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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무너지지 않는 가정을 세우라 (삼상 2:2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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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가정을 세우라 (삼상 2:27-36 )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 2:29)

  꽃의 향기를 뿜어내고 산과 들에 신록이 우거지는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어 집니다. 우리는 이 좋은 계절을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삶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대는 경제문제와 함께 정치문제 그리고 각종 사회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인간성의 문제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봅니다. 그런데 이 인간성의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가정은 인간성과 도덕과 종교,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을 세우게 하는 산실입니다. 가정의 문제와 인간성의 문제는 별개가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가 곧 인간성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문제는 가정이 무너져 잘못된 인간성을 만들어 내는데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너진 한 가정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엘리’라는 제사장의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유대인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가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장의 일을 위임받은 영광스러운 가정이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가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무너지는 가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이 가정은, 가정의 멸망 뿐 아니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참패하는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 낸 근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죠’ 목사님은 “완전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어렵다. 우선 내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가정도 완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훌륭하고 위대하며 가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견실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무너지지 않는 가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합니까? 
 
  올바른 신앙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2:12)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 이었더라”(삼상2:17) 
  엘리의 두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린 제물 중 제사장의 가족에 돌아갈 분량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탐욕에 따라 더욱 많은 것을 자기의 몫으로 탈취해 갔습니다. 기름을 제단에서 태우고 제물을 가져가야 하는데도 기름을 태우기 전에 제물을 챙김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규정을 무시했습니다. 더구나, 이 일의 부당함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폭력으로 협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음란한 행위를 일삼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의 가정에서 자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도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의 규정도 함부로 무시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앙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신앙교육이 무너지는 데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많은 실력과 능력을 갖추어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합니다. 그럼에도 신앙교육에 대해서는 너무 경홀히 여기는 것을 봅니다. 그러기에 4세기 교부 크리소스톰(I. Chrysostom)은 “세상 것을 위해서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면서도 그 자녀로 하여금 주안에서 살 수 있도록 신앙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라고 탄식했습니다.

  구세군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캐서린 부스’(Catherine)는 슬하에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일꾼들로 성장했습니다. 캐서린 여사가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의 눈에 위대하게 비친 이유는 남편을 위한 내조도 있었지만 여덟 명의 자녀 모두를 훌륭하게 키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캐서린 여사는 그녀의 자녀교육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악마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을 배우기 전에 좋은 습관을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생각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생각을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지혜를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고, 악마가 사단의 거짓과 위선과 악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마음속에 악마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와 능력을 먼저 배우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디트로이트에서 활약하던 판사 힐리는 ‘Young People' 발행인 헬리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심리하는 80%는 거의가 종교적인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가정이다.” N.V. 윌리암스라는 사람은 “가정 예배의 비율이 90%로 떨어진 이래로 이혼이 급증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며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정은 신앙교육이 살아있는 가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의 신앙교육이 바로 되어야 가정이 무너지지 않고 바로 서는 것입니다. 
 
  바른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2:29)고 하셨습니다. 엘리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바른 사랑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가정의 사랑은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리적인 사랑(biological love)입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능과 종족번식의 혈연에 따른 사랑입니다. 단순한 모성애입니다. 생리적인 작용에 의한 사랑입니다. 동물도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데 이와 같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옹졸하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둘째는, 인도주의적인 사랑(humanistic love)입니다. 인간적이고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사랑입니다. 자녀들을 애완동물 다루듯 하지 않고 인간적이며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아내나 남편을 생리적 기능보다는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회적인 사랑(socialogical love)입니다. 사회적 꿈을 두는 사랑입니다. 자식을 사랑할 때에 가문을 이어갈 자이며 사회의 꿈의 대상이 되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부사이에서는 성공의 조건에 합당하기에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부모가 가문과 재산을 물려주었기에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넷째는, 자기중심적인 사랑(self-
centered love)입니다. 자기 사랑의 대용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성취욕의 대리용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라들은 온전치 못한 사랑입니다. 

  바른 사랑은 영적인 사랑(spiritual love)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사랑입니다. 요한은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 하나니”(요일2:15)라고 했습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데서 오는 사랑입니다. 요한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형제를 사랑할 지니라”(요일4:21)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제를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는 데서 나타나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창조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가치관에 두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 안에는 경책하는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엘리는 가정의 자녀 사랑을 생리적이고 사회적인 사랑으로만 이끌었습니다.  귀여워하고 좋아하고 예뻐만 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사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직위만 물려주면 되는 사회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악에 방치해온 잘못된 사랑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아들들을 악하고 패역한 자로 만드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사랑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바른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가정이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1-4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23)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을 위하여 주심과 같이 하라”(엡 5:25)

  이 모든 말씀은 가정에서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교훈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 도다

'(삼상2:23-24)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의 가정은 공경과 순종하는 의무와 책임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엘리가 아들들을 하나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데서 무너지지 않는 가정이 됩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자녀는 부모에 대해서 부부는 서로에 대해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데서 가정은 무너지지 않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목회 하시는 목사님에게서 들은 끔직하고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미국으로 여행을 모시고 가서 그곳에 부모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자식을 찾아올 수 없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패스포트도 자식이 가져가 버리고, 말도 통하지 않고, 기억력이 약한 노인들은 그곳에서 미아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러한 노인들을 모아 돌보는 목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혼한 부모들이 자식을 포기하고 버린다는 기사를 대하게 됩니다. 자식을 양육하는 책임을 지지 않고 부모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사랑도 인간의 사랑과 비슷합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을 사랑한다는 말이 있듯이 동물도 제 자식을 사랑합니다. 자식도 부모를 사랑하며 따릅니다. 그러나 동물은 자식이 자라면 서로를 잊어버립니다. 오히려 서로를 해하고 잡아먹기도 합니다. 어미와 자식사이의 관계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인간들이 동물과 같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잃어버린 가정은 이미 무너진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인간성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있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돌보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후 그 제자는 자기 집에 마리아를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어머니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이 엘리의 가정처럼 무너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엘리는 괴로움과 슬픔에 가득 찬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 평안과 하나님의 응답을 기원할 만큼 사랑과 긍휼이 풍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의 혼란기에 제사장과 사사로 선택될 만큼 신실한 믿음을 갖춘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무엘에게 시기하지 않고 사무엘을 지도자의 그릇으로 인정한 큰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실패자가 됐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정이 무너지는 데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가정에게서 제사장의 영광의 자리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무너진 엘리 가정 때문에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그 전투에서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엘리는 이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며느리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가정은 결코 무너져서는 아니 됩니다. 가정을 바로 세우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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