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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나무 세계 (잠 8:22-31, 고후 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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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포도나무 이야기 포도밭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날씨가 좋으니 여러분 돌아다니시면서 한번 꼭 포도밭 가보시기 바랍니다.

여유 있게 날씨도 좋으면 포도도 따먹어 보고 포도나무가 주는 교훈이 뭔지 마음을 열고 봄날에 포도나무 한번 경험해 보십시다.

제가 신학 공부하러 수유리에 있는 신학대학원에 들어왔는데 기억 속에서 제일 남는 그림이 한 폭 있습니다. 그때 캠퍼스 전체가 포도밭이었습니다. 그 포도밭이 지금은 다 팔려서 없고 건물만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아쉬운 것이 그 엄청나게 크던 포도밭 이었습니다.

학교에서부터 송암교회까지 전 동네가 포도밭 이었었는데 포도밭을 누비고 다니면서 포도알도 따먹고 대화도 하던 기억이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현장은 없는데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근데 하루는 우리 교회를 세우신 김재준 목사님이 기독교 개론을 강의 하십니다. 그런데 몇째 시간인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강의하시다가 ‘학생들 말이야 포도 좋지. 신학이 뭔 줄 알아? 포도 열매 맺고 따 먹는 거야’ 딱 그 한 말씀 하셨어요.

저는 포도가 너무 좋아서 세상에 이렇게 좋은 포도밭이 있나. 그런데 그 포도나무를 이스라엘에서 가져다가 심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포도니까 원조 포도다. 포도 열매를 맺고 포도 열매를 따서 포도주 만들어 마시게 하는 것이 신학함의 원조다. 그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포도 열매를 맺고 열매를 가지고 빚어서 포도주 만들어서 마시게 하는 것이 신학이다. 찬송은 마시면서 너무 즐겁고 고맙다고 하나님께 드리는 곡조 있는 기도가 찬양이다. 기도는 고맙다고 하는 소리입니다.

제가 수유리 포도밭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건 젊을 때 이야기이구요 나이가 좀 들어가지고 외국을 가다가 가족들과 함께 세계에서 제가 보기에 제일 아름다웠던 포도밭을 경험한 일이 있습니다. 이태리 갔다가 지중해 안을 따라서 내려오다 보면 불란서 남쪽 해안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 사이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모나코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오기 전에 국경을 보면 이태리 쪽인데요, 이태리에서 남부 쪽으로 산등성이 따라서 내려오면 굉장히 가파른 언덕들입니다.

그 밑에는 지중해구요, 얼마나 길이 꼬불꼬불한지요. 옛날에 길나기 전에 대관령 가듯이 꼬불꼬불 한데 그 길을 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지금은 문제없겠습니다만 옛날에는 브레이크도 별로 일 때 잘못하면 큰일 납니다.

혹시 언론 보도를 통해서 보셨습니다만 너무 길이 아름다워서요 한번 브레이크를 잘못 밟고 올라가다가 그냥 굴러 떨어지면 죽습니다.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캘리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저도 그 길을 내려오는데 지중해가 보여서 아름다운 것 그것만이 아니고요, 왼쪽은 지중해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가파른 언덕에 전부 포도밭입니다. 이 포도밭이 그냥 심은 게 아니라 줄로 재고 자로 재가지고 반듯반듯하게 심었는데 포도밭이라고 보기보다는 딱 보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씨줄 날줄이 이렇게 아름답게 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사이에 농부들이 길을 잘 닦아 놓아서 리어카 같은 것을 끌고 와서 포도송이 따가지고 옆으로 앞으로 끌고 가던 장면 너무나 목가적인 장면이라서 지금도 가슴에 세계에서 가장 좋은 포도밭이라고 딱 입력이 돼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유리 포도밭이나 이태리 북쪽 해변 가의 포도밭이나 아름다운 포도밭인데 정작 포도 열매가 맺지 않으면 그 포도밭은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창조세계 목적은 인간이 살아야 되고 인간이 즐겨야 되고 인간이 하늘을 향해서 찬양을 해야 하는 작품이 없이는 창조 세계는 무의미하다.

포도 열매가 없는 포도밭은 그냥 자연일 뿐. 포도밭의 의미는 아닙니다. 오늘 예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익숙하게 잘하는 포도밭 이야기를 하면서 주신 말씀 입니다. 하나님은 포도밭 농부이십니다. 여러분이 믿으라고 하는 나 예수는 포도나무입니다. 당신들은 누구냐 하면 내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농부시고 포도나무는 성자 예수님이시고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는 우리 인간이시고 열매는 어디서 맺느냐? 이게 핵심입니다. 열매는 나무가 직접 맺지 않습니다. 농부가 열매를 하늘에 주렁주렁 달아놓지도 않습니다.

가장 핵심인 열매는 누가 맺느냐 하면 가지가 맺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두고 성경말씀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하나님 저희들이 무엇 이길래, 이렇게도 사랑하셔서 하나님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이런 축복을 주십니까.

