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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영원한 기업 (수 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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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지가 지난 1000년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을 칭기즈칸으로 뽑았습니다.
칭기스칸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유목민 출신이 변방에서 일어나 중원을 제패하고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을 접속시키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불가해한 일인 것입니다.
그가 정복한 땅은 777만 km².
알렉산더(348만 km²) 나폴레옹(115만 km²) 히틀러(219만 km²)가
      지배한 지역을 다 합쳐도 여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제가 오늘 칭기스칸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1000년 만에 나타난 영웅이요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서가 아니라
그가 유언처럼 남긴 메시지가 더 인상적이라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즉 정복보다 더 어려운 것이 그 땅을 차지하여 누리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복을 받는 일보다 복을 누리는 일이 더 어렵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2장까지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데 대한 기록이라면
13-24장은 정복한 땅을 분배한 데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말씀은
아직 가나안 땅 정복이 완전히 이루어 지지 않는 상태에서
    분배를 명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시작은
1절 [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 란 말로 시작합니다.
1. 1절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 란 말을 왜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이 오늘 내게는 어떻게 들려집니까?
이 구절만 가지고 생각한다면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없듯이
  당대의 영웅 여호수아 그도 이제 나이가 들어 하나님으로부터
  [ 이제 나이 많아 늙었어 ] 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것이 유한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입니다.
부흥성가 한 소절이 기억나네요.
[ 인산 녹용 좋다 해도 늙는 길 못 막고
  진시왕의 불사약도 죽는데 허사라 ]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하지요.
    그래요,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장사가 없습니다.
세계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세계 제일의 교회로 성장시킨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 용기 목사님도 역시 세월 앞에 손을 듭니다.
    내년 2월에 당회장 직을 물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 여호수아야, 너도 세월 앞에 별 수 없구나.
          이제 나이 많아 늙어 뒤로 물러가야 되겠구나 ] 하고
여호수아의 쇠퇴를 지적하는 말입니까?
그런 말씀이 아니지요.
비록 유한한 인간의 약점인 세월 앞에 무릎 꿇는 육신이지만
마지막까지 의무를 인식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얻을 땅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할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렇게 유한한 존재지마는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분으로 끝까지 하나님 의지하고
          나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약점을 바로 인식한다면 전적으로 하나님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영원하십니다.
인간의 유한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중단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고 전쟁을 종결하였지만
      아직 그들이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여호수아가 나이 들어 늙었지마는
    하나님의 약속은 여기서 중단되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도 고백합니다. 빌3:12절에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게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오늘 우리도 예수 믿고 구원 받았지마는
        정복해야할 미개척지가 많이 있습니다.
1. 성화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의 정복
2. 아직도 믿지 않는 가족과 친척, 이웃을 전도하는 일
3.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의 비젼
4. 우상의 도시 대구를 복음화 시키는 일
5.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유한한 인간의 약점을 가진 우리들이지만
    죽을 때까지 미개척 분야를 정복해 나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약점의 한계를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6절에 “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좇아 내리니 ” 란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1절을 다시 한 번 보세요.
[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
이미 우리는 가나안 정복에 대한 기사를 공부했습니다.
11:23절에 보면 기브온 거민을 제외한 가나안의 모든 거민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정복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남아 있는 땅`이란 2-6절까지
가나안 남서쪽의 블레셋 지역과 시돈 지역, 북쪽에 있는 변두리 땅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주요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지배권을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에게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자투리땅이 큰 부담이요 걱정거리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6절 중반에
[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라 ]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남은 땅의 사람들도 다 쫓아내고
  그 땅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전후좌우 아무리 살펴보아도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역부족일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부족인 것을 느낄 때, 낙심하며 절망합니다.
가만히 보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닌데,
    싸워보지도 않고 일찍부터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가? 분석해보면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정해 놓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해 놓은 한계점에 이르면 더 이상 도전해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미신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 미신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그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역부족이라 느꼈을 때, 인생의 한계가 느껴질 때,
        결코 기 꺾이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한 한계요, 내 자신이 정한 한계일 뿐입니다.
내가 못하는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은 많이 남아 있지만
    걱정 하지 마라 내가 쫓아내리니 - 원문에는 내가 친히 쫓아 내리니
그러니 우리가 인간의 한계를 안다면
    더욱 하나님 의지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모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7절에 [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 고 합니다.
그러니 1-7절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3. 1-7절까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일까요?
비록 여호수아가 나이가 들었지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가 해야 할 마지막 사명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그들이 정복한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고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아홉 지파와 또 다른 므낫세 반(半)쪽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느라 아직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얻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들 때문에
    아직 가나안의 기업을 누릴 형편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얻은 땅을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분배하여
    그 땅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남은 땅을 정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만 집중되어
    지쳐있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을 권고하시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있지마는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보다
    앞으로의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관심보다
우선적으로 여러분들의 손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구원 받은 성도로서 하나님이 허락한 복된 삶을
      누릴 줄 아는 내일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8-31절까지는 다시 요단 동편 기업 분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7절에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라고 하신 데 대해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 두 지파 반이 제외 된데 대해
      보충설명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업 분배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4. 왜? 이렇게 기업 분배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까?(8-31절)
성경을 읽다보면 종종 읽기 어려운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족보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마1장이나 역대상1-8장까지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등의 내용은
    집중해서 읽기가 참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가 마1장 역대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족보이야기는 아니지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호수아 12-21장까지는 정복한 왕이나
      각 지파 별로 땅을 분배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어떤 지파에게는 무슨 땅을 주었고 하는 내용이 21장까지 나옵니다.
