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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이 변해야 합니다 (골 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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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부모자녀 관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두 가지의 관계가 등장합니다. 18절과 19절에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나오고, 20절과 21절에는 자녀와 부모 관계가 나옵니다. 성경이 이 두 관계를 다루는 것은 우리의 가정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바로 이 부부관계와 부모자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관계만 정상적으로 잘 이루어지면 우리 가정은 참으로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두 관계가 비뚤어지면 제아무리 돈 많고 부유한 가정이라도, 아무리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이라도, 아무리 자녀들이 공부 잘 하고 출세한 가정이라도 결국 불행한 가정이 될 수밖에 없기에 이 두 가지 관계는 참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이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관계, 즉 부부관계와 부모자녀 관계가 점점 더 비뚤어지고 왜곡된다는 현실입니다. 이 관계들이 얼마나 비뚤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아침에 신문 한 장만 펴들어도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요즈음 뉴스에서 우리는 비뚤어진 부모자녀 관계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밖에 나가서 다른 아이에게 매를 맞고 돌아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때리는 것보다 맞고 사는 게 더 편해"라고 위로하는 부모도 있겠고 "왜 너만 맞았니? 너도 때리지." 하고 핀잔을 줄 부모도 많을 것입니다. 간혹 부모들 가운데는 자식을 앞장세워 때린 아이 집에 찾아갔다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아이들 싸움은 아이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모가 개입하고 어른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될 뿐 아니라 내 자식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줄 모르는 아이로 자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커서 어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겠습니까? 부모가 대신 해결해 주겠습니까?

출 21:24에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으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나타나서 지금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국내 재벌그룹의 회장님이 말입니다. 이 회장님의 둘째 아들이 강남의 고급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다른 손님들과 시비가 붙어 매 맞고 눈이 찢어졌는데 아버지인 회장님이 경호원을 동원해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폭행한 것입니다. 이 아들은 한국의 명문대를 나와 현재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수학 중인데 얼마나 귀한 아들입니까? 그래서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아들에게 "저 놈들이 네 눈을 때려 찢어지게 했으니 너도 그대로 저 놈들 눈을 때리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이게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입니까? 비뚤어진 자식사랑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비뚤어진 부부관계

이뿐이 아닙니다. 세상은 비뚤어진 부부관계로도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부부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머가 요즘 유행이라고 합니다.

어떤 교회 여전도회에서 가정생활 세미나를 개최하고 그 교회에 출석하는 부인들을 초청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도 오고 권사님도 오고 집사님도 오고 성도님도 오셨습니다. 그런데 강사가 부인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내 남편과 결혼하겠다.'라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보세요"라고 하자 딱 한 사람만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딱 한 사람만 손들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그 한 사람도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강사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남편이 그렇게 잘 해주시나요?" 그러자 그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그 놈이 그 놈인데요 뭐..." 웃을 일이 아닙니다.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과 부부는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 가정은, 우리 부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멀쩡히 살아가고 있지만 실은 속에서부터 썩어가는 위기의 부부가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 나온 김에 이야기 하나 더 해 드리지요. 남편과 강아지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 줘야한다. 가끔씩 데리고 놀아줘야 한다. 복잡한 말은 알아듣지 못한다. 초장에 버릇을 잘못 들이면 내내 고생한다." 남편이 강아지보다 편한 점이 있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온다. 간단한 심부름을 시킬 수 있다. 훈련을 안 시켜도 대소변은 가린다. 집에 두고 여행을 갈 수 있다. 같이 외출할 때 출입 제한구역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아지가 더 좋은 까닭은? "신경질이 날 때 발로 찰 수 있다. 한 집안에 두 마리를 함께 길러도 뒤탈이 없다. 강아지의 부모 형제로부터 간섭 받을 필요가 없다. 데리고 살다가 싫증나면 내다 버릴 때 변호사가 필요 없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씁쓸한 것은 왜일까요? 씁쓸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남편들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요. 어쩌다가 남편들이 이런 우스갯소리감이 되었을까요? 좀 심하게 과장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런 말이 유행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 부부관계가 많이 비뚤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예수 안 믿는 부부들만 그런가? 과연 우리 예수 믿는 부부와 가정은 예외라고, 건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성경해석 : 누구를 위한 말씀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 부부관계와 부모자녀관계가 변화되어야 하며, 다른 것이 다 변해도 실제로 우리 가정이 변하지 않으면, 부부와 부모자녀 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참된 변화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 가정이 '단순한 혈연관계'에서 '거룩한 가족관계'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읽고도 잘못 해석해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잘못 해석했는가? 이 말씀이 누구에게 주시는 말씀인지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나 자신'에게 주는 말씀인데 자꾸 상대방에게만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18절 말씀은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남편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아내에게 이 18절 말씀을 보여주면서 "이거 봐라, "이거 봐라! 성경에 뭐라고 나와 있어? 아내들아,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나와 있잖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8절 말씀이 과연 남편들 보고 좋아하라고 주신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아내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남편들은 18절을 보면서 "당신은 왜 나한테 순종 안 해?" 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말씀인 19절을 읽고 깨닫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않는 남편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19절 말씀은 누가 제일 좋아할까요? 아내들입니다. 나아가 아내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왜 우리 남편은 나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 모양일까 하고 불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19절 말씀은 남편들에게 깨달으라고 주는 말씀입니다. 아내들은 19절을 읽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18절을 읽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내 남편의 권위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아내인가?" 하고 말입니다.

