히 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버리십시오. 그 취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취미에는 '집착'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 번 시작했다 하면 그래서 그 취미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반드시 집착이 생깁니다. 집착이 있어야 취미생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법이니 집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집착이 지나쳐서 내 일상생활을 방해한다면 문제입니다. 게다가 집착이 더 커져서 하나님께 대한 집착과 열정까지 방해하기 시작하면 그 집착은 이미 죄의 수준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집착을 다스릴 줄 알아야 좋은 취미가 됩니다. 모든 취미나 운동이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잘 할 수 있답니다. 맹목적으로 승부에 집착하거나 잘 하려는 마음만 앞서면 실패한답니다. 특히 신앙적으로 볼 때도 이 집착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골프를 칠 줄 모르지만 주변에 골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늘 골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몸에도 참 좋은 운동이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 좋은 스포츠라고요. 그런데 모든 취미나 스포츠가 그렇지만 이 골프라는 것이 지나치게 집착하기 쉬운 특성이 있습니다. 프로 골프 선수인 래리 넬슨은 1983년 US 오픈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우승은 꿈도 꾸지 못했던 그저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16번 홀을 앞에 두고 많은 갤러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잔디에 앉아 잠시 조용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드리고 나서 어찌 된 셈인지 갑자기 골프가 잘 되면서 그 대회에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궁금하겠습니까?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 우승 트로피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가?" 그러자 넬슨이 대답합니다. "아니, 정 반대라네. '하나님, 트로피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나의 머릿속에서 트로피를 지워주세요.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 속에 푹 파묻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골프를 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다네." 여러분도 상상을 해 보십시오. 골프를 치는 사람의 머릿속에 우승 트로피가 왔다 갔다 하면 골프를 망치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래선 안 됩니다. 특히 취미든 사업이든 무엇이든 지나친 집착은 그 모든 것을 망치게 합니다. 어떤 분은 옛날 신앙생활 열심히 못 할 때 예배시간마다 마음은 골프장의 푸른 초장에 이미 가 있어서 설교도 귀에 안 들어오고 예배 언제 끝나나 시계만 보곤 했다고 고백하더군요. 집착입니다. 이런 수준이 되면 취미가 나를 지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고 취미가 영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교회 오래 나오고 예배 오래 참석했어도 신앙이 자랄 리 없습니다. 취미는 취미로 즐겨야지 너무 집착해서 내 삶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집착하는 것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야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대신 차지하는 습관과 취미는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원칙만 잊지 않으면 어떤 습관도 취미도 좋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오늘 내 삶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습관과 취미를 바꾸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던 여러분의 습관과 취미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수단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삶속에서 그 누구도 그 어떤 습관이나 취미도 줄 수 없던 참다운 행복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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