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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 (엡 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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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기도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참 많습니다.
성경에는 기도라는 말이 282번 나옵니다.

작년에 교회에서 성경적 기도 세미나를 했는데 그 때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 날 했는데 그 때에도 배우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본문 가운데 18절 한 절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에 대한 은혜와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18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짧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기도에 대해 다섯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기도를 해야 한다, 둘째, 항상 기도해야 한다, 셋째,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넷째, 깨어 기도해야 한다, 다섯째, 여러 성도들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제 이것들을 차례대로 살피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모든 기도를 해야 합니다.
18절 시작 부분을 보세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여기 “모든 기도”를 「새 번역 성경」은 “온갖 기도”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니까 “all prayer”라고 했습니다.
한문성경을 보니까 “다방 도고(多方禱告)”라고 했습니다.
중국 성도들은 기도를 “도고”라고 합니다.
‘다방’은 커피 마시는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는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기도”는 모든 형태의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의 다양성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 공중 모임에서 드리는 기도, 모두 힘써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길어야 하고 공중 모임에서 드리는 기도는 짧아야 합니다.
그건데 그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성합심기도 같은 격정적인 기도, 묵상 가운데 드리는 은밀한 기도, 요즘 많이 보급되고 있는 관상기도, 모두 힘써야합니다.
통성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귀가 먹으셨나? 왜 저렇게 시끄럽게 기도하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같이 하세요.
정성을 합하고, 목소리를 합하고, 마음을 합하여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통성기도라고 할 때 ‘성’자는 소리 성(聲)이 아닙니다. 정성 성(誠)입니다.
모든 기도를 하라는 것은 찬양, 감사, 고백, 간구…, 모든 형태, 모든 내용의 기도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4월 26일)에 제39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나라의 중요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라를 위해, 공직자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켜오는 것이 몇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골프를 치는 않는 것은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치는 정도가 아니라 한 때 ‘목사는 골프 쳐서는 안 된다.’는 캠페인을 열심히 했습니다.
‘목사는 검소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골프가 웬 말이냐?’ 했습니다.
그 때문에 골프 치는 목사님들이 저를 피하거나 제 앞에서는 눈치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앞으로도 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안 해 온 것 가운데 하나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 안한 것입니다.
80년대, 90년대에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 무슨 특권처럼 여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국가조찬기도회를 대통령조찬기도회라고 했습니다.

몇 달 전에 참석대상자 명단이 정해지면, 신원조회를 하고, 청와대 경호실 스탬프가 찍힌 명찰을 받았습니다.
다녀와서는 자랑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때는 우선순위가 높은 참석대상자 가운데 하나였었는데 그런 것들이 못마땅하게 여겨져져서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권위주의적인 것이 사라지고 많이 순수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회의 중요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 국가조찬기도회에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를 하면서 기도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해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저는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말씀처럼(야고보서 5장 17절의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 땅에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평화롭고 정의로운 나라,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가 되는 역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에 올 때마다 기도와 찬양에 큰 감동을 느낍니다.”
“우리 사회가 규칙에 승복하고 신뢰와 통합의 수준을 높여갈 수 있도록 기독교 지도자들이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참석자들 사이에는 ‘대통령께서 곧 예수님을 영접할 것 같다.’는 소리가 오고 갔다고 합니다.

대통령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계의 지지를 얻으려고 이렇게 하셨을까?
잘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로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기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계에 부딪혔을 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여기 “기도와 간구”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같은 말이 나옵니다.

