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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부부 (창 6:21 ~ 창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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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바라보는 부부
창 6:21~7:5

그림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혹시 생각나는 단어가 있습니까? 무슨 소리나 냄새, 바람, 느낌 등이 없습니까? 종소리, 기도, 경건, 감사, 평화, 사랑, 축복, 하나님의 은혜, 노동 등 다양한 말들이 떠오르게 합니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바르 비종파 화가였던 밀레가 1857년 ∼ 1859년 사이에 그렸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하루의 일과를 끝낸 한 농부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들판에 굳건히 서 있는 부부의 모습은 마치 이 땅과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며, 먼 지평선에서 물들어 가는 황혼빛을 받고 있는 부부의 경건한 자세는 신앙적인 감동과 감격을 함께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섬기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인 광주 산수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마다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저는 행복한 가정을 떠올릴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기쁨, 감사, 찬양, 예배입니다. 가족끼리 모여 소리쳐 환하게 웃는 모습, 비록 어렵고 가난해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모습, 가족이 모두 한 목소리로 찬송하는 모습 그리고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예배드리기 위해 가족이 손잡고 예배당에 가는 모습, 이런 모습을 언제나 생각합니다. 큰 것이 행복이 아니고 지극히 작은 것이 행복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들이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가정에 있어서 최소의 단위는 무엇일까요? 부부입니다. 부부로부터 가정은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가 행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실은 실로 가정의 위기임을 실감케 합니다. 사랑으로 충만해야만 하는 가정 안에서 사랑보다는 미움과 증오를 안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삽니다. 자녀들 때문에 삽니다. 내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두려워서 같이 살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20대는 꿈에 살고, 30대는 삼삼해서 살고, 40대는 사생결단으로 살고, 50대는 오기로 산다'

어떤 부인이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 했습니다. 그래서 재판장은 부인과 남편을 불러다가 사실 심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남편과 이혼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판장이 물었습니다. "남편의 노래를 매일 들어야 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인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래 노래를 얼마나 못하기에 이혼을 할 정도입니까?" 재판장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자기 남편을 가리키며 대답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는 노래가 단 한가지 뿐인데, 그 노래 제목은 <독신 생활이 좋아>입니다. 게다가 곡조도 전혀 맞지 않아서 도무지 참고 들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지나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 하셨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해 인간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찾아 옴으로 그 모든 것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부부 사이를 깨뜨렸고 가정을 파괴 시켰습니다. 그들의 심령을 어둡게 했습니다.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은 지금도 삼킬 가정을 두루 찾고 있습니다. 지금도 넘어뜨릴 가정이 어디 있는지 온 세상을 누비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시대 상황은 이렇습니다.

창 6:2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은 성적 타락의 모습인 복수 혼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일부일처제의 가정을 완전히 파괴했음을 말합니다. 또한 창6:5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대로 보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땅에 있는 사람의 악함과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상상력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셨다"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죄악이 온세상에 넘쳤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오염되었음을 말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 세상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노아라는 사람을 주목하셨습니다.

8절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좋게 보셨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노아는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의 온갖 오염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노아만 그렇게 산 것이 아닙니다. 가족 전체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지켜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신 것입니다. 참으로 노아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만한 것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보실 때에 기뻐할 만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노아의 가정을 통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 부부들은 어떤 부부가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사랑하고 기뻐할 만한 부부는 어떤 부부일까요?

1. 서로 돕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고 했고 5절을 보면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120년만에 방주가 완성되자 그 방주에 먹을 식물들을 저장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짐승들을 방주 안으로 모으되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쌍을,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두쌍을 방주에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모든 일들을 노아 혼자 할 수 있었을까요? 노아 옆에서 돕는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아의 아내입니다. 성경에 그 아내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노아가 힘들어하고 흔들릴 때 마다 노아의 곁에서 힘을 주고 위로해준 사람은 바로 노아의 아내였습니다. 노아의 아내는 돕는 베필이었습니다. 아무리 자녀들이 노아에게 잘 순종하고 협력해준다 할지라도 아내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를 서로 돕는 베필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부부는 서로 돕는 것에서 행복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영육간에 서로 도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돕는 베필로서의 역할에 실패하게 되면 결국은 가정의 행복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원리에 따라서 서로 돕는 베필이 될 때 가장 행복합니다.

미국 디트문 이트에 가난하지만 매우 성실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낡은 창고에 틀어 박혀 밤을 지새곤 했습니다. 집 뒤뜰의 낡은 창고를 개조한 그의 작은 연구실에는 온갖 종류의 부품들과 기름 냄새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몇번이나 그 창고를 헐어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고는 했고, 동네 사람들도 그 젊은이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사람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꼭 성공할거예요. 난 믿어요 언젠가는 당신의 꿈을 이룰거예요" 아내는 늦은 밤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 곁에서 말없이 석유 램프로 불을 비춰주었고, 추운 겨울밤에는 꽁꽁 얼어 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도 남편의 일을 도우며 격려했습니다.

어느날 이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드디어 자동차를 만들었다구" 낡은 창고에서 엔진 연구에 몰두하던 그 젊은이는 기쁨에 넘쳐 아내를 끌어 안으며 소리쳤습니다. 그날 고요한 새벽, 거리에서 들리는 요란한 엔진 소리에 잠이 깬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창밖을 내다보고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거리를 그 젊은이가 아내와 함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젊은이가 바로 헨리포드입니다.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주었던 아내의 고마움을 잊지 않던 그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 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서로 돕고 도와주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노아가 받았지만 노아가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히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곁에 돕는 베필로서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돕는 부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말씀에서 보면 "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했음을 봅니다. 사실 방주안에 노아의 가족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들어가도록 허락되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방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노아의 가족들은 모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노아가 믿었던 하나님을 온 가족이 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아의 아내가 노아 못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즉 노아와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선을 본받기 쉬울까요? 악을 본받기 쉬울까요? 악을 본받기가 쉽습니다. 선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악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거짓말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욕심 때문에 도적질을 합니다.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드리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노아가 살던 시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대단히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가족 모두가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보다도 아내가 노아와 함께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남편이 신앙생활 열심히 해도 아내가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신앙생활은 반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롯의 가정처럼 남편과 아내가 신앙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도 안됩니다. 온전히 부부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한 가정은 무엇보다 먼저 부부가 행복해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 돕는 베필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삽니다. 언제나 따뜻함과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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