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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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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꿈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인생을 도전하며 삽니다. 모험하는 인생을 삽니다.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내게 이 산지를 주소서. 내가 필경 취하리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노년에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는 것이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캐넌 내시(Cannon C. H. Nash)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빅토리아 신학대학을 설립해 수천 명의 젊은이를 기독교 사역을 위해 훈련시켰습니다. 70세에 학장직에서 은퇴한 그는 80세가 되었을 때 새로운 10년간의 풍성한 사역이 그의 앞날에 놓여 있다는 확신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풍성하게 실현되었습니다. 그 기간, 그는 교역자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된 그룹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으로 특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기간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풍요로웠다고 말합니다. 그는 90세가 되었을 때 토인비의 불멸의 역사서 6권을 완독했습니다. 그는 갈렙처럼 자연의 순리에 도전했고, 계속해서 역량을 키워 나갔던 것입니다. 나이를 따라 살지 말고 비전을 따라 사십시오. 꿈을 가슴에 품고 모험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남이 도전하지 않는 산지에 도전하십시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나이를 따라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꿈을 따라 일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따라 일하십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테니슨(Arfed Tennyson)은 “만일 우리가 길가의 조그마한 꽃이라도 그 꽃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안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다”라는 의미 깊은 말을 했습니다. 길가에 아무렇게 핀 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창조의 숨결이 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계의 주인이시기에 그 분을 떠나 존재할 수도 없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세는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완전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들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이며 믿음인 것입니다. 여기에 생명과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여기에 왔습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에 하나님께서 모든 어린 아이들을 복주시고 가정에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전인격적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라
  본문 4-5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모든 율법의 근원이며 신앙의 대상인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서술입니다. 여호와의 유일성은 물론 나아가 불가분적인 단수성과 단순성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자신들의 신앙의 근본으로 삼아 매일 조석으로 읽거나 암송할 만큼 중요시 여겼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과 모든 노력을 강조하는 중언법적 표현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마음에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편을 사랑하다 보면 자연히 다른 한편은 소홀히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능력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다른 곳에 마음을 분산시키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마음 중심에 모셔 그분만을 경외하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지정의를 다한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분열이나 부분적인 사랑이 아니라 온전하고 전체적인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한 생애를 살면서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탈진 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현대인의 탈진에 대해서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다가 어느 마을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걱정이라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걱정이라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 치면서 도망하여 어느 곳으로 들어갔는데, 거기는 피로라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또 도망을 쳤는데 결국 들어간 곳은 더 이상 앞으로도 뒤로도 퇴로가 보이지 않는 탈진이라는 마을이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피해서 어디론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지만 결국은 피곤과 걱정이라는 단계를 지나 더 이상 퇴로가 보이지 않는 탈진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녀들 중 누구도 기진맥진이라는 탈진의 교차로에서 주저앉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나아가 우리가 탈진이라는 깊은 웅덩이에 빠지기 전에 먼저 피할 길을 내어 주시며 결코 누수 없는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멋진 차를 주시면서 열쇠도 주지 않고 그 차를 밀고 다니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그 멋진 차를 받고도 밀고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성령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차를 받았지만 열쇠를 넣고 시동을 걸지 않는 사람, 플러그는 꽂혀 있지만 스위치를 올리지 않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탈진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탈진이라는 웅덩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피할 길을 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은혜의 전류는 공급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가 플러그만 꽂아 놓은 채 스위치를 올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합시다. 순종하면 걱정과 피로와 탈진은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과 선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것은 불행이고 비극이고 지옥입니다. 더욱 전인격적으로 여호와를 사랑하고 자녀들에게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고 보여 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전생애를 통해 여호와를 사랑하라

