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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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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엡 6:1-3
제목 /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물론 지난 8일은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1956년에 어머니날을 만들고, “그럼 아버지는 뭐냐”는 여론에 따라 73년부터는 부모, 조부모, 처부모에 모든 어른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어버이 날”로 바꾸었습니다. 교회에서는 5월 첫째 주일을 꽃주일이라 하여 “어린이 주일”로 둘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며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효(孝)를 생각하는 날로 기념합니다.

한자로 “효(孝)”는 늙을 “노(老)”자에서 숟가락 비(匕)자를 빼고 아들 자(子)자를 넣은 모양입니다.
즉 효는 부모가 연로하여 숟가락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을 때 자식이 그 숟가락을 대신 들어 드린다는 뜻이 아닐까요?
무엇이 효인가?
부모 마음 헤아리면 그것이 효입니다. 기술이 아닙니다. 재주도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옛날에 세 아들을 가진 홀아비가 있었습니다.
새장가를 가고 싶어 넌지시 맏아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얘야! 밤만 되면 등이 가렵구나. 긁어줄 사람도 없고.." 다음날 큰 아들이 효자손을 사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둘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요즘엔 날씨도 그렇게 춥지 않은데 이부자리에 눕기만 하면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한기가 든단다. "
다음날 둘째 아들은 전기 담요를 사왔습니다.
며칠 뒤 막내 아들이 사귀는 처자가 있으니 장가를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호통을 치며 "이놈아 ! 효자손하고 전기 담요만 있으면 됐지 장가는 무슨 장가야!"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집이나 의복 음식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먼저 본문을 다시 한 번 봉독하겠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우리를 낳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자녀들아....” 라고 했습니다.
자녀란 말은 낳은 부모가 있음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이 땅에 모든 자식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자식이 아니면 효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이라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젊은 날 자기만 알고 가족을 돌아보지 않던 무책임한 가장이 있었습니다.
가장이 무책임하면 가족들이 힘듭니다. 이 가정도 무책임한 아버지 때문에 모든 가족들이 온갖 고생을 다했습니다.
어느날 이 무책임한 가장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자신이 죽으면 고향땅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 유언을 들은 가족들은 분개했습니다.
뭘 잘했다고 죽으면서 까지 자식들을 힘들게 하느냐고 친족들까지 그를 비난했습니다. 다른 형제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아들이 묵묵히 그의 시신을 고향땅에 묻어드렸습니다. 그러나 동생들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맏아들은 조용히 형제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너 낳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 어떤 조건에 따라 공경하라고 한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부모는 그냥 부모입니다.

잠 23:22절에 보십시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너 낳은 아비와 어미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효도를 해야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큰 이유가 그가 나를 낳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떤 이유가 필요가 있겠습니까? 부모가 늙었다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는 나를 낳아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나의 존재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되었기에 부모는 나의 뿌리입니다.

2)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당연히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출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으로 첫째부터 네 번째 계명까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사람 사랑에 대한 계명으로 다섯 번째부터 마지막 계명까지입니다.
사람 사랑에 대한 계명의 첫째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본문에서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출 20: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아홉 가지의 계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불효는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불효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효도를 다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약속 있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졌길래 약속있는 계명이라고 했을까요?
신 5:16절에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라고 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라는 말씀은 효도하는 자는 이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누리는 은혜에 대한 약속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계명 즉 다섯 번째로부터 열 번째 까지의 계명에는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는 복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누리는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3) 그 위대한 사랑과 헌신 때문이다.
어떤 젊은이가 위대한 사람을 만나 인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서 알통이 배고 발이 부르트고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돌아다녔지만 위대한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그가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데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고 눈이 아기처럼 맑은 노인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
“무얼 찾고 있는가?”
“위대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말하자 노인은 “내가 가르쳐 주지” 라고 말하고는 다음과 같이 일렀습니다.
“지금 곧 집을 돌아가게. 자네가 집에 당도하면 신발도 신지 않은 한 사람이 방에서 뛰어나올 것일세. 그가 바로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네.
젊은이는 노인의 말을 듣고 뛰고 뛰어서 집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과연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헌신의 상징입니다.
어머니 날에 부르는 노래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를 아시지요? 다 같이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나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한이 없어라.
열달 동안 뱃속에서 키우시고 사선을 넘나드는 고통의 골짜기에서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얻는 것이 자식이기에 부모는 자식이 그의 전부인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그 헌신을 단 한번이라도 이해하고 느낄수있다면 결코 불효할 수 없습니다.

어느 인터넷 싸이트에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어리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을 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의 어머니들은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살아오셨습니다. 이것이 희생입니다. 헌신입니다. 자식들이 어떻게 이런 부모님의 희생을 모른다 하겠습니까?

어린 시절을 기억합니다.
부모님 품에서 아무 근심 걱정이 없던 유년기, 어린 우리는 엄마 치마꼬리만 잡고 있어도 마음 든든하였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를 만나도 두렵지 않았고, 사나운 개가 왕왕 짖으며 으르렁거려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배탈이 난 캄캄한 밤에 안채에서 저만큼 떨어진 뒷간에 혼자 앉아, "아부지 아부지." 부르면 "오냐, 여기 있다" 대답하시는 아버지 목소리, 뒷간 앞에 서서 담배 한 대 다 태우시며 기다리는 아버지만 있으면, 쑥 올라와 엉덩이를 만진다는 빨간 손 귀신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 아버지는 뭐든지 다 알고 있고,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힘도 센 슈퍼맨으로 알던 환상은 나이를 먹으면서 깨져 버렸습니다.
점점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그 분들도 나처럼 연약한 한 인간에게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병들고 늙고 이제는 젊은 자식들의 손에 의탁되고 보호되어야 할 연약한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낳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사랑과 헌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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