시편 8편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포도열매가 최고의 가치라는데 최고의 가치 있는 포도열매를 왜 저희 인간이 맺게 하셨습니까? 포도 가지가 열매를 맺지 나무가 맺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아무리 위대하시고 예수그리스도는 포도열매는 맺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셔도 농부인 하나님은 포도열매 맺지 않습니다. 포도열매는 피조물인 우리가 맺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농부의 뜻은, 포도나무의 자양분은 가지로 연결되어 우리 인간으로 연결되어 인간이 인간의 가지와 포도나무인 예수와 농부의 뜻을 합하여 포도라고 하는 열매를 맺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열매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나무만 좋으면 뭐합니까? 포도 열매가 좋아야 질도 좋고 맛도 있고 또 아름다워야 포도밭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게 아닙니까? 이 말씀을 보면요 하나님은 인간이 맛있으면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인간의 삶이 멋있어야 하나님이 좋아하신다.

포도 열매가 좋아야지 나무가 좋으면 뭐합니까? 예수그리스도 나무는 이미 땅속에 있고 하늘에 있고 다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야기는 하나님과 예수의 관심은 나무에 붙은 가지가 어떻게 나무로부터 자양분을 빨아들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는지 그 열매 속에는 우리 각자의 성공도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재능도 들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열매도 들어가 있습니다. 나라도 있고 사회도 있고 그렇습니다.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지는 가지가 결정을 합니다. 그러나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접목되어 있고 접목되어 있기 때문에 자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을 때에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포도나무 이야기는 여러분과 나는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와 이렇게 때려야 땔 수 없는 그러나 하늘의 뜻을 포도나무 열매를 내게 하는 포도열매를 맺는 주체로서 우리 인간이 있습니다. 전 이 사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합니다. 포도밭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고 포도열매는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실입니다.

이 결실 중에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얘기했는데요. 성령이 누구냐 하면 성령은 포도나무와 가지가 접목되어 자양분을 주고받게 하는 통로가 성령이십니다. 가지는 자양분을 받아서 아름다운 포도 알을 주렁주렁 맺게 하는 능력 그 힘이 성령이십니다. 아버지를 농부와 포도나무로 연결시키고 포도나무와 포도가지를 연결시키고 포도가지에서 알을 맺게 해주는 능력. 그 힘이 성령이십니다.

오늘 포도밭 이야기는 성부 하나님 농부와 성자 예수 포도나무와 열매를 맺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우리 인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시는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이야기를 아주 압축하여 포도나무라는 상징적인 비유로 설명을 했습니다. 어떤 열매를 맺으면 좋습니까? 갈라디아 5장21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열매가 아홉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포도 알 종류가 아홉 가지입니다.

가장 큰 순서대로 하면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이 아홉 가지 성령의 능력을 기록해 놨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결단하십시다. 아홉 가지 특징의 열매 중 어떤 포도 알을 여러분이 지니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이 맛을 사랑의 맛을 주고 싶은 포도 알 입니까? 기쁨을 하시겠습니까? 인내와 친절을 하시겠습니까? 절제를 하시겠습니까?

포도 알은 똑같은 알이지만은 어디 위치해 있느냐 나무의 어디 연결 돼있느냐에 따라서 자양분과 태양과 바람과 이 모든 것의 영향을 받아서 맛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다른 맛은 사랑의 맛, 기쁨의 맛, 절제의 맛 등등. 포도는 맛있어야 됩니다. 맛있는 포도로 만들어진 포도주도 맛있어야 됩니다.

제가 심방하면서 들은 얘기인데요. 세계 여러 나라 포도주가 많은데요, 제일 맛있는 포도주가 어디냐 그랬더니 교회가 맛있다고 합니다. 성만찬 때 여러분 포도주 드시지요. 어떤 분들이 이렇게 맛있는 포도주를 왜 이렇게 조금 주시냐고 크게 좀 달라고 포도주 맛이 좋은데, 왜 맛이 좋을까?

그랬더니 포도나무도 좋고 포도알도 좋았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뜻과 기쁨을 담아서 포도주를 빚었기에 그 포도주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기도하면서 포도주 만드셨지요.

찬송하면서 빚으셨지요. 하늘의 기쁨을 그 속에 담아놓고 빚으셨지요. 이 포도주의 이름이 사랑이면 우리가 마시는 포도주는 성만찬 때 마시는 포도주는 사랑의 포도주입니다. 저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교회 성만찬 때 한잔 마시지만 밖에서 마시더라도 한번 취해보시지요.

그냥 마시지 마시고 취할 때 까지 마셔보시지요. 목사가 강단에서 술 취하라고 말합니다. 포도주에 한번 취하십시다. 취하는데 그 포도주가 진실로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의 포도주라고 믿으시면 십자가 사랑에 푹 담겨 보십시다. 진실로 제가 절제하기 위한 포도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포도주 마시면서 나는 절제란 은총 속에 한번 빠지고 싶다.

