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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희망의 별 (삼상 2: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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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갓난 아이는 하루에 평균 300번씩 웃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불평, 불만, 원망, 짜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용혜원 목사님이 쓴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주소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주소서.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우는 모든 마음을 거짓없이 표현하는 순수한 마음을 주옵소서 흙먼지 속에서 뒹굴어도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밝고 맑은 아이들 어둠이 다가오기 전에 집을 찾을 줄 아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주옵소서 잘못을 해도 야단 맞을 줄 알고 용서를 받을 줄 아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주옵소서 천국이 어린아이 같아야 들어갈 수 있다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옵소서」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무엇이 그리도 복잡합니까? 무엇이 그리도 계산할 것이 많습니까? 낮은 울타리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암병동으로 간호사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있었던 곳은 그 중에도 소아병동이었습니다.

무서운 암과 싸우는 환자 중에 유난히 눈이 동그랗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6살 된 '지혜'라는 이름의 꼬마 아이가 있습니다. "지혜야, 언니가 동화책 읽어 줄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별 반응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주사를 놓을 때도 아픔을 애써 참고 있는 듯 했습니다. 부모가 이혼을 해서 할머니만 가끔 병문 안을 와 줄뿐인 지혜, 엄마는 새로 시집을 갔고, 아빠는 중풍으로 떠나는 바람에 지혜의 병실에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 뿐이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할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여 대주던 병원비는 할머니가 쓰러지는 바람에 끊기게 되었고, 병원장이 지원하던 보조금 조차 원장이 바뀌는 바람에 더 이상 지급이 안되어 어쩔 수 없이 퇴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몇몇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퇴원을 앞둔 지혜를 위해 병실에서 조그만 송별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 애가 너무 안쓰러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선물다운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한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지혜야, 여기 백원짜리, 천원짜리, 만원짜리 중에 네가 가장 가지고 싶은걸 하나 줄 테니 뽑아 봐" 그 방에 있던 우리 모두는 지혜가 만원짜리 지폐를 집을 줄 알았는데 주저하지 않고 백원짜리 동전을 집는 것이었습니다.
"지혜야, 아직 어떤게 큰지 모르는가 보구나 이중에는 만원짜리가 제일 좋은 거야 동전 대신에 이것으로 가지려무나"라고 제안하자 지혜는 "저는 이 동그란 백원짜리가 제일 좋아요 백원짜리는 멀리 있는 우리 엄마와 애기를 할 수 있게 해 주거든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 안에서 만이라도 순수하고 깨끗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예배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녀들에게 심어 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믿음의 위대한 영웅들이 나옵니다. 그 많은 영웅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낳았던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들어간 에녹, 당대에 완전한 자로서 방주를 지어 구원받은 노아,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되었던 아브라함, 고난의 대명사로 불리는 욥, 이스라엘 백성들을 430년만에 애굽에서 이끌고 나온 지도자 모세, 하나님께서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했던 성군 다윗,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 예수 이후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던 사도 바울 이외의 수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의 사람들, 이들의 어린 시절을 우리는 거의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에 대한 어린시절의 기록도 성경에 단 한차례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유일한 예외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사무엘입니다. 성경 사무엘서를 보면 사무엘이 태어나게 된 동기부터 시작하여 성장과정, 교육받는 과정 그리고 신앙생활의 시작 및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어 가는 과정을 모두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에 대한 기록을 보면 특징이 아버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고 어머니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위대한 영웅들이 아버지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성장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성장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폴레옹은 국가의 힘은 어린이에게서 나온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가 국민들을 향해 강조했던 말이 있다. "프랑스로 하여금 훌륭한 어머니를 갖게 하라. 그러면 그 어머니들에게서 훌륭한 어린이들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국력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어린이의 교실이고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는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과서다.

사무엘은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 곁에서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으며 이것이 사무엘의 삶에 큰 영향력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삼상12:23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런 정신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에게서 온 것입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 부터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사무엘은 어머니의 기도에 의해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겸손하고 정직하며 순종적인 사람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이 건강해야 한다고 하여 얼마나 열심히 먹이는지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는 잘 성장하지만 영적으로는 그다지 잘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학원이다. 과외다. 공부만 시키니 지식적으로는 잘 성장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지혜롭지는 못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어렸을 때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자랄수록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이기적이고 실로 추악한 모습만 크게 성장하는 모습들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했음을 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훌륭하게 자라났음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어둠의 시대에 희망의 별로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이 살던 시대는 어떠했습니까? 사무엘이 살던 시대는 실로 어둡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의롭고 정직하게 믿음 지키며 살고자 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성경은 단적으로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아들의 타락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종교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는 결국 그 사회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무시하여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며 섬기던 여인들을 겁탈하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의 죄가 얼마나 컸으면 심히 컸다고 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제사를 문란케 하였고 하나님의 제물을 무시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사용만을 채웠습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인 타락은 결국 그 사회가 얼마나 병들고 부패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런 어둠이 뒤덮인 세상에서 한줄기의 빛이 나타났고 점점 그 빛이 맑고 밝게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등장입니다. 사무엘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진실하고 겸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전 안에 누워있었을 때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엘리 제사장의 집에 대하여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을 불러 물어 보았더니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숨김없이 말해 주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좋은 것은 언제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안좋은 이야기는 숨기고 대충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하나도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를 다 해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무엇을 숨기거나 감추거나 또는 하고자 하는 말을 다른말로 돌리거나 할 줄 모르는 참으로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나 손해가 올 것인가에 대해서도 계산할 줄 몰랐습니다. 사무엘은 실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그렇지만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그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그것은 진실함과 겸손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처럼 진실한자에게 임하시고, 사무엘 처럼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둘러 댈 줄도 알아야 한다거나 겸손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니 때로는 교만할 필요가 있다거나 이렇게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오직 진실함과 겸손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땅위에서의 삶은 유한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미움과 심판을 받았던 엘리 제사장의 두아들에 대한 말씀과 크게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느냐에 있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KJV에 보면 '불량자'란 말을 '엘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즉 엘리의 두아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치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사악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무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겼습니다.

잠3:1-4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심을 봅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은총을 받게 된 것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주장하고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고 인도하는 대로 자라 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복 받는 삶입니다. 이것이 복있는 삶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진실함과 겸손함을 가르치고 심어주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이 결국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의 빛나는 별들이 되고 어둠의 시대에 희망의 등불처럼 빛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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