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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를 대하는 주님의 시각 (막 1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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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대하는 주님의 시각 (막 10:13~16)

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현대인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에 최고의 관심사는 ‘자식’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인이 가장 돈을 잘 쓰는 부분이 ‘자식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도 따라갑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따라갑니다.
마6:21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자식에게 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쪽에는 돈이 아무리 많이 든다 해도 과감하게 돈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식 교육을 위해 얼마를 투자 하느냐를 알면 정말 놀랄 것입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일년간 부담해야 하는 사교육비 규모가 30조원을 넘었다고 추정합니다. 여기에 공교육비까지 하면 심각합니다. 50조원이 넘을 것입니다. 저 북한의 총예산이 약10조인데 5배 많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한 것입니까? 그런데 부모들이 왜 이다지도 많은 교육비를 자녀들에게 쏟아 붓는 것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자식이 잘되는 것이 부모의 최대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식이 우상입니다. 자식이 하나님입니다. 자식이 생명보다 귀합니다. 그러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최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생명, 건강, 직업, 명예, 자식, 돈, 그러나 사도 바울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가 맡은 사명,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이 최고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행20:24을 보세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닙니다. 정말 그는 하나님이 부여한 복음증거의 사명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고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떠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와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가치는 이 세상 부귀영화요, 자식이요, 건강이지만 다 세월이 흐르고 하면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자식 소용 있습니까? 건강, 부귀영화 소용 있던가요?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린이주일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시각으로 자식을 바라보고 어떤 관점에서 자식 교육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식을 맡겼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 상급이로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식을 잘 기르고 하나님 앞에서 상급이 되게 할 수 있을 까요?
어제 우리집 막내 초등학교 4학년 아들 기상이가 일어나자마자 “아빠 오늘 무슨 날이예요?” “왜?” “어린이날, 선물 사 주세요” 하더라고요. 선물은 주는 자의 마음인데 요즘은 선물을 강요합니다.
“뭐 사줄까?” 물었더니 장난감 사달랍니다. 안된다고 거절하고 책을 4권 읽을 것을 약속하고 용돈을 2만원을 주는 것으로 타협을 봤습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아 우리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 교육이 될까요?
 
1.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 교육, 이것은 오늘 모든 부모의 과제입니다. 어찌 보면 자식 교육을 잘했느냐 못했느냐가 성공과 실패의 척도로 보이는 시대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식 과외를 위해 한 달에 200만원을 쓴답니다. 하도 기가 막혀 왜 그렇게 하느냐고 목사님이 불어 보았답니다. 그분 대답이 뭔 줄 아세요. “목사님, 내 자식이 시원찮은 대학가면 내가 쪽 팔리잖아요” 하더랍니다. 누굴 위해 자식을 대학 보내는지 모를 시대입니다.
분명한 것은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이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 잘나가는 대기업에 보내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대기업 취업된 분들의 평균 재직 기간이 13년이랍니다. 27살에 취업되면 40에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에 가장 훌륭한 자식 교육은 내 자식이 먼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13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여기 나오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식들을 예수님이 만져 주시기를 바랐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져준다는 것은 ‘접촉’을 의미합니다. 즉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께 접촉시켜 주려고 데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자식이 예수님의 손길에 만져지고 예수님께 붙여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루만지시면 그 사람은 주님의 사람이 되고 주님이 붙들어 주는 사람이 됩니다.
왜 예수님께 붙여주어야 할까요?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각과 인격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그러기에 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주님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 붙들려 살아가면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세상이 넘어트릴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교육은 수시로 변합니다. 예전에는 공대 교육이 인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인문대 교육이 인기가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분은 신학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때는 너무 인기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말 한마디 때문에 갔다고 솔직히 말하더군요. “세상이 인기가 없는 분야가 앞으로 쓰임 받을 분야다. 지금 인기가 있는 분야는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인기 없는 분야가 되고 지금 인기 없는 분야는 앞으로 인기가 있는 분야가 된다.”
이 말에 신학대학을 갔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 입학 경쟁률이 1.5대1이 안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신학대학에 들어간 분들이 지금 다 교계의 지도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자녀들이 세상 흐름에 끌려가지 말고 세상을 거슬려 갈지라도 주님께 붙어있게 되면 자녀들의 앞길을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제발 세상교육에 노력하는 만큼의 절반만이라도 주님께 붙여주는 노력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우리 교회 집사님들의 자녀가 교회를 안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원 보내느라 안보내고 가기 싫어한다고 안보내고 친구가 없다고 가기 싫어해서 안 보낸다고 합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학교를 재미 없어 안간다면 죽도록 두들겨 패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가기 싫다고 방치합니다.

오늘의 본문의 부모를 보세요. 그 부모들은 자식들이 가고 싶어 데려왔겠습니까? 부모들이 보기에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믿어지니 강제로 데려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강제로 밀어붙여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 했을 것입니다.

