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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시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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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시편으로서 장차 이루어지게 될 메시야 시대의 환상을 품고 노래한 내용입니다. 개혁자 루터는 이 시편을 두고 “황금과 다이아몬드 상자 속에 담아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고 하신 말씀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지게 되는 신약교회의 비전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며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곳입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1. 하나님 은총의 표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성공과 실패의 많은 경험을 하였지만 그를 지탱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시편 30:5에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것은 자연의 현상이지만 성경에는 이것을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시편 133:3에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19:12에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이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역시 하늘로부터 내리는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이슬은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자연의 은택을 뜻합니다. 물과 공기와 햇빛과 비와 이슬 등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요소들이지만 이 모든 것을 값없이 거저 받았기에 은혜라고 합니다.

2) 하늘의 것과 땅에 것을 일컫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속한 것과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만으로 축복인줄 알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육신의 복과 함께 신령한 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요한 3서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의 순서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옛날 이삭은 그의 아들 야곱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창 27:28). 곧 “하늘의 이슬”은 신령한 복을 말하며 “땅의 기름짐”은 육신적인 것을 의미 합니다.

3) 내일을 위한 축복입니다.

“새벽이슬”은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뜻합니다. 새벽은 밝은 여명을 알리는 시간이며 사람들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려는 첫 시간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틴처럼 무더운 기후와 몰아치는 사막의 열풍으로 거칠고 황폐해 버린 대지를 밤마다 내리는 이슬이 적셔주므로 식물을 자라게 해 줍니다. 해가 지고 기온이 내려감에 따라 공기 속에 있던 수분이 이슬이 되어 땅으로 내려오는 그 시간이 새벽입니다. 따라서 새벽이슬은 시들어진 생명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새 힘을 솟아나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야 말로 새벽이슬 같은 희망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2. 성별된 일군을 가르킵니다.

3절에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침을 알리는 젊은이를 뜻하거나 또는 꿈과 희망의 상징인 청소년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도 “주의 청년”이라고 한 것은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1) 경건한 사람입니다.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라고 한 말은 성도의 거룩한 행실을 뜻합니다. 스가랴 3:3-4에 보면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옷은 어두움의 일로써 성도들에게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입니다(롬 13:12-14). 거룩한 옷을 입은 자는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어디에서나 그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갈 6:17).

2) 헌신된 사람입니다.

여기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즐겁게 헌신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뜻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오직 하나님께 바쳐지도록 구별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 제도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나, 양이나 하나님께 제물로 쓰이게 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신약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고린도전서 6:20에는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처럼 어릴 때부터 나실인으로서 바쳐진 사람은 일평생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삼상 1:11).

3)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옷을 입고 즐겁게 헌신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곧 세상 가운데서 제사장적 사명을 받아 그 일을 수종 드는 자를 뜻합니다. 4절에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반포하면서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출 19:6). 이는 구별된 성도들의 예배적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롬 12:1).

3. 하나님 나라의 이상(理想)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세를 살면서도 내세를 지향합니다(빌 3:18-21). 그들은 성경 계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경영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현실문제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이보다 훨씬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래의 환상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서를 기록한 다윗은 그의 평생 숨 막히는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언제나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시는 새로운 세계의 그림을 놓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불렀습니다. 본문 성경을 < 메시야의 소망>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그런 뜻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절에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고, 2절에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忽)를 내어 보내시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주권자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사야 66:1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모두 지으신 창조주라는 뜻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것들 위에 군림하시고 이를 주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또한 그것을 자기의 의도하시는 대로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권세와 계획을 신뢰하는 사람은 여간한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야의 환상을 가지고 희망적인 미래를 가꾸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본문 성경을 메시야 시편이라고 하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절에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고 하신 말씀이나, 2절에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보내시리니”라는 말씀이나, 4절에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말씀과, 5절에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는 말씀 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왕권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며 마귀의 권세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신분으로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자기백성을 사유하였으며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파괴하였습니다.

3)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게 합니다.

오순절에 성령 받은 베드로는 이 시편의 저자 다윗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의 날을 대비하였다고 말했습니다(행 2:34-3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왕들의 시조가 된 다윗은 모두 자기 한 사람의 안일을 위해 살지 아니했습니다. 오고 오는 후손들을 통하여 이 땅에 펼쳐나갈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고자 자신들은 희생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한 말씀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어느 때나 주님의 교회는 다음세대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일에 진력해야 됩니다. 여기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은 오늘날 교회가 가꾸어야 될 어린 새싹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미래를 열어나갈 주역들인 것입니다. 이번 복음 축제에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하나님께 인도해 들이고 이들을 성별된 헌신자로 자라게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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