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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 (롬 8: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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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하나님의 사랑(롬8:31-32)

세상 사람들 표현에 의하면 저와 여러분들을 믿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죄송하지만 절에 다시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믿는 사람들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절에 다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믿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이렇게 다른 표현을 합니다. 왜입니까 절에는 사실 다니는 것이지 믿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교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오직 복음안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은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무엇을 믿습니까 이 질문앞에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믿음은 믿음의 내용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고 가난하게 사셨고 고난 받으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부처도 나름대로 사역이 있었다 할 것입니다.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고민도 했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도를 닦았다 할 것입니다. 그냥 부처의 생애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단순한 생애가 아니라 사역입니다. 생애를 사역이라 함은 그 생애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보면 이렇습니다. 그의 생애가 사역이라 함은 철저하게 나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나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사심도 나를 위해서입니다. 고난받으십시오 십자가를 지셨음은 나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뿐 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하심도 승천하심도 다시오심도 나를 위해서입니다. 철저하게 나와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입니다. 그래서 사역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사역을 믿습니다. 이것을 복음이라 합니다. 나를 위한 복음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무슨 할 말이 있냐는 것입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에서 여기 만일은 의심의 의미에서나 가능성에서의 만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만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라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단의 공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적자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그냥 믿어라 그냥 승리해라 축복받아라 구경만 하고 즐겨라 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상기시키는 로마에 의하면 언제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처음 사람 아담을 대적하여 무너뜨렸습니다. 두 번째 아담인 예수그리스도에게까지 시험을 하며 대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에도 사단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적하니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사단은 갓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죽이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태어나신때에도 두 살미만의 사내아이를 죽이게 합니다. 또한 사단은 하나님앞에서 욥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욥을 참소합니다. 예수님앞에 제자들을 참소합니다.

눅22:31절에 보아도 시몬아 시몬아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구나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성경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삶이 쉽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대적하는 무서운 세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벧전 5:8절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합니다.

마16:18절에도 교회를 대적하는 음부의 권세도 있다 합니다. 원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대적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복음이 승리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언제나 사단이 승리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결국은 승리입니다. 왜입니까 나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시27: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2절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변함없이 예수그리스도안에 있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결국은 승리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원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씀앞에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원하십니까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린아이 유아기적 생각으로 무조건 나를 위하는 것이 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사춘기적 마음으로 나를 위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런면에서 보면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진정 위하는 것이 아님을 부모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거절이 자식을 위하는 것이요 회초리가 자식을 위하는 것인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위하심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조건 내가 원하는대로여야 한다는 생각하십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하심의 원리 그 첫번째가 구속으로입니다. 회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시는 은혜는 구속입니다. 구속이란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아 처음상태로 돌려 놓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말입니까 영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릴 위하심의 두 번째 원리가 영원으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에 매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에 매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 과거부터 영원까지 함께 보시며 반응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늘에 매이고 부분에 매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부분에 반응하지 않고 전체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하심의 세 번째 원리는 사랑으로입니다. 돈으로가 아니라 힘으로가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위하는 것처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만큼 대단 한 것이 없습니다.

한 부모가 열 자식을 키웁니다. 그러나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모시기는 힘이 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의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사랑을 먹고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신을 투덜대도 친구의 사랑, 이웃의 사랑을 먹고 자랐으며 배우자의 사랑을 입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사랑을 받고 형성되어야 건강한 인격이 되고 사랑을 많이 받아 온 사람이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담고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여기에 생명이 있고 구속이 있습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 사람을 위해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의 사랑은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풍성하게 주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빼앗아 가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너무 많은 것들을 선물로 값없이 주셨습니다. 생명과 관계된 것은 모두 값없이 주셨습니다. 빛, 물, 공기 토양, 등등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예수그리스도는 단순한 선물이 아닙니다. 이 선물은 사랑받는 자의 모든 문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요 영생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여기에 이어서 있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을 보십시오. 아들도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아멘입니다. 모든 것입니다. 무엇이라도입니다. 이렇게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은사로 주신다 합니다. 선물도 주시지 않고 은사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만 주셨다면 나를 위한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은사로입니다. 무엇입니까 나를 위한 것이면서도 또 다른 나를 위해서입니다. 선물이 아니라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실때에는 또 다른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그것을 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잘 사용되길 원하시면서 말입니다. 물질도 건강도 모든 것에 있어 여유도 모두 은사입니다.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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