계속해서 20절은 그러면 누가 제일 좋아합니까? 부모지요. 부모들은 이 20절을 펴서 자녀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 봐라, 성경에 분명히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잖아?" 그런데 정말 부모가 봐야 할 말씀은 21절입니다. 21절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자녀를 노엽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 부모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성경해석

그러면 이제 본문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버리고 도대체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우리 가정에게, 우리 부부와 부모자녀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본문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관계를 요구합니다.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부부나 부모자녀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핵심인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아내만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남편만 일방적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한 쪽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며 동시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잘 해야 합니다.

둘째, 본문은 우리에게 소유의식이 아닌 선물의식을 요구합니다. 가족들끼리 서로 소유의식을 가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내꺼"라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내 소유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남편도 아내를 내 소유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결혼식날 신혼여행을 가서 신랑이 신부에게 말합니다. "넌 이제 내 꺼야." 신부는 행복한 듯 웃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내 꺼라고 생각하고 소유하려 들면 문제가 생깁니다. 특별히 부모는 자녀를 내가 낳았으니 내 소유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려 들게 되며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식이나 배우자를 내 맘대로 움직이게 하려다보니 내 뜻대로 안 되고 내 마음대로 안 되면 화가 나고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도 내 생애를 통틀어 받은 선물 중에 가장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의식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은 칼릴 지브란이라는 레바논의 시인의 글을 두 번 인용할 것입니다. 그 중에 칼릴 지브란이 자녀에 대해 해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 왔으나 당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또한,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은 줄 수 있으나 생각은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그들처럼 되고자 해도 좋으나,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고자 하지는 마십시오. 중략...

참 중요한 말입니다. 자녀를 내가 낳았으니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처럼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남편도 내 아내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마십시오.

