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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가정을 하나님의 학교로! (삼상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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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정을 하나님의 학교로!
본문 : 삼상 8:1~3

  2006년에 우리교회 교회학교 아동부인 초등학교 1학년-6학년 학생들 천명에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설문지를 돌려서 답을 받았습니다. 먼저 ‘엄마, 아빠가 내게 하신 말씀 중 제일 좋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45.3%가 “얘야, 너를 사랑한단다.” 20.5%가 “참 잘했구나.” 14.5%가 “야! 놀러가자.”로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 중 제일 듣기 싫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27.7%가 “넌 그것도 못하냐?” 22.9%가 “공부 좀 해라” 18.2%가 “이 바보야.”라고 답했습니다.

  세 번째로 ‘내가 제일하기 싫은 일은?’이라는 질문에는 43.3%가 부모님 잔소리 듣기였습니다. 이것은 사실 수동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가장 하기 싫은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님이 잔소리하는 것 자체가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13.9%가 학원 다니기, 11.8%가 아침에 일어나기, 11.7%가 학교 가기였습니다.

  네 번째로 ‘내가 집에서 제일 속상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34.1%가 부모님께 야단맞을 때, 26.3%가 엄마, 아빠가 서로 싸움하셨을 때, 18.8%가 혼자여서 심심할 때라고 답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가?’를 물었더니 27.4%가 부모님과 함께 놀러갔을 때, 22.3%가 친구들과 함께 놀 때, 20.3%가 선물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의 말 한마디와 태도와 행동으로 인해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부모님들에게는 늘 자녀를 향한 두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를 키울 때 아이를 어떻게 하면 바르게 키울지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제일 걱정하고 근심하는 소망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자녀가 나보다 나아야 할 텐데, 나보다 더 좋은 생애, 더 성숙한 생애를 살게 해야 될 텐데......’라는 소원입니다.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로도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소망이 예수님을 믿는 부모님들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영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나보다 더 성숙된 길을 가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대치와 자녀들이 갖고 있는 현재 모습의 격차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될까, 어떻게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까를 잘 모르겠기에 우리들은 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주고, 지성과 이성을 깨우치면 될 것이라고 배우고 들었습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그것을 습득하게 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의 감정적인 일치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들이 알고 자녀의 감정을 부모가 용납할 때 이런 가치관과 지성과 이성을 더 잘 깨우치고 습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성의 리더십’을 쓴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이런 말을 합니다. “가정이란 우리가 맨 처음 감정을 학습하는 배움터이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가정 안에서 배운다. 이런 감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드리고 이에 대응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가족에게서 배운다. 희망사항과 두려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가족 안에서 배운다.”

  우리의 가정과 가족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존 가트맨(John Gattman)이라는 사람이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면서 부모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녀의 감정에 동조하고 동감하여 참여하고 자녀의 감정을 공유하여 세상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녀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왜 울며 또 때로는 기뻐하는지를 전혀 관심 갖지 않는 부모가 있다고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녀의 감정을 이끌어줄 감정코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자녀의 감정코치를 못해주는 실패한 부모가 있는데 그것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축소전환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관심한 부모입니다. “저 녀석 그냥 놔두면 될 거야. 울어봤자 소용이 없어. 우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될 거야.” 이렇게 자녀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미 있게 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억압형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들도 감정코치를 하는데 실패합니다. 자녀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 아주 비판적으로 개입합니다. 감정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꾸짖고 벌을 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게 되느냐, 왜 징징 울고 있느냐, 왜 그렇게 마음속에 슬퍼하고 있느냐며 부정적인 감정을 잘못된 감정으로 보면서 자녀들에게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때 자녀들은 “우리 부모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내 감정을 받아드리지 못해.”하고 감정적으로 부모와 깊은 골을 아예 세워서 부모는 자녀의 삶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세 번째 방임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게 합니다. 한계를 알려 주지 못하고 그냥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를 이겨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가 부모를 조종하게 됩니다.
  이런 세 가지 유형의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자녀의 감정을 코치할 줄 아는 부모로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한계선을 그어주는 부모입니다.

  첫째는 아예 감정을 인식하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부모입니다. 둘째는 아예 자기감정을 표현하도록 경청할 줄 아는 부모입니다. 세 번째는 아이가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오히려 아이와 친밀성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인 것을 알고 교육의 좋은 기회로 삼는 넉넉한 부모입니다. 네 번째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감정과 행동의 한계성을 주는 부모입니다. 사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모가 갖고 있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사랑의 힘이고, 하나는 권위의 힘입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의 권위로 가르쳐야 합니다. 또 때로는 채찍질하고 징계까지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어느 선에서 잘하는가에 따라서 좋은 부모의 모습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 가트맨은 감정코치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보다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가 감정코치 법을 사용할 줄 알면 자녀의 정서 발달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잘 감당하는 성격으로 성숙되는데, 반대로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하면 자녀들의 학교생활이 원만해지지 않고 친구들과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싸우는 위험성으로 몰고 가는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아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십니까? 자녀가 갖고 있는 고통 자녀가 갖고 있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의 말씀에 위대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설적으로 못된 아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사무엘이라는 사사요, 예언자였습니다. 당시에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자였고, 종교적으로는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아가 나오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사무엘상 8:3)
 
