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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 (행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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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완연하게 온 것 같습니다. 비 오고 바람 불고 그치기를 몇 번 되풀이 하더니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뒷동산에 개나리가 노랗게 활짝 피었고 진달래가 분홍빛 꽃을 활짝 열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목련도 딴딴하게 구슬 알처럼 맺혔더니 이제 확 펴졌습니다. 흐드러졌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이미 진 것도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이며 고백인데 저는 수년 째 봄이 돌아올 때마다 “올해도 봄은 왔구나,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라고 작은 탄성을 울립니다. 매년 겨울동안은 꼭 봄이 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봄이 어김없이 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매년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겨울이 너무 죽음과 같이 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영락없이 봄은 왔습니다. 그 죽음과 같은 겨울을 깨트리고 봄이 오는 것은 그 겨울 깊숙한 곳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숨어 있었던 생명이 다시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언젠가는 잎과 꽃을 피우게 되고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나라에도 생명이 있어야 하고 가정에도 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만 있으면 괜찮습니다. 회사도 생명만 있으면 자라도록 되어 있습니다. 때가 되면 꽃도 잎도 열매도 맺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꼭 붙들고 있다가 필 때가 되면 피워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언제 나라의 생명, 가정의 생명, 경제의 생명, 건강의 생명이 회복되고 일어설지 그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생명이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라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교회라고 부르지만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상당 기간 기독교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진짜 기독교의 모습, 기독교 교회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도와 선교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을 범죄로 여겼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그 교회의 어른인 베드로를 찾아와서 책망하였습니다. “아니 사도님, 어떻게 이방인인 저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까, 어떻게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하십니까?” 라고 따지고 대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을 들은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고넬료의 집으로 간 것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에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우리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주시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자기가 세례를 주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제야 예루살렘 교인들이 그동안 자기들이 잘못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헛된 말을 할 리가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의 교인들은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에 기독교라는 나무가 싹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회가 아닌 것 같았지만 이미 거기에는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싹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은 스데반의 박해 사건으로 인해서 여기저기 흩어졌는데 안디옥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거기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주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이 소식을 또 다시 예루살렘 교회가 듣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번과는 반응이 달랐습니다. 지난번에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느냐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중에 어떤 분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훌륭한 바나바라는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왔습니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혼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바나바는 동역자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으로 들었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났던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러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사울을 찾아 동역자로 모시고 안디옥 교회로 와서 바나바와 사울이 동역하여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 때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일 년 동안 열심히 가르쳤더니 사람들이 많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제는 완전히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 지역의 근동지역 전체에 큰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어려웠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아주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이 자기들도 어렵지만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이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것 같으니 부조를 해야겠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결정하였습니다. 자기네들도 힘들었지만 힘자라는 대로 힘껏 모금하여 모은 돈을 예루살렘에 보냈습니다. 꽃이 피고 꽃 뒤에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자기네들은 그 열매를 이미 먹게 되었고 저 멀리 예루살렘 교인들에게도 열매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나무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기록한 사도행전 11장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나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26절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비로소’ 라는 단어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비로소’가 뜻하는 의미는 그 이전 까지는 아니었다지만 그것을 계기로 그 때부터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 까지는 예수를 믿는 것 같았는데, 그리스도인 같았는데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비슷한 유대교인들이었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전 까지는 기독교인 것 같은데 아직 기독교가 아니고 기독교 비슷한 유대교였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기독교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니고 기독교 교회도 아니었는데,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함께 가르친 복음을 일 년간 배우고 나니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동안에는 생명이 있어 잉태되어 있기만 하다가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서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이 탄생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몇 가지 말씀합니다. 하나는, 교회의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교회란 어떤 것이며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이고 그러한 기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만약에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기독교 교회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것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있든 교회가 아니고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실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아무리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고 해도 교회가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권세가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겠다. 내가 누구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존재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칠 때 그 힘과 권세를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8장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는 말씀을 다시 확인 하십시오. 함께 있으면서 여러분들에게 힘을 주고 권세를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때에 교회가 권세를 가지고 능력을 가질 수 있고, 어떤 때에 그리스도인이 이런 힘과 권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 때는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칠 때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렇고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가르칠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하십니다.