본문에는 안 나와 있으나 내가 예측하건데 오늘 이 본문에서 축복을 받은 아이들은 분명 엄청난 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닌 위대한 주님의 일꾼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안수해 주셨는데 어찌 그 기도가 땅에 떨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우리 아이들을 예수님께서 만지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1)먼저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그 아이 속에 들어가 살아 움직이게 되고 그 말씀이 능력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2)교회에 소속되어 믿음을 성장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줄 아는 아이, 성경보고 기도할 줄 아는 아이로 가르쳐야 합니다.
누가 여러분의 아이를 지켜 줄 것입니까? 누가 이악한 세상에서 승리하게 도울 수 있을까요? 주님을 만나 주님의 사랑과 보호를 누리는 아이가 되게 하면 될 줄 믿습니다.


2. 자식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13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13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제자들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오자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런 짓을 했을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때 제자들 중에는 결혼을 한 제자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아마도 자식 안나본 제자들이 그랬을 것입니다. 제 막내동생이 제가 큰애 둘째애 기를 때 애들이 울고불고 잠투정하면 왜 버르장머리를 저렇게 길렀냐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때 내가 너 두고 보자 했는데 요즘 제자식들 보니 더 심각하죠.. 내가 큰소리칩니다. 
 
왜일까요? 왜 예수님 제자들은 어린아이를 막았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매우 바쁘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자기들 탄에는 예수님을 도와주고 쉴 시간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분이 여기시며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의 반응은 뭡니까?

14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할렐루야!
말은 안했어도 분명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어리고 약하고 아직 무능력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절대로 하찮은 존재로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을 어떤 시각으로 대하셨을까요? 
1) 아주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여기십니다.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다. 하시며 대단히 귀한 존재로 평가하셨습니다.

2) 또한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도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어린아이도 성도입니다. 어린아이도 죄가 있고 그 아이도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녀도 예수님께 나아와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주일학교 교사 여러분!
여러분이 가르치는 어린아이도 천국 백성이며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장차 구원 받을 백성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 백성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일학교 어린이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어린이가 주님께 나오는 것을 막으면 주님이 분노하십니다.

 
3.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했습니다.
15절~16절을 보세요.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하셨나요? 안고,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 그곳이 주님의 최고의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자녀들을 끌어안고 안수하고 축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종인 목사님이 그렇게 할 수 있으나 부모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오후 주일 학교 설교는 제가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 하나하나를 안수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안수기도 하면 그대로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주님은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일일이 안수기도를 하셨을까요? 
1)그 아이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창2:7을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어린이도 어른도 구별이 없습니다. 어린이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구원받은 백성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누리는 성도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삽니다. 사람이 사람됨의 징표는 창조주를 알고 그분이 주는 복을 누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축복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안수기도는 엄청난 효력이 있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주의 이름으로 우리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축복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부모로서 안수 기도의 자격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존재입니다. 특별히 아버지 되시는 성도 여러분! 그 안수 기도의 권세를 오늘 반드시 활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것을 보세요. 부모가 자식을 축복하면 그대로 되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반대로 저주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노아가 함과 그 아들 가나안을 저주할 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삭이 에서를 저주합니다. 그대로 됩니다. 야곱이 그 12아들 중 일부를 저주와 같은 기도를 합니다. 그대로 됩니다.

2)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현재는 미약해 보이고 하찮은 존재로 보이나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미래를 보셨습니다. 그들이 성장하면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일군인 것도 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미래만을 보신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어린아이이지만 그 모습도 매우 귀하기에 그들을 가까이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고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처럼 받들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어린이의 믿음이 어른의 믿음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라고 깔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보시기에는 그 어린아이 하나가 더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아이, 10년이면 청년이고 주일학교 교사 됩니다. 지금 초등학교 학생들을 어리다고 가볍게 보면 10년 후에는 큰 후회 합니다.
일본은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지금의 초등학생 축구에 집중 투자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10년 후에는 아마도 우리 축구가 일본을 쉽게 이기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한국교회, 10년 후가 걱정입니다. 주일학교 중고등부, 점점 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보아야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는 영적으로 건강합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주님 앞에 바로 서 있습니까? 그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면 10년 후에 큰 고통을 겪습니다. 지금 주님 앞으로 끌고 나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그 아이 위에 얹어 져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자녀, 주님의 사랑을 맛본 자녀는 자기 사명을 알고 자기 갈 길을 알고 갑니다.

그러나 세상맛은 다 보았으나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면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 가르치고 아무리 좋은 학문을 배우게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난번 미국 버지니아 공대사건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그 조승희 부모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얼마나 비참하고 괴롭겠습니까? 어디다 얼굴을 들고 살 것입니까? 죽고 싶을 것입니다. 자식하나 공부 시켜 보자고 미국으로 건너와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았을 텐데 그것이 뭡니까? 하루하루가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식교육은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예수님처럼, 그리고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임할 것이며 키와 지혜가 자랄 것입니다.
눅2:52을 보세요.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우리 주님이 어린이를 대하는 시각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 시각이 오늘 우리의 시각이 된다면 우리의 자녀들도 복된 삶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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