  아들들은 뇌물을 좋아했고 자기 이익을 챙겼습니다.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는 잘못된 지도자였습니다. 어찌하여 위대한 아버지 밑에 이렇게 못난 아들이 생길 수가 있었을까요? 저절로 못난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될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아마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다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사실 위대한 아버지를 두는 것은 인생에서 큰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뒤따라 갈 수 있는 모범을 지닐 수 있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노하우를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돈과 재물도 받습니다. 때로는 명예와 권력도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위대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축복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녀에게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괴롭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아버지와 자식을 비교하여 감당할 수가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화가 납니다. 때로는 내가 이런 아버지 밑에 자라는 것이 저주라고 생각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자기 조절 능력을 상실한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은 자녀에게 잘못된 일그러진 자화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의식에 빠져 들어서 교만해 집니다. 남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의 오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재벌 회장이 그 아들이 당한 폭행을 보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탄식하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의하면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나도 저런 막강한 아버지를 가졌으면 금력과 권력이 동반된 아버지가 있으면’하는 부러움과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아버지의 애정 부정에 불과하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자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 날카로운 분석을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뒷감당을 할 수 있는 힘과 돈에 대해서 한국의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분열적인 인격을 지니고 있다.”
 
  본문은 위대한 아버지 사무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지도자, 영적 지도자로서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실패했습니다. 그 보다 앞서 제사장과 사사가 되었던 엘리 제사장도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아들들은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실권자, 영적인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책과 권리를 아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거기에 걸 맞는 사고, 가치관, 책임성을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위대한 아버지들이 종종 실패하는 것이 있다면 자녀들을 너무 높은 고지에서부터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곳을 알지 못하고 고통 받는 현실을 알지 못합니다.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땀 흘리고 수고해야 겨우 하루를 먹고 사는 인생의 치열한 현장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자기 소유인양 행세합니다.

  과거에 정치적 세습 또는 종교적 세습을 멈추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이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자녀들이 갖는 문제는 정신적인 빈곤함입니다. 아버지에게 무엇이든지 요구만 하면 아버지가 만족스럽게 모든 것을 줍니다.

  어떤 자녀들은 장난감 하나를 얻으려고 하루, 일주일 아니 한달 때로는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데, 어떤 자녀들은 집에 장난감이 쌓여있는 것입니다. 한번 손댔던 장난감 아니 어떤 것은 손을 대지도 않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로는 돈도 받고 힘도 얻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에게는 너무 연약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 자녀들은 정신적인 빈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있으나 사실상 아버지가 부재한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일수록 바쁘고 강력하고 위대합니다. 자녀들에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해주지만 자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는 아버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 옆에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먼 아버지로 설 때 자녀들에게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왕은 위대한 아버지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압살롬이라는 아들을 교육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서 역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중에 가장 치열한 슬픈 전쟁이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전쟁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전쟁입니다. 참혹한 전쟁에서 아들은 서서히 무너져 갔고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 다윗이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아버지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 자녀들에게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들이 특별히 마음속에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받은 축복 때문에 자녀들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의 마음에 함께 동참하여 자녀들의 마음을 읽지 않으면 자녀들은 그것 때문에 외로움 속에 빠져있고 아픔 속에서 자기 삶을 지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자녀들과 교류할 줄 아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가정의 달인 5월에 부모님들은 꼭 자녀들과 데이트하기를 바랍니다. 한 시간도 좋고 하루도 좋고 몇 일도 좋고 시간이 없으면 여름 휴가철을 이용해서라도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 꼭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슬픔, 우리의 외로움, 우리가 갖고 있는 죄악의 고통 속에 친히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동참하셨습니다. 우리 고통에 함께 우셨고, 외로움에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우리를 세워 주셨습니다. 부모로서 그동안 가졌던 마음을 자녀들에게 털어놓는 기회를 가지십시오.

  다만 원칙이 있다면 90%를 자녀들의 말을 듣고, 10%만 이야기하십시오. 10%도 훈계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이때만큼은 훈계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십시오. 인생을 살면서 가졌던 기쁨과 외로움을 나누십시오. 위대한 아버지들도 세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세요. 부모인 나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 받을 때가있는 완벽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절대로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가 아니라 때로 고통스러웠으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자녀들과 나누십시오. 그리고 너 같은 자녀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십시오.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함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가족의 아픔들, 자녀들과 만나지 못함으로 생겼던 껄끄러움을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동안 쌓아놓았던 것을 자녀들을 위해서 쓰면서 함께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아버지가 바뀌어 자녀들의 마음을 감쌀 때 우리의 가정이 바뀝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귀한 축복을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나누면서 가정의 달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얼마나 복주시고 사랑하는지를 감사 고백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참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을 주셔서 생명과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 사랑하는 자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녀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읽지도 못한 우리의 모습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가정의 달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만나는 부모가 되도록 성령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품고 이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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