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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 : 이렇게 하라 (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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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이렇게 하라(에스겔 37장 1절~10절)

부흥이란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부흥이란 감정의 산물도 아니며, 인간의 계획된 열매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역이요, 영적 사역이다.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이 부흥이기에 교회가 부흥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부흥이 교회의 전부여야 한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부흥의 진정한 모습에 버금가는 것이 마른 뼈가 살아나는 사건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권능과 신으로 인도함을 받아 골짜기 가운데 서 있는데 거기서 뼈를 목격한다. 그 뼈들은 마른 뼈였다. 심히 마른 뼈! 죽어서 진토로 돌아가고 뼈다귀 해골만 뒹구는 골짜기에서 선지자는 주의 음성을 듣는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선지자는 거기서 부흥에 대한 질문을 들은 것이다. 그때 놀라운 것은 에스겔의 대답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결국 그 마른 뼈는 살아 일어나게 되고 극히 큰 군대를 이루게 된다. 뼈들이 살아나 군대가 된 것이다.

이 뼈는 누구의 뼈인가? 누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 겔37:11 말씀을 보면 이 뼈는 바로 이스라엘 온 족속이었다. 그러니까 선민들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부흥을 경험하는 이야기를 보여준 것이다.

겔37:12을 보라.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그러므로 이 환상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행하시는 부흥의 이야기이다. 이 부흥이야말로 와도 되고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죽은 영혼을 다시 살게 하는 겔37:14의 부흥의 약속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이 일이 21세기 교회 위에 일어날 수 있는가? 답은 일어날 수 있다. 다시 살게 하는 부흥을 의심하면 안된다.

에스겔의 반응을 보라. 다시 살려내는 부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첫째,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임을 인정할 때 시작된다. (겔37:3)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은 나의 소관이 아니다. 살려내는 일은 주의 성령의 창조적 소관이다. 장래에 되어질 일을 알지 못하는 나는 살고 죽는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른 뼈들이 다시 살겠느냐는 문제의 대답은 하나님의 하실 일에 속한 것이다. 사람이 볼 때 살 것 같아도 주의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고 사람이 볼 때 이미 죽어서 마른 뼈로 뒹군다 하더라도 주의 성령이 역사하면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대답은 하나님의 사람다운 대답이다. 육의 눈으로 볼 때, 손으로 만져 볼 때 마른 뼈들이지만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하실 일을 앞지르지도 않는다. 오직 겔37:3의 말씀처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함으로써 살리는 일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인정한다.

하나님은 진실로 생명의 주가 되신다.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사람의 운명을 한 순간에 결정하시는 분이다. 그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살리시는 일이 여호와께 달렸음을 고백하는 선지자의 대답은 신뢰와 믿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부흥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내가 그 분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주의 신을 부어주시길 갈망해야 한다. 내가 살려내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부흥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나를 살릴 수 있고 내 자녀를 살릴 수 있고 교회와 민족을 살릴 수 있음을 신뢰하라.

둘째,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시작된다. (겔37:7)