‘기도는 무엇이고 간구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헬라어로 기도는 프로슈케스(πρσευχής)라고 하고 간구는 데에세이(δεήσει)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이 말씀도 다양한 형태의 기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가끔 ‘목사님,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무슨 음식을 좋아하세요?’ 묻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뭐라고 대답하던가요?
‘모든 음식을 좋아합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성도는 모든 기도를 좋아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든 기도를 좋아하시고 모든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둘째,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18절에는 “항상”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앞부분,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뒷부분,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앞부분에 나오는 “항상”이라는 말을 「개역 성경」은 “무시(無時)로”라고 했습니다.
무시로,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해진 시간은 빠짐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최소한입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했습니다.
다리오 왕 외의 존재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해진 시간 없이 항상 기도하기에도 힘써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했을 때 ‘아, 지금은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니까 조금 있다가 하겠습니다.’ 하셔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는 가운데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의 한 과부가 재판장에게 원한을 풀어줄 것을 호소하는데 이 재판장은 불의한 사람이었지만 과부가 자주 호소하기 때문에 그 원한을 풀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8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항상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 12장 12절에서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말씀했고 골로새서 4장 2절에서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과 17절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디 나가실 때 무엇부터 챙기십니까?
핸드폰부터 챙기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핸드폰을 안 가지고 나오면 괜히 불안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핸드폰입니다.
핸드폰을 항상 가지고 다니시는 것처럼,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에 순종하여 습관적이고 계속적인 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18절 중간 부분을 보세요.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가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서대학에서 저는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종종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딤후 3:16)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우리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바르게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역자들이 말씀을 준비하는 일, 속회 인도자들이 속회를 인도하는 일, 속장님들이 속회원들을 돌보는 일, 선교회장님들이 선교회원들을 보살피는 일,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찬양대원들이 찬양을 하는 일, 모두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블레이키(W. G. Blaikie)라는 분은 ‘성령에 의하여 마음이 하늘로 향한 바람과 대망으로 채워지지 않는 한 참된 기도가 될 수 없다.’ 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설교준비가 어렵습니까? 기도준비가 어렵습니까?
현실적으로는 설교준비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원칙적으로 기도준비가 더 어려워야 합니다. 설교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기도할 때 성령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도움을 구할 때 성령은 기뻐 도와주십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기도를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성도들,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의 뒷부분을 보세요.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뒤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지만 오늘 본문은 영적 싸움에 대한 교훈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영적 싸움에 필요한 무장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군사가 아무리 무장을 잘 하고 있어도 깨어 있지 않고, 졸거나 자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기 “깨어” 이 말은 군사용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야고보와 요한입니다)을 데리고 가면서 고민하시고 슬퍼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돌아와보니 제자들이 깨어 있지 않고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기도하고 다시 돌아와 보시니 그들이 또 자고 있었지요(마 26:36-46).
저는 그 때 베드로가 자지 않고 깨어 기도했으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깨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 국가, 시대, 모두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까 인용한 골로새서 4장 2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드립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다섯째,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18절의 끝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우리는 다른 성도들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가장 좋은 표현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입니다.
식사를 같이 하고 야유회를 같이 가고 하는 것도 좋은 교제이지만 성도들 위한 기도는 그것보다 차원이 높은 교제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는 성도들을 연합하게 합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는 성도들에게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라’는 의식을 갖게 합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는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합니다.

여러분 북한축구대표 팀 감독을 하다가 탈북해서 한동안 우리 교회에 출석하던 문기남 성도와 그 부인 이창실 집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문기남 성도가 울산대학 축구팀 감독으로 부임해서 지금 울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부인이 얼마 전에 등산을 갔다가 왼쪽 팔이 부러졌습니다.
입원해서 지난 주간에 수술을 받고 엊그제, 금요일에 퇴원을 했습니다.

어제 교인 가정의 결혼식이 울산에 있어서 울산에 가는 길에 먼저 내려가서 그 가정을 심방을 했습니다.
그 분들의 신앙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부인은 작년 말에 울산대학 부근에 있는 한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문기남 감독이 술을 몹시 좋아하는 분입니다.
저희 교회에 있을 때 어느 복날, 권사님 한 분이 그 분에게 보신탕을 대접하는데 그 분이 머뭇거리더니 ‘목사님, 기독교인들도 포도주는 마시지 않습니까?’ 하더군요.
많이 연구를 해 나가지고 나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제 하는 이야기가 얼마 전에 축구협회 간부들과 김정남 감독, 최순호 감독, 이런 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합니다.
축구협회 간부들이 ‘아, 여기 김 감독이나 최 감독은 교회에 나가 술을 안 마시는데 우리끼리 마십시다.’ 하더랍니다.
문기남 감독이 나도 교회 나간다고, 목양교회 나간다고 했답니다.

