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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는 귀하다 (눅 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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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귀하다 (눅1:13-17)

이 시간에 “어린이는 귀하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 사회학자가 지나간 19세기를 가리켜 여성을 발견한 세기요,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요,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전까지는 어린이가 하나의 인간이나 인격으로 간주되기보다 부모나 사회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20년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만해도 어린이라는 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존대 말 쓰기 운동을 벌려 처음으로 ‘어리신 이’이라 해서 ‘어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어린이날을 지키자고 제안하여 이것이 오늘날 어린이날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보다 시대적으로 2,000년을 더 앞서 가셔서 어린이를 참으로 귀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들도 어린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럼 왜 어린이를 귀히 여겨야 합니까?
그 영혼도 어른과 똑 같이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것은 우선 놔두고

1.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의 대상자이기 때문입니다.

마18:10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의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보다 약한 자를, 높은 자보다 낮은 자를, 귀한 자보다 천한 자를, 있는 자보다 없는 자를, 그리고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는 작고 약하고 무지하고 가진 것이 없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모든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관심 갖지 않으시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가장 큰 죄가 어린이에게 잘못하는 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8:6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2. 천국백성의 표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19:14-15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했습니다.

여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가면 어른은 없고 모두 어린이만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어린이를 일컫는 말이 아니고 마음의 어린아이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마음의 어린이가 되지 않으면 예수님도 알 수 없고 하나님 아버지도 알 수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어요. 천국의 은혜를 누릴 수도 없어요.

마음의 어린이란 겸손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어린이가 교만한 것 보았어요? 교만하다면 다 커서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어린이는 하나님을 의지해요. 의심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머니의 품 안으로 만족해요. 그래서 시131:1-2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는 열심히 받듭니다. 어린이는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것으로만 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린이들이 무엇에 몰입하면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릅니다. 그래서 놀이라든가 티브이 어린이 프로라든가 해가 지는 줄을 모르고 불러도 잘 모를 정도입니다. 마음을 다 바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하나님 섬기는데 마음을 바쳐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귀합니다. 우리는 어린이에게서 늘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이를 세워 놓으시고 천국의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3.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기에 귀합니다.

본문 눅1:15-16에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장차 귀하게 쓰시겠다는 예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린이의 미래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어린이에게는 인생을 살아갈 시간이 많고 귀히 쓰일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기에 희망이 더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이 일생을 좌우할 귀한 것을 심어줄 수 있는 시기이기에 가장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예술가를 만들려면 이 시기에 해야 합니다. 5-6살 먹으면 벌써 늦었습니다. 세계적인 인물을 만들려면 어릴수록 좋아요. 이 시기에 도와주면 보통 인물이 되는 것 아닙니다. 모두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귀합니다.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어린이 때 신앙을 잘 심어놓으면 일생 하나님을 사랑하는 귀한 신자가 됩니다. 본문에 세례 요한이 왜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어릴 때 그 정도가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성령에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머니 태에서부터 성령의 불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할 만큼 참으로 귀히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아이에게서 희망이 있게 하려면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이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불을 받게 해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아요. 역사 속에서 참으로 귀히 쓰였던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어릴 때 깊은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귀한 기회를 놓쳤다면 최소한 20세 이전에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가슴 속에 말씀과 성령과 사명의 열정이 타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요한이 큰 자가 되리라 하신 것처럼 반드시 큰 인물이 됩니다.

4. 어린이는 예수님의 표상이기에 귀합니다.

마18:5-6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영접하면 곧 예수님을 영접함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예수님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어린이가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에게 잘한 사람은 우리 주님이 도우셔서 모든 일을 다 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린이 목회 잘한 사람은 장년 목회에도 성공합니다. 또 어린이에게 신경 많이 쓰는 교회는 장년부도 부흥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를 잘 다루는 사람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장사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고 착합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인데 왜 축복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예수님을 배척한다면 어찌 그가 잘 될 수 있겠습니까? 어린이는 관심과 재정만 투자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아이들을 예수님처럼 귀히 여기고 사랑하면 그들이 자라서 교회의 일군이 되고 방패가 되고 인류를 위해 공헌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를 더욱 귀히 여기십시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요, 천국 백성의 표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요,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린이처럼 되어지고 어린이에게 관심 가져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성공적인 승리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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