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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로 본 비전 (마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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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로 본 비전 (마18:1-6)

이 시간 저는 “어린이 속에 있는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사랑하신 우리 주님의 은총이 모든 어린이들과 우리 성도들에게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사랑하셨고 축복하셨으며 특히 어린이를 사람들 앞에 세우시고 교훈하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님의 마음 가지고 어린이들을 더욱 사랑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에 대한 우리 주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그 말씀 속에서 가슴 부푸는 놀라운 꿈과 비전을 받게 됩니다.

그럼 어린이 속에 담긴 비전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18: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게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눅1:32). 세례 요한에게도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고”(눅1:15) 그랬습니다. 얼마나 부럽습니까? 여기 천국에서 큰 사람이란 영적으로 큰 사람을 뜻합니다. 즉 큰 자란 신령한 사람, 능력의 사람, 하나님 닮은 사람,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가령 모세나 요한이나 엘리야나 다윗이나 사무엘이나 베드로나 바울과 요한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많지만 얼마나 큰 사람이냐는 다릅니다. 참으로 만나보기 힘든 거대한 영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말씀대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크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큰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니다. 그래서 약4:6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다 죄인이라는 점에서는 큰 자 작은 자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더 은혜를 많이 받았느냐가 인물의 크고 작음을 결정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은 만큼 그는 하나님께서 크게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만큼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며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귀하고 크게 써 주십니다. 얼마나 가슴 부푼 말씀입니까?

2. 어린이에 담긴 비전은 진리의 보화를 소유하는 비전입니다.

눅10:21에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부자는 진리를 가장 많이 깨닫는 사람입니다. 롬3:1-2에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뇨 -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라” 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져 있지만 이 성경을 누가 더 깨닫느냐는 분명 다릅니다. 진리를 많이 안다는 것은 가장 큰 보화입니다. 그런데 지식적인 앎도 앎이지만 어린이가 되면 믿어지고 확신되어지고 누려지는 그런 앎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고 천국을 안다면 우리도 모르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믿어지고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어린아이들과 같을 때 진리를 열어 주실까요? 그것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께 여쭙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 보세요. 어른들이 힘들만큼 질문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이란 학자들에 의하면 최상의 교육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일생의 지식의 상당 부분을 어린 시절에 다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든지 에디슨같이 뭐가 되더라도 되고 맙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늘 여쭐 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은 물론 범사에 지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잠3:6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했습니다.

3. 어린이에게 담긴 비전은 천국을 누리는 비전입니다.

막10:14-15에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혹시 마음의 천국을 누리지 못하십니까? 어린아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했는데 어린이가 바로 그런 심령입니다. 어른들은 마음이 얼마나 혼란한지 이 생각 저 생각 이 욕심 저 욕심 이 염려 저 염려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곁가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마음의 곁가지 때문에 은혜를 받을 래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마음을 다 바쳐 섬깁니다. 그래서 어린 학도병들이 무서웠다고 합니다.

삼하 8장을 보면 다윗이 모압을 복종시킨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모압을 정복했지만 모압 사람들이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지도 않고 복종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모압을 정벌하고 사람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키 큰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키가 작은 한 줄 길이 어린이들만 살렸습니다. 그러자 모압 사람들이 비로소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만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결같이 어린아이와 같이 순종하고 복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 천국의 풍성함을 누리는 큰 비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4. 어린이에게 담긴 비전은 권능의 비전입니다.

시8:2에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왜 어린이에게 권능을 나타냅니까? 어린이는 자기 부족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못하니까 부모를 의지합니다. 어린이의 힘은 무엇입니까? 부모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나는 부족합니다. 어린이와 같습니다.” 이러한 자세와 고백이 될 때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했던 그 귀하게 쓰임 받은 모세도 애굽의 왕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40년의 연단을 거쳐 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쓰셨습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렘1:6-8에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고후12:9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어린이에게 담겨 있는 비전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만 되면 수지맞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사람들 앞에 세우시고 교훈하신 것처럼 우리들을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어린이와 같은 겸손한 심정이어야 하나님께서 온전한 예배로 받습니다. 마21:1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셨습니다. 우리 입술이 어린이가 되기까지는 절대 합당하지 않습니다. 가인처럼 하나님의 말씀 무시하고 제 생각을 앞세우는 교만함으로는 열납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의 푯대는 어린이입니다. 어린이가 영성의 모델이예요. 어린아이만 되면 됩니다. 몸의 어린이도 귀하지만 마음의 어린이는 더욱 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이가 되도록 늘 목표를 걸고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 속에 놀라운 비전이 있습니다. 이 비전을 사모하십시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대로 돌이켜 어린이가 될 때 영적으로 큰 자가 됩니다. 놀라운 진리의 비밀을 압니다. 천국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권능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이 아름다운 축복의 약속을 다 누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성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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