제가 그 부인 이창실 집사에게 ‘교회에서 성도들이 집사님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했습니다.
이창실 집사가 정색을 하고 하는 말이 ‘목사님, 이것은 제가 조금도 꾸미지 않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여기 내려온 다음에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목양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양교회 3,500석을 채워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되로 주려다가 말로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참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9절을 보세요.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설교 준비를 할 때, 한 말씀이 있으면 관주성경을 이용해서 그와 관련이 있는 말씀들을 찾이야 합니다.
저는 19절과 관련 있는 말씀들을 찾다가 바울 사도가 교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는 기록도 많지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말씀이 성경 여러 곳에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로마서 15장 30절에서 32절까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고린도후서 1장 11절,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5절,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과 2절 앞부분,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에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서 ‘아 내가 교만했구나!’ 했습니다.
나도 성도들에게 나를 위한 기도, 동역자들을 위한 기도를 더 열심히 부탁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무슨 약점을 보이는 것 같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부족한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목사의 직분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역자들을 위한 기도가 많은 교회는 이와 같이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부흥을 원하는데 이런 교회가 부흥합니다.
교역자들을 위한 기도보다 교역자들에 대한 말이 더 많은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 성도들을 위한 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에 대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을 두 글자로 줄여서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전(靈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투’ 또는 ‘영적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12절 끝부분을 보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전’은 제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여러 성경 주석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군사들입니다.
여기 할머니 권사님들, ‘에그, 내가 무슨 군사야!’ 하실지 모르겠는데 성도는 모두 영적인 싸움에 부름 받은 군사들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무장을 하고 있어야합니다.
워런 W. 워어스비(Warren W. Wiersbe)이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분인데 시카고 무디 기념교회를 담임했었던 성서주석가입니다.
이 분이 에베소서 6장 강해집을 냈는데 제목을 「무장하고 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던 사람들이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무장을 풀지 않았고 일을 할 때도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았고 물을 길러 갈 때도 병기를 잡았던 것처럼(느 4:15-23)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가지 무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11절에는 전신갑주가 나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싸움에 갑옷 입지 않고 나갔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싸움이 끝나면 조정에서 또 괴롭힐 것이 분명하니까 일부러 그랬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14절에는 허리띠가 나오고 호심경이 나옵니다. 호심경은 오늘날로 말하면 방탄조끼입니다. 15절에는 신이 나오고 16절에는 믿음의 방패가 나옵니다.
17절에는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이 나옵니다.

모두 일곱 가지 무장이 나오는데 여섯 가지는 방어용이고 성령의 검 하나만 공격용입니다. 성도는 남을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기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셔야 합니다. 기도는 무장의 하나가 아닙니다.
아무리 무장을 잘 갖춰도 사기가 뚝 떨어져 있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기도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전은 끊임없는 기도로 뒷받침되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만들어진 찬송이 있습니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고 시작되는 390장입니다.

그 찬송의 3절 가사를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네 힘이 부족하니 주 권능 믿어라
복음의 갑주 입고(그 다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늘 기도하면서
너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 하라

온양역 앞에 가면 역을 보면서 왼쪽에 비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적은 비석이 있습니다.
그 비문은 국학자인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선생(1892-1950)이 썼는데 한국의 명문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비문에서 마지막 싸움 장면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밤에 달이 밝았다 ‘이 원수가 없어진다면 죽어 한이 없겠나이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나서 적선 200여 척을 무찌르는 동안에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이순신 장군 때는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아니지만, 천하명장 이순신 장군도 싸움을 앞두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무선통신입니다.
부대와 본부, 부대와 부대끼리 무선통신이 두절된다면 그 부대가 제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요즘 신문에 일본이 최신 기종의 전투기를 들여오기로 했다는 보도가 자주 나옵니다.
아무리 최신 기종의 전투기이고 조종사의 기량이 우수해도 지상 레다 관제소와 통신이 두절되면 제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한 일이 그것이어서 잘 압니다.

지난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감리교러시아선교사 모임이 우리 교회 후원으로 사랑의 교회 안성 수양관에서 있었습니다.
감리교회가 러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것이 15년 전쯤의 일인데 처음으로 이런 모임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 수양관에서 선교사들과 같이 지내면서 다른 일도 하려고 했는데 첫날 저녁에 돌아왔다가 그 다음 날 다시 갔습니다.
왜? 거기에서 해야 할 설교 초고, 같은 기간에 갈보리금식기도원 집회 인도를 맡았는데 그 설교 초고, 「푸른 풀밭 맑은 시내」 39호 교열해야 할 원고, 다 노트북 컴퓨터에 넣어 가지고 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파워 라인을 안 가지고 왔습니다.
배터리는 약하고, 그 모임 실무를 맡은 윤석호 목사님의 컴퓨터를 빌려서 일을 하는데 시스템이 다르니까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하는 수 없이 밤에 집에 와서 파워라인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기도회에서 선교사들에게 그 파워라인을 보여주면서 이것 때문에 내가 어젯밤 여러분과 같이 지내지 못했다고, 컴퓨터가 이 파워라인으로 파워와 연결되는 것처럼 기도로 하나님과 튼튼하게 연결되기 바란다고 실물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파송교회가 있는데 파송교회와도 이 파워 라인처럼 튼튼하게 연결되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기도로 하나님과 튼튼하게 연결되고 영적인 파워를 끊임없이 공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힘써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여 영적인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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