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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마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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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아마도 모든 어린아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있다면 날마다 어린이날이었으면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어린이날에는 어느 부모들이든 자기 자녀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바람이 있다면 이왕이면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나은 그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많은 돈을 들여가며 이런 저런 과외를 시키는 이유도 그토록 아이들이 지겹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공부하라고 하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그래서 자녀들로 하여금 “이왕이면 높은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보다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높은 사람입니까? 사회적인 지위만 높으면 높은 사람이 되는 겁니까? 아니면 돈만 많이 벌면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오죽하면 용꼬리가 되기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낫다는 속담까지 생겼을까요? 그만큼 사람들은 첫째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모두가 첫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첫째가 되면 행복할까요? 나라로 본다면 대통령이 첫째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대통령이 되면 행복할까요? 회사라고 한다면 사장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사장은 행복한가요? 지위만을 가지고 본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행복을 가지고 말한다면 가장 말단 사원이 제일로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의 삶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가장 불행할 것 같은데 오히려 고생을 하면서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세상으로 보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전혀 행복하지 못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서는 과연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일까요? 제자들의 관심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신분으로 볼 때 이 세상에서는 결코 높은 사람이 될 수 없었기에 그렇다면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일까에 관심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오늘 어린이 주일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야 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하늘나라에서 높은 사람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다면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부르시더니 제자들 앞에 세워 놓으시고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울 역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게 될 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는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믿는 것과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 서로 관계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과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다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곧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어린아이는 순수합니다.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보고 듣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조금의 사심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주어진 말씀과 약속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기 생각을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를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말씀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기에 어떤 다른 조건이나 내 생각에 그것만 가지고 되겠는가 거기에 무언가를 더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모든 마음들을 다 빼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 백성이 된다고 할 때 그렇다면 그건 너무 쉬운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정상입니다. 그렇게 구원 받기가 쉽다면 세상에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쉽다고 느끼기에 무언가 부족한 듯 느끼는 그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그게 바로 악한 마귀의 작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것만도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로 믿기만 하면 구언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주님의 죽음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이기에 결코 싸구려가 아닙니다.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얻게 된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값으로 따져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어떤 조건을 붙여서 그 값을 치러야 된다고 한다면 세상에 누가 그 값을 치룰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내 대신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믿기만 하면 그 믿는 믿음으로 그 값을 다 치룬 것으로 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그냥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믿도록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예수님께서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대신 죄값을 치루시고 죽으셨으며 성령님께서 그것을 믿도록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움직여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전부 전적으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있어서 우리가 한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입술로 고백한 것뿐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다 한결같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을 우리는 또한 그렇게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또한 모든 약속이 우리들의 삶에 이루어져 복된 하나님의 자녀요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의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먼저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는 꿈이 큽니다. 그래서 가끔은 꿈과 현실을 착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를 낮출 줄 압니다. 잠언서에 말씀하기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며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겸손의 사람을 뽑으라면 역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낮고 천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존귀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도 아닙니다. 보잘 것 없는 목수의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신 곳조차도 짐승의 우리였습니다. 그분 자신이 이 세상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스스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 역시 이렇게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치고 높아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마땅히 높은 자리에 있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아닌 그 자신이 이미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선생님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과 같이 섬기는 마음이 바로 어린아이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여기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와 같은 어린아이를 환영하는 사람은 나를 환영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그렇게 환영하고 있습니까? 물론 내 자식은 귀엽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려도 그대로 다 받아줍니다. 그런데 다른 집 아이는 어떻습니까? 아니 예배 시간에 어린아이들이 예배를 방해한다고 해서 얼굴을 찡그리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환영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어린아이들을 볼 때 그 어린아이가 내 아이든 다른 사람의 아이든 그 아이를 볼 때 예수님을 보듯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영한다는 것은 반갑게 맞아주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런 어린아이 한 명이라도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누구 어린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겠습니까? 아마도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은 아주 단순합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싫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아무개 미워” 하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싫어한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는 미움입니다. 마음으로 미워하기만 해도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에 미움이 생기게 하는 그것은 곧 아이들로 하여금 살인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니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사람은 스스로 연자 맷돌을 자기 목에 매달고 깊은 바다에 빠져죽은 것이 더 낫다고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차라리 나가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이요 어린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겨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결국 누가 하늘나라에서 높은 사람입니까? 먼저는 겸손으로 섬기는 사람이요 이렇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겸손으로 섬겨야 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도 높여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대로 우리가 존귀한 자가 되고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 받기를 원합니다. 존귀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먼저 겸손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을 베풀어나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더 섬기고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사랑 받으며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많은 방해물들이 있습니다. 특히 겸손으로 섬기며 사랑을 베풀어나가는 삶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사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내가 섬긴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큰 장애물은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이래 봐도 내가 어떤 사람인데 하며 나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 마음이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방해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왜 저런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돼 하는 마음이 나를 사로잡거든 그러므로 얼른 그 마음으로부터 돌이키십시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죽으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어주셨는데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 것이 무엇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주님이 나를 죽기까지 사랑해 주셨는데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원수도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주님 말씀하시기 않습니까?

이런 사랑의 사람 되십시오.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그대로 믿고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먼저 섬기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 일이 아무리 힘든다고 해도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도록 하십시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도록 하십시오. 내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오히려 짐만 된다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랑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베푸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아지는 비결입니다. 우리 향남교회의 성도들이 이렇듯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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