겔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부흥은 부흥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살려내시는 분임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분의 명령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듣고 외치라고 할 때 담대히 대언할 수 있다. 말씀을 듣는 대상은 골짜기 마른 뼈들이다. 거기에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외친다. 말씀에 대언하므로 뼈가 들어 맞고 뼈들이 연결되고 그 뼈들에 필요한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히게 되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사람이 되어가는 변형과 창조적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산만함과 버려짐으로 먼지만 나는 혼돈의 골짜기에 자기 자리를 찾는 질서와 조화의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에스겔 시대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는 시대이다. 뼈다귀로 변해버린 시대, 사회 구석 구석에 진정한 희망과 내일을 보기 어려운 황무한 시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시대이다. 지난 4월, 버지니아 공대생 가운데 조승희 군의 마구잡이 총기 사용으로 인하여 32명의 젊은이들이 한 순간에 희생을 당하였다. 저들이 살아있는 것 같으나 한 순간에 마른 뼈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버지니아 공대만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의 기초가 무너져 버린 이 시대, 모든 것을 가진 듯 하나 외롭고 공허하고 허무하고 채워지지 못해서 발광하는 이 시대, 죄가 죄인 줄 모르는 이 시대의 영혼들은 뼈다귀처럼 되어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말씀의 대언이다. 말씀이 들어가야 사람다운 사람으로 회복된다. 말씀이 들어갈 때 우리의 삶이 새롭게 움직인다. 자기 자리를 다시 찾는 소리가 들리게 된다. 회개의 소리, 화해의 소리, 구원을 얻는 소리가 들려지게 된다. 말씀을 들어갈 때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른다. 볼품없는 인생, 힘없는 인생이 다시 힘을 얻고 보기에 좋은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믿음을 갖고 말씀을 대언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흥의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말씀을 전하라. 말씀이 칼이 되고 불이 되고 방망이가 됨을 믿고 전하라. 말씀에는 하나님의 설계도가 들어 있다. 사람을 살리는 청사진이 들어있다. 나의 약함과 무능을 보지 말고 다시 살려내실 주권을 가진 그 분의 말씀에 권위를 두고 외쳐라. 거기서 부흥은 시작된다. 

셋째, 부흥은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할 때 시작된다. (겔37:9)

뼈들이 맞추어지고 조화를 이루어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살아 일어나 움직이지 않았다. 겔37:9 말씀에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선지가 에스겔은 순종하고 생기가 불어오도록 한다. 겔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하였다.

생기가 들어오면 산다. 원수를 무찌르고 대적하는 강한 군대가 이루어진다. 부흥은 생기의 흐름으로 된다. 생기는 살려내는 하나님의 바람, 호흡이다. 살려내는 숨, 프뉴마, 르하흐는 바로 교회 시대에 바람처럼 임하신 보혜사 성령이시다. 성령이 임하시면 살게 된다. 내 속에 성령이 일하시면 능력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군병이 된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들을 보라. 그들은 바람같이 임하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 살아난 자들이 되었다. 처참하게 무너졌던 제자들, 주님을 외면했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강한 군대처럼 일어나 복음을 외치는 살아난 영혼들이 되었다. 주의 신울 저들 속에 두셨을 때 120문도들은 살아났다. 영적 부흥이 시작되고 복음이 국경을 넘어 땅끝으로 확산되었다. 생기를 넣어주므로 일어난 부흥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요 기독교의 미래가 생기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생기를 사모하여 그 바람이 불어오는 교회와 교단이 되도록 하자.


넷째, 부흥은 부흥의 환상과 비전에 순종하므로 시작된다. (겔37:7, 10, 12)

부흥의 거룩한 도구는 믿음과 말씀과 성령임을 보았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질문과 환상 앞에 온전히 순종하였다. 에스겔은 만국이 부흥되는 비전 앞에 주저하지 않았다. 겔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겔37:10 “이에 내가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겔37:12 “그러므로 나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부흥의 환상과 비전을 품은 자의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오직 순종하는 것이다. 무엇을 명하든지 맡겨주시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다.

에스겔에게 명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명하시든지 절대 순종하자. 기도를 요구하신다면, 희생을 요구하신다면, 물질을 요구하신다면, 섬김을 요구하신다면 절대 순종하자. 부흥은 비전에 순종하므로 계속된다. 사람을 살려내는 비전, 생명에 대한 비전을 갖자.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대로, 하나님이 “울어 주라.”하시면 순종하고 하나님이 “섬겨 주라.”하시면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부흥은 거기서 시작되고 계속되고 확산된다.

마른 뼈가 다시 살 수 있는 놀라운 부흥, 그것이 우리 가정, 우리 수원, 우리 민족 가운데서 일어나야 할 가장 우선의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주님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과, 성령으로, 절대 순종으로 나아가자.

“이 마른 뼈가 능히 살겠느냐?”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의심과 불신앙이 가로막고 환경과 조건이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에스겔의 대답을 내 대답으로 찾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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