셋째, 본문은 우리에게 나-너 관계 아닌 나-하나님-너라는 관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에 나와 너, 남편과 아내만, 부모와 자녀만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좋은 일만 있으면 괜찮지만 문제가 생기면 직접적으로 부딪치게 됩니다. 무릎 연골이 쿠션 역할을 해서 뼈와 뼈가 마찰되지 않도록 하는데 이 연골이 닳으면 아픈 것처럼 부부가 직접 부딪치면 아픕니다. 그래서 19절 말씀처럼 '괴롭게' 됩니다. 부모자녀도 자꾸 직접 부딪치니 마찰이 생기고 21절 말씀처럼 노엽게 되고 낙심하는 일이 생깁니다. 특히 이들 부부와 부모자녀가 직접 닿아있으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상대방을 소유하려 들고 상대방의 영역을 침해하게 되어서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 안에서"라는 표현이 거듭해서 나옵니다. 18절에도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했고, 20절에도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부부가 남편과 아내만 서있으면 안 되고 남편-하나님-아내, 즉 남편과 아내 사이에 반드시 하나님이 서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계셔야 진정한 관계가 형성되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쿠션처럼 중재하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녀 사이도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내 남편을 볼 때, 내 아내를 볼 때, 내 부모나 자녀를 볼 때 맨눈으로 보지 마세요. 인간적인 눈으로 보니 상대방의 단점만 보이거나 혹은 반대로 맹목적인 사랑으로만 보게 됩니다. 나와 너 사이에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을 통해 상대방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볼 때만이 상대방을 올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너 사이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칼릴 지브란의 시를 인용합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리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부부 사이에,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십시오. 가까이 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있어야 하나님이 거기 계실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아끼고 부모자녀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너무 사랑이 지나쳐서 집착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 집착을 포기해야, 우리 사이에 하나님이 계셔야 참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행복한 가정의 십계명>

오늘의 결론으로 행복한 가정의 십계명을 읽어 드립니다. 그냥 참고로 하라고 읽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하라고 읽어드립니다.

1.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동등하다. 구별은 있어도 우열은 없다. 열린 가정은 높고 낮음의 지위보다 애정과 사랑의 요소에 관심이 많다.

2. 잘못을 발견했을 때 언제라고 "내 탓이야" 하고 사과한다. 실수 없는 가정이 온전한 가정이 아니라 실수에도 불구하고 용서가 있는 가정이 온전한 가정이다. 부부도 서로 사과할 줄 알고 부모도 자녀에게 잘못 했을 때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3. 권위 대신 사랑의 지배를 받는다. 가정을 묶어주는 끈은 제도나 법률이 아니라 사랑이다.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권위가 있게 하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사랑'이다.

4. 항상 '눈높이'를 생각한다. 상대방을 위해 속도를 늦추고 높이를 낮추며 때로는 기다림을 위해 멈춰서 보라. 가장 큰사랑은 '눈높이'로 표현된다.

5. 이웃들과 나누어 가진다. 기회가 있는 대로 온갖 좋은 것들을 이웃과 나누라. 기회를 찾아 선한 행실의 모범이 되고 다른 가정에 영향을 미치라.

6. 함께 자라간다. 같은 취미를 개발하라. 함께 읽을 책이 있고 함께 참여하는 공동 작업이 있다면 더욱 좋다.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배워가라.

7. 규칙적인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오해와 불신을 몰아내며 이해와 사랑을 증가시킨다.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거나 가치 있는 말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 그래서 대화가 더 어려운 것이다. 가벼운 농담이라도 좋다. 모든 대화가 반드시 무게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8. 위기를 피하기보다 위기에 도전한다. 위기와 갈등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갈등과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구하라. 이탈리아 속담에 "하나님은 문을 닫으시되 창문은 열어두신다"는 말이 있다. 위기를 이겨낼 방법을 반드시 주신다는 뜻이다.

9. 여가를 같이 한다. 쉬는 시간을 마련하라. 오솔길을 산책하고 차를 마신다든지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한가로운 시간은 스트레스의 가장 좋은 해독제가 된다.

10. 가정의 중심을 하나님께 둔다.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래서 가장의 짐이 너무 버거운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도 아니다. 자녀들은 더더구나 아니다(요즈음은 이런 가정이 너무 많다.) 반드시 하나님이 가정의 중심이요 주인이 되시게 하라.

이 열 번째가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하나님이 우리 사이에 중심 되신다, 우리 가정의 중심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게 하라!" 여러분의 가정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가정 되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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