여러분, 걱정되지 않으세요?
앞으로 도대체 그 긴 내용을 언제, 어떤 식으로 다 설교를 들어야 할 지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이런 내용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지루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당시 사람들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한번 상상력을 발휘하여 당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로 지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을 다른 나라에서 노예로 갖은 학대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도자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는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 바다를 넘으면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꿈을 꾸면서
  기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사실 홍해를 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길어야 한 달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굽을 탈출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황량한 광야였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그들은 40년간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사이에 1세대들은 대부분이 죽고 말았습니다.
황량한 사막에서 아마도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은 자기의 부모들로부터     
수도 없이 많이 가나안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기적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대부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에 있는 땅 분배기록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약속의 땅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오늘 본문에 담겨 있는 땅 분배에 관한 기록이
      지루한 지명의 나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눈물겹도록 소중한 기록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잘 모르는 서양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20~30년 동안 월급 받은 것을 착실히 저축해서 집을 장만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정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내 집 마련의 정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언제 우리도 땅에 정착해서
    그곳에 농사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절실한 소망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먼저 이해하고 본문을 바라볼 때
    오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땅에 대한 말씀을 이렇게 길게 기록하는가?
만약 이 땅에 대한 기록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을 향한 절박한 소원 때문이라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서의 중심 주제는 땅 문제입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먼저 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이 여호수아 때에 와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땅에 대한 약속과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수13-21장에서 각 지파의 기업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부동산의 소유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차지할 땅의 목록도 제시하여 앞으로도
계속하여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광판에 주가 지수가 계속 변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하고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고
        눈만 뜨면 그기에 시선을 집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래요? 그기에 투자를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영혼의 닻을 내리고 살아가는 성도라면
      하나님 말씀 어느 부분이라도 관심이 있고
                          시선이 집중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상세한 기업 분배를 기록한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둘의 중간에 끼어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었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씀에 감격하지만
    때로 우리의 현실을 보며 절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약속이 감격스럽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살고 있는 자신을 볼 때
    절망적인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소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말씀 중 기업의 분배는
    우리에게 그런 사실에 대해서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우리의 안일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
이 말씀의 앞에는 요단 동편의 정복한 땅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정복한 땅을 열거하다가 왜 갑자기 정복하지 못하고
    남겨둔 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왜 갑자기 그술과 마아갓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심 혹은 안주를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여러 정복한 땅을 이야기하다가
    이 말씀을 슬쩍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렇게 간단히 지나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방심하고
    안주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삿2:4절에 [ 남겨 두신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였더라 ]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성취하고 나면 안주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성취한 것을 가지고 방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남은 땅이 많이 있습니다.
방심하지 말고 주님의 명을 따라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성에는 아직도 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차지해야할 이 산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내일교회에 주신 사명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면 좋은 교회라고 자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미 얻은 것 때문에 방심하고 안주하는 교회가 되면
    결국은 그 남겨 놓은 것이 화근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개척 초기에는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어 헌신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열정은 사라지고
    나중에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여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결국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현재로 만족하며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쳐나가는 교회가 되시기 ...

2) 하나님의 약속은 이 기업의 분배와 같이 신실하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승리를 통해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오늘도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33절에서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지파의 기업을 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지금 우리가 함께 읽은 21-2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승리한 것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 중 21-2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 평지 모든 성읍과 헤스본에 도읍한 아모리 사람 시혼의 온 나라라
  모세가 시혼을 그 땅에 거하는 시혼의 방백
  곧 미디안의 귀족 에위와 레겜과 술과 훌과 레바와 함께 죽였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도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였었더라 ]
발람을 죽인 일은 물론이고 헤스본 왕 시혼과
그리고 31절에 옥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가 거듭 언급되고 있습니다.
왜 약속의 땅을 열거하면서 이런 과거의 승리들을 다시 반복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과거의 승리를 통해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역사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의 삶에서만 역사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신 것처럼
지금 이 약속도 반드시 성취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많은 유혹과 도전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이 오늘도 내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우리 앞에는 남은 땅이 많습니다. 여전히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있습니다.
그 땅은 아직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대적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땅,
    여전히 복음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가야하는 이유이고,
그들에게 다가갈 때, 확신과 기쁨가운데 갈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 중에서 또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5. 레위지파에게 기업을 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32-33절)
14절과 32-33절 말씀입니다.
레의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아니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레위 지파에게만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레위 지파에게만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입니까?
다른 모든 지파에게는 땅이 기업이고 레위 지파만 여호와가 기업입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뜻으로 레위 지파에게만 땅을 주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는 한번 그 때 실제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기업이 없으므로
    백성의 십일조 가운데 일부가 그들의 기업입니다.
    백성들이 드린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지파들은
    그들의 수입 가운데 일정부분을 떼어서 레위 지파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레위지파의 백성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다른 지파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자신들의 수입 가운데
    일부를 레위인들 에게 주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저들에게는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사실을 되새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레위 지파에게 기업을 주지 않은 것은
      단순히 레위 지파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레위 지파는 온 백성에게 샘플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것을
온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레위 지파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지파의 백성들도 그들을 바라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기업이심을 기억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것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삽니다.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가 진정한 기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기업은 여호와가 아니고 땅입니다.
그래서 늘 잊고 삽니다.
보이지 않는 기업은 젖혀 두고
    눈에 보이는 기업만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우리의 기업이 무엇입니까? 땅입니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교회가 진정으로 추구할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땅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른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여호와만이 나의 기업이시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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