두 번째 말씀하시는 바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교회에서 일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아주 잘 봐야 합니다. 우리는 자칫 교회에서 일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이 아닌 세상의 일하는 방식을 마치 교회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한 방식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을 우리는 세상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한국은 교회당 밖으로만 나오면 완전히 세속적이고 세상적이며 교회와 관계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세상에 살다가 교회에 들어와서도 세상에서 하는 방법을 교회에서 하는 방법이라고 잘못 알고 잘못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이미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일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아무리 맞는다고 해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하면 좀 부족하고 오히려 때로는 그 사람 때문에 일이 더디어지고 효율이 떨어질지라도 또 어쩌면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있어서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이고 교회에서 일하는 방법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교회에서 하는 일입니다. 독불장군은 교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바나바를 보십시오. 얼마나 잘나고 뛰어났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교회의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냈습니다. 안디옥에 간 바나바는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자 능력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바나바에 대해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모자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모자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또 그에 대해서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과도 그러하지만 과정도 잘하고 있었습니다. 전부 다 잘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나바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그를 만났고, 그를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일 년간 큰 무리를 가르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양이고 방법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난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함께 모여서 조금씩 조금씩 보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 교회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못나고 모자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앞서서 뒤에서 속에서 위에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교회에 출석한다고 모두가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흔히 이것을 미국말로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Church Member 즉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성경도 읽고 찬송도 하고 헌금도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Christian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다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교회에 이 일 저 일 많은 일을 한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하고 세상에서 아무리 일을 잘했다 하더라도 교회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배우고 알 것은 알아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워야 합니다. 한번 배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고 또 배우고 자꾸 배워 나가는 것이 교회이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다 배운듯 하지만 “하나님 제가 아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며 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머리를 숙이고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덜한 사람에게도 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기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대답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그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미 내가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할 때에 어떻게 대답하시는가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똑 같은 일이고 똑 같은 상황이고 똑 같은 환경이라도 또 겸손하게 무릎 꿇고 물어보는 것이 바로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꾸 배워야 하고 자꾸 알아 나가야 합니다.

옛날에 많이 알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알았던 것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그때 그때마다 방식을 달리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주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답을 알 필요가 없으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겸손하게 물어보고 또 물어봐야 합니다. 이분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지 저 일을 통해서 말씀하시는지 알기 위해서 자꾸 고개를 숙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참된 그리스도인, 교회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아주 잘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꾸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교회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틈만 있으면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기기묘묘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과 다릅니다.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바는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말씀하시는 바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면 누구든 열매를 맺도록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다른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단지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는 우리들에게 부탁하신 일입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쓸데없이 우리가 일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다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정말로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만 하면 내 속에 있는 예수가 하도록 해줍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자동적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사랑을 줍니다. 옛날에는 잘난 사람을 비난하고 비판했는데 그리스도가 내 속에 있게 되면 그런 사람에게도 불쌍한 마음이 들고 귀하게 생각하는 사랑이 생겨납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옛날에는 사랑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고 불쌍히 여기려고 해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이해되고 사랑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더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형제를 자동적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도 힘대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모두 흉년이 들어 다 어렵습니다. 이럴 때 자기 자신을 챙기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인데 그리스도가 들어오게 되면 보통 인간과는 달라집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받는 진짜 은혜입니다. 사랑이 가득하게 되고 나보다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나보다도 어렵고 병들고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면 정말 힘들지만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안디옥 교인들은 자기들도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형제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힘껏 부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열매로 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있는지 없는지 시험을 봐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도 예수를 정말로 영접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여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그 때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가차없이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했다면 그 사랑한 것이 어떤 것으로 나타났느냐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예수 믿고 여러분의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그동안 사랑하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교회이며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일하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참된 교회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 능력있는 사람, 권세의 사람, 그런 가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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