적당히 마시지 마시고 빠지면서 취하면서 마셔보시지요. 얼마나 마시면 취할 것 같습니까?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만 취하라는 말은 맛있게 드셔야 취합니다. 멋지게 마셔야 취합니다. 그냥 퍼마시면 취하지 않습니다. 사람 죽습니다. 사랑의 포도주를 마시면 사랑을 산출해야 됩니다.

진실로 신실의 포도주를 마셨으면 거기에 푹 빠졌으면 신실을 가정과 사회와 교회에서 자기 자신 속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포도주 한번 취해보십시다. 취함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은총을 어떻게 얘기 합니까?

맛있는 포도주, 멋있는 포도주. 이 모든 것은 오늘 성령의 열매인 아홉 가지에 달려있습니다. 맛좋은 포도 드시지요. 맛있게 사십시다. 멋지게 사십시다. 자양분은 충분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나무는 충분하여 땅으로 부터 올라오는 영양가와 바람이 주는 영양가와 햇빛이 주는 영양가 무궁무진 합니다.

우리가 믿고 접목만 하면 그 하나님은 예수 통해서 무한대의 맛있고 멋있는 포도를 만들게 하신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접해서 우리는 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제가 포도 알을 알알이 맺어놨더니 제가 하나님께 감사할게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만든 포도 알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만드신 것을 제가 몰랐습니다. 여러분들 TV사극 보시지요. 고구려 이야기 고려 이야기 보시는데 딱 보시면서 감동하시면 이렇게 사람이 빠져들게 돼있습니다. 마치 제가 삼천년 사천년 이전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 제가 장군이 되어보고 임금이 되어보고 저 같으면 새롭게 철학을 만들고 지휘를 할 텐데, 이런 생각하면서 사극을 보시게 됩니다. 사극속에 이미 저는 삼천년 전 것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백하기를 너무 좋으면 나는 이미 수천년 전 이씨 조선이 있기 전부터 나는 그곳에 있었다. 제가 받은 우리 조상들로 부터의 얼입니다. 오늘 잠언서의 고백입니다. 포도 넝쿨이 너무 좋고 포도 알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좋은 하나님의 축복을 이제 받고 나니 하나님 이 세상 만들기 전부터 하나님이 저를 만드셨군요.

저의 신앙의 조상들이 해왔던 모든 것을 태초 이전부터 그 수많은 업적을 과거의 행적을 제가 다 받을 수 있으니 진실로 고맙습니다. 또 하나 고백이 있습니다. 이 고백은 과거 것만 받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있을 수십 년 후 수백 년 후 미래 이야기를 제가 상정을 하고 미래 주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제가 앞당겨 맛 볼 수도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진실은 포도 알의 진실은 옛것도 흡수하고 앞엣것도 끌어당겨서 오늘 포도를 먹고 마시는 오늘 속에 저는 살아있는 생명의 명품을 산출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맛이 가장 좋은 것입니까? 가장 최고의 포도주는 헌신이라 이름 하는 사랑의 포도주입니다. 누구의 포도주 입니까? 가지가 너무 약하여 열매를 맺을 수 없기에 가지는 다 치고 나무 자신이 포도나무를 맺기 위해서 나무 자신이 죽었습니다.

십자가가 뭔지 아십니까? 가지가 포도를 맺지 못하여 나무 자체가 이미 포도를 맺기로 하고 죽었습니다. 나무가 잘렸습니다. 가지치기가 아니라 나무치기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무를 입력하여 새로운 나무를 연결시켜서 가지가 나게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포도나무가 다시 살아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부활의 주님에다가 가지를 연결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최고의 포도주는 예수님이 흘리신 포도주.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 최고의 포도주 그 맛을 자양분을 받으면 여러분은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과 부활의 영광을 주시는 보혈, 이 두 가지를 함께 마시는 역사를 매일매일 만들어 가야합니다.

저는 포도주 마실 때마다 포도를 드실 때 마다 이 포도와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시고 부활로 주시는 승리의 포도주임을 믿고 마시면 우리는 사랑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다 자유입니다. 맘대로 선택하십시오.

이제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열매 중에 무엇을 얻을지 결정해 보셔야 합니다. 이 나라에 문제를 놓고 신년 벽두에 우리가 사랑한 이어령 선생님이 시를 하나 쓰셨는데 제가 읽은 것 중에 몇 토막만 소개하겠습니다. 너무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쓰셨습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살아온 한국 사람들 아닙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앉아있을 때 우리는 걸었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에게는 의 날비둘기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 날개를 주시고 주눅 들린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바닥을 헤매는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 날개를 좀 주십시오. 날개 하옵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날개 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자리를 서로 바꾸어가며 배열을 이끌어가는 저 신비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 날개 하소서.

이 땅이 아깝지 않습니까? 날기 전에 접목하십시다. 그리스도 나무에 접목한 가지는 접목이 강하면 아무리 바람이 불어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비상합시다. 날아갑시다. 접목하고 날아가십시다.

우리 모두가 포도밭이면 우리 좋은 포도를 알알이 맺어서 주님도 기쁘시고 저희도 복되고요. 이 나라를 이 가정을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많은 포도나무 열매 맺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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