  본문 6-7절 "오늘날 내게 네가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부지런히 가르치다’는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을 예리하게 찌르듯 감동시키고 교훈하라는 뜻입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신앙교육의 의무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주지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상 삶과 사고 가운데 늘 말씀에 유념하고 준수하는 생활에 힘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전인격적인 하나님 사랑을 가르친 모세는 이어서 전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부지런히 가르치며 강론’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늘 부족하고 모자랄 뿐입니다. 당연한 의무일 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교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기회는 지나가며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마지막 시간이며 마지막 사람이며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교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기회는 또 생기고 말씀은 더욱 풍성하게 됩니다. 선순환의 역사가 계속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전파함으로써 거룩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자신 및 후손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전파함으로써 세속의 거친 물결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바쁜 나머지 하나님을 밀쳐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의 광채를 누릴 겨를도 없이 바쁘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바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수잔나 웨슬레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수잔나는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의 어머니로서의 아들들의 유명세에 가려져 그녀가 깊은 영성과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실 그녀의 삶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열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인 새뮤얼 웨슬레가 걸핏하면 빚을 져 집안 살림을 어렵고 고달프게 만든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힘들다고 해도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열아홉 명의 아이를 키우는 수잔나보다 더 힘들고 바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영육간에 깨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내 평생에 가는 길>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고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께 내어 드릴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수잔나는 분주한 삶의 와중에서 하나님께 공간을 내드리는 훈련이야말로 영적 안정과 인격적 만족에 필수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수잔나의 영적 생존의 비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공간을 내어 드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것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은 그리스도인의 “명품이자 필수품이며, 그 자체로 기쁨이자 하나님을 더 잘 섬기도록 우리를 무장시켜 주는 것입니다.

  모두가 바쁩니다. 공부, 직장, 사업, 살림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하고 피곤합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죽기 직전입니다. 그래서 기회를 미루고 연기합니다. ‘다음’… 교회와 신앙생활은 다음으로… 그러나 기회를 미루는 한 최상의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최상의 기회는 만드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최상의 조건이 갖추어 집니다. 전천후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양보 없는 저돌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전생애를 통해 여호와를 사랑하고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좋은 성도와 부모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삶의 현장에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본문 8-9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손은 마음속의 생각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지체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미간은 대개 인간의 지성과 사고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활 곳곳에 깊이 스며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정을 온전히 주관토록 하라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는 종교적, 도덕적 황금률을 적은 쪽지를 몸에 휴대하거나 아니면 집에 붙여 두는 일종의 부적 풍습이 일찍부터 성행하였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도 이러한 풍습에 영향을 받았기에 모세는 이를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 삶의 현장에 적용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손목에 매고), 모든 사고의 판단기준으로 삼으며(미간에 붙이고), 우리 삶을 온통 지배하게(문설주에 기록하고)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은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표준이 되고 삶을 통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듯(약2:26) 생활에서 표현되지 않는 ‘하나님 사랑’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이는 향기 없는 조화이며 비없는 구름에 불과합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감동과 영향력이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중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나이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하루에 평균 10만개의 뇌세포가 죽는다고 합니다. 하루에 10만 개면 30년이면 10억 개나 되며 그래서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때 은혜를 받은 것 같기는 한데 이미 그 내용은 잊어버린 채 껍질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의 은혜 건망증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면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흔히 믿는 자를 가리켜 은혜의 하루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 넘치는 은혜의 건망증 환자 속에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은혜의 하루살이임을 인식하는 비결은 은혜가 사건이 아니라 삶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은혜는 받았지만 그것이 사건으로 끝나버린 데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일이나, 부흥집회, 혹은 주중의 구역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만, 그것이 사건이 아니라 삶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은혜 찾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은혜의 하루살이 인생임을 깨닫고 말씀이나 기도나 찬송을 통해서 하루에 조금이라도 은혜 속에 잠기는 시간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폭발적인 사역을 하였던 D.L. 무디가 당시에 스코틀랜드의 개혁자이자 사역자로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누리고 있었던 앤드류 보나(Andrew Bonar)에게 그 비결을 물었을 때, “50년 동안 나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가 자녀와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감동과 모범과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대가 계속 이어집니다. 이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주일이며 또한 유아세례를 베풉니다. 전인격적으로, 전생애를 통하여, 삶의 현장에서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복을 계속적으로 받는 